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의 신기루 때문에 레이스의 주로에서 이탈하려 하고 있는 걸까? 위기였다. kbs 방송 화면 캡쳐

그 지리산에서 이념투쟁을 벌이다 죽어간 많은 이들을 생각하며 힘을 냈다. 고향, 부모, 형제, 처자식을 멀리하고 눈 쌓인 산속에서 굶주림과 추위에 떨며 보냈던 시간들에 비하면 지금의 고생은 차라리 호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역시 마찬가지다. 비행기를 타고 먼 대륙에까지 와서 폼을 잡고 사막을 달리고 있는 나는 엄밀히 말해 호사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이념을 현실화하겠다는 신념을 지니고 굶주림과 혹독한 추위를 무릅쓰고 산에서 지냈던 그들과 굳이 비교를 하지 않아도 호사임이 분명하다.

누가 등을 떠밀어서 온 것도 아니고 오히려 가족의 만류를 뿌리치고 고집을 피워서 온 것 자체가 나만의 호사를 누리기 위한 행동임이 분명하다.

앞을 못 보는 시각장애인의 사막 마라톤 완주, 그에 따르는 세인의 관심과 쏟아지는 찬사, 더욱이 KBS에서의 밀착취재로 받게 될 화제의 스포트라이트.이런 세속적인 호사를 누리려는 욕심이 분명 작용했다.

이 사막 레이스를 완주한 과정을 방영하면 나에 대해 시청자들은 말하리라. 인간 승리의 본보기라고. 또는 불가능의 벽을 허문 위대한 도전이라고.

동기에서부터 실행하는 과정, 그리고 결과에 이르기까지 그 동기와 목적의 순수성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금의 나는 얼마나 순수성을 유지하고 있을까?

문득 안내견 찬미가 생각난다. 나와 함께 보낸 8년 동안 찬미의 동기와 목적의 순수성은 조금도 오염되지 않았었다. 지리산 주능선의 눈 속에서 허우적거리면서도 오직 나를 안내해야 한다는 그 한 가지 동기와 목적의 순수성으로 일관했다.

"! 나는 지금 고통의 극점에 서서 내게 묻는다. 포기를 할 것이냐? 아니면 레이스를 계속할 것이냐?"

포기와 레이스, 어느 한 가지를 선택해도 비난이나 또는 책임 따위를 물을 사람은 없다. 오직 나의 자유의지로 결정할 뿐이다.

그런데도 이를 악물어 가면서 레이스를 계속하고 있는 건 무엇 때문일까? 장애의 벽을 넘어서기 위한 도전, 아니 나라는 인간의 내면에 있는 숭고한 가치를 구현하기 위한 투쟁일까?

이 가없는 대지 사하라를 신의 저주를 받은 야만의 땅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정작 이 가혹한 대지에서 레이스를 하고 있는 인간들의 행위야말로 야만적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엄두를 내지 못하는 일에 도전을 해서 성공을 하면 찬사를 보낸다. 그러나 그 도전의 과정 자체만 보면 야만적이다. 그 행위를 하고 있는 자신에게 스스로 가하는 가혹행위야말로 야만적일 수밖에 없다.

내가 이 레이스를 끝내고 맛볼 수 있는 희열마저도 내게 아직도 남아 있는 환상통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내 마음 에서 연기처럼 피어 르는 회의가 발걸음을 더욱 무겁게 하고 있다.

피로와 회의가 신념의 동지처럼 굳세게 손을 잡고 나를 주저앉히려 하고 있다. 걸음이 떨어지지가 않는다.

“관장님, 갑자기 왜 이러세요?”

인백 의 목소리에 걱정이 무겁게 담겨 있다.

“인백 , 왜 달려야 하는지를 모르겠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게 부질없는 짓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발을 뗄 수가 없어.”

“관장님, 마음 에 있는 신기루를 본 게 아니에요? 나도 그 신기루를 셀 수도 없이 봤어요. 그 신기루에 끌리지 않고 지금까지 온 것은 관장님이 곁에 있었기 때문이에요. 관장님이 나를 끌고 온 셈이에요.”

신기루, 나는 신기루를 본 것일까? 마음 에 일고 있는 여러가지 생각 중에 분명 허상도 있을 것이다. 그걸 신기루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동기와 목적의 순수성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나 스스로 신기루를 만들었을까?

사막 여행자들의 방향을 바꾸어서 목적지를 잃게 만드는 신기루, 나 역시도 내 마음 의 신기루 때문에 레이스의 주로에서 이탈하려 하고 있는 걸까?

눈으로 사물을 볼 수 없어서 생각을 지나치게 많이 하고 있는 탓일까? 내 마음 에서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의문이 나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머리가 카오스의 탱크 같다.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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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태씨는 군복무중이던 22살 때 수류탄 폭발사고로 두 눈을 실명하고 1급 시각장애인이 됐다. 꾸준히 장애인계에서 활동해왔으며 현재 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장이자 전북 시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 4대 극한 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마라토너이자 '삼 일만 눈을 뜰 수 있다면'이라는 시집을 낸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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