실명했다고 해서 꿈까지 빼앗긴 건 아닐 것이다. 수면 중의 꿈도 내일을 향한 꿈도. ⓒkbs 방송 화면 캡처

치료를 끝내고 쉬고 있을 때 창용찬 씨가 곁에서 뜻밖의 말을 했다.

“아까 오면서 일부러 눈을 감고 달려봤어. 착지는 물론 도저히 방향을 잡을 수 없어서 금방 포기를 했어. 평탄한 지역에서도 그랬는데 크고 작은 돌들이 널려 있는 지역을 어떻게 달려왔어? 어려움은 차치하더라도 체력 소모가 몇 배는 더 되겠더라구.”

“형님이 저의 눈이 되어 주셨잖아요.”

“자네 말은 고맙지만 자네가 얼마나 힘든 레이스를 하고 있는지를 절실히 알겠더라구.”

세 번째 체크 포인트를 출발할 때 유지성 팀장이 합류했다.

체감되는 햇살의 온도가 높아지고 있었다. 다행히도 주로는 계속 낮은 모래구릉 지대가 이어졌다.

“송 관장님, 우리와 똑 같이 볼 때가 언제인지 아세요?”

유지성 팀장이 농담인지 진담인지를 분간하기 어려운 질문을 했다. 언뜻 생각나는 게 없었다.

“꿈 꿀 때잖아요.”

꿈, 그렇다. 실명했다고 해서 꿈까지 빼앗긴 건 아니다. 또한 수면 중의 꿈도 그렇지만 내일을 향한 꿈이라 해도 다르지는 않으리라.

“유 팀장, 사람이 오래 살려면 한 가지만 많이 먹으면 되는 데 그게 뭔지 알아?”

유지성 씨가 그게 뭘까 하고 생각하고 있는지 대답이 없자 김성관 씨가 곁에서 거들었다.

“나이지. 나이만 많이 먹으면 오래 살잖아.”

“정말 그렇네요. 나이만 많이 먹으면 오래 사네요. 회장님 나이 많이 드시고 오래오래 사십시오.”

유지성 씨가 진심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혜경 씨, 여자가 좋아하는 ‘쇠’로 끝나는 네 가지 타입의 남자가 뭔지 알아요?”

“글쎄요….”

“부지런한 마당쇠, 입이 무거운 자물쇠, 잔소리도 묵묵히 듣고만 있는 돌쇠, 그리고 밤마다 즐겁게 해주는 변강쇠.”

“그럼 송 관장님은 무슨 ‘쇠’에 속하세요?”

“변강쇠.”

“에, 에, 송 관장님은 모르쇠 일 것 같아요.”

“그럼, 혜경 씨, 남자가 좋아하는 ‘소’로 끝나는 세 가지 타입의 여자를 알아요?”

“그건 남자 분들이 잘 알지 여자인 제가 어떻게 알아요.”

“그럼 잘 듣고 혜경 씨도 그런 여성이 되세요. 틀린 말을 해도 그렇소 하는 여자, 싫은 소릴 해도 좋소 하는 여자, 그리고 무슨 일에도 옳소 하고 맞장구쳐 주는 여자.”

“그랬다가는 살림 말아 먹겠어요. 송 관장님 사모님은 그런 분이세요?”

“혜경 씨 생각에는 우리 집 사람이 어떤 타입일 거 같아요?”

“당연히 소로 끝나는 분이죠.”

“왜?”

“이 힘든 레이스에 참가하는 걸 ‘옳소’ 하고 찬성 하셨으니까요. 그도 아니면 송 관장님이 ‘모르쇠’ 하고 왔거나.”

“사실은 아들 덕분에 올 수 있었어요. 얼마나 반대가 심했던지 꼭 가고 싶다면 이혼하고 가라고 했을 정도였어요. 아들이 자원봉사자로 함께 오면서 책임지고 무사히 다녀올 테니 아무 걱정 말라고 거드는 바람에 간신히 올 수 있었어요.”

“설마 아드님은 ‘모르쇠 2세’가 아니겠지요?”

“모르겠어요.”

“거봐요. 송 관장님은 확실히 ‘모르쇠’라니까요.”

정혜경 씨에게 말로 당할 재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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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태씨는 군복무중이던 22살 때 수류탄 폭발사고로 두 눈을 실명하고 1급 시각장애인이 됐다. 꾸준히 장애인계에서 활동해왔으며 현재 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장이자 전북 시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 4대 극한 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마라토너이자 '삼 일만 눈을 뜰 수 있다면'이라는 시집을 낸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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