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말을 듣고 속으로 눈물을 흘리며 다짐했다. '이 애비가 반드시 완주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kbs 방송 화면 캡처

아, 앞을 볼 수만 있다면 이 고통을 최소화할 수 있으련만. 돌을 피해 착지만 할 수 있어도 이렇듯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지는 않을 텐데.

“송 관장, 힘들지? 잔 돌이 하도 많이 깔려 있어서 피해서 갈 방법이 없어. 송 관장이 돌을 밟을 때마다 얼마나 아플까 하고 생각하면 내 마음도 아파.”

창용찬 씨의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내가 겪고 있는 고통을 이해하다 못해 그 고통을 함께 하고 있는 마음이 고마워서였다. 이런 분이 나와 함께 동행하고 있는 한 어떤 경우라도 포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송 관장님, 인류가 진화해오면서 통증을 더 예민하게 진화시켰을지도 몰라요. 육체의 통증이 민감할수록 위험에 대한 조심성이 생기고 마음의 고통을 겪고 나면 정신세계가 넓어질 테니까요. 송 관장님은 지금 육체의 고통이 정신의 고통으로 연결되고 있을테지요. 송 관장님은 가장 앞 선 진화의 대열에 계시는 거예요.”

“혜경 씨, 진화가 가장 더딘 인간이라도 좋으니 제발 좀 덜 아팠으면 좋겠어요.”

“송 관장님, 저도 무지 아프거든요. 불이 붙은 발바닥을 송곳으로 마구 찌르는 것 같아요. 창 회장님도 그러실걸요. 중요한 건 고통은 비교가 안 된다는 거예요.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이 최대치라는 거예요. 송 관장님은 돌멩이를 피해서 착지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발바닥의 통증이 정신의 고통으로 연결되는 거지요.”

그렇다. 고통은 절대로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남의 죽음이 내가 앓고 있는 고뿔(감기)보다 못하다고 했을까’

“혜경 씨, 땡큐. 정말로 중요한 걸 깨우치게 해주었어요.”

“송 관장님은 대단한 분이세요. 모든 레이서들이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파이팅 하셔야 돼요.”

고맙다. 격려 속에 담긴 따뜻한 마음이 고맙다.

“잠시 쉬었다 가지. 송 관장, 이리로 와서 앉아.”

창용찬 씨가 내 손을 잡아서 편편한 바위 위에 앉혀 주었다.

“조금 더 가면 두 번째 체크 포인트에 도착할 거야.”

“해가 뜨고 있나 봐요?”

“송 관장, 해가 보여?”

“그럼요. 사하라가 내 눈을 뜨게 해주었어요. 지금 내 몸이 해를 보고 있어요.”

“송 관장, 마음의 눈을 떴구먼. 이번에 자원봉사자로 따라온 자네 아들은 가장 값진 인생 교육을 받고 있네. 송 관장, 자넨 이 세상 어떤 아버지보다 값진 교육을 아들에게 하고 있네. 이번 레이스는 자네의 영예보다 자네 아들에게 보여 주는 아버지의 모습 그 자체가 더 값진 것 일세. 아마 다른 모든 사람들이 포기를 해도 송 관장 자네만은 포기를 할 수 없을 걸세. 자네 아들 때문에 포기할 수 없을 걸세. 이제 갓 청년이 된 자네 아들에게 그 어떤 성현의 말씀보다도, 그 어떤 인생 지침서보다도 값진 교육을 아들에게 해 주고 있는 자네가 부럽네.”

앞에서 에스코트를 해주시던 김성관 씨가 연세 높은 분의 경륜에서 우러나온 말씀을 해주셨다.

김성관 씨의 말씀이 맞았다. 내가 고통에 겨워 잊고 있던 가장 중요한 점을 일깨워 주셨다. 다른 레이서들에게는 없는 지향점이 내게는 뚜렷이 있다.

지난 밤, 캠프에서 발바닥 치료를 받고 났을 때 아들 민이 내게 말했다.

“아버지, 그 발로 어떻게 레이스를 하실 거예요? 다른 분들이 발바닥 치료를 받는 걸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파요. 아버지도 저런 발로 이 거친 사막을 달리고 있을거라는 생각 때문에요. 아버지도, 그만 달리셔도 되요. 그만 하셔도 난 아버지를 존경해요. 이 세상 어떤 아버지보다 우리 아버지가 자랑스러워요.”

나는 아들 민의 말을 듣고 눈물을 속으로 흘리면서 다짐했다.

‘이 애비가 반드시 완주하는 모습을 보여 주겠다’고.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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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태씨는 군복무중이던 22살 때 수류탄 폭발사고로 두 눈을 실명하고 1급 시각장애인이 됐다. 꾸준히 장애인계에서 활동해왔으며 현재 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장이자 전북 시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 4대 극한 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마라토너이자 '삼 일만 눈을 뜰 수 있다면'이라는 시집을 낸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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