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전지 야전병원 같은 체크포인트는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kbs 방송 화면 캡쳐

“음, 초콜릿보다 훨씬 좋아요.”

레이첼이 양갱을 한 입 베어 물고 씹으며 말했다.

“미스 레이첼, 다시 사막 레이스에 도전할 생각이 있어요?”

“오! 노우, 또 다시 사막 레이스를 하자고 하면 잭슨과 헤어지고 말겠어요.”

인백 씨가 묻는 말에 레이첼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두 사람의 레이스야말로 아름다운 레이스예요. 앞으로 시간이 흐를수록 아름다운 허니문 여행으로 기억될 거예요.”

“미스터 송, 당신과 함께 한 레이스여서 더욱 잊지 못할 거예요. 당신은 대양의 험난한 파도를 헤치며 항해하는 것과 같은 이 레이스에서 등대와 같은 존재이니까요. 그리고 파트너인 미스터 김과의 우정이 레이첼과 내게 좋은 본보기가 되어 주리라 믿어요.”

키가 작은 관목 덤불이 시작되는 지역에서 잭슨과 레이첼이 앞서 나갔다. 관목 가시가 화상을 입은 종아리를 스칠 때마다 비명이 터져 나올 것 같다. 관목 가시 못지않게 살갗에 꽂히는 햇살도 따가워지고 있었다.

오늘 주파해야 할 거리는 어제보다 8㎞ 정도 더 길다. 사하라의 기후와 지형이 입력이 되긴 했지만 문제는 체력이었다. 하긴 첫날의 레이스조차도 체력보다는 오로지 인내로 버텼을 뿐이다.

“관장님, 낙타 두 마리가 가시투성이 관목 잎을 뜯어먹고 있네요.”

낙타의 잇몸과 혀는 통증을 못 느끼는지 바늘 끝처럼 뾰족한 가시투성이 관목에서 콩알만 한 잎을 뜯어먹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이 사막에서 뜯어 먹을 풀이라고는 그것밖에 없으니 살기 위해 고통을 참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 또한 달리는 것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달려야 한다. 포기라는 선택, 그것은 고통을 참으며 달리는 것보다 더 큰 아픔으로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이기에 선택일 수가 없다.

첫 번째 체크 포인트가 보인다고 했다. 9.9㎞를 달려왔다. 체크 포인트 분위기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느껴졌다. 발바닥 상처때문에 응급처치를 받는 레이서들이 많이 있다고 했다.

대다수가 레이스를 포기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라는 인백 씨의 말을 듣고 체크 포인트를 빨리 출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격전지의 야전병원 같은 분위기 속에서 빨리 벗어나고픈 그런 심정이었다.

식량이 많이 줄었는데도 배낭의 무게가 처음보다 더 무거운 것 같다. 배낭도 내 몸의 일부처럼 여겨지는 상태이니 몸이 그만큼 무거운 탓이리라. 체력의 고갈에서 비롯된 가중치의 무게를 감당하는 것은 오직 인내뿐이라는 걸 절감하며 발을 옮겼다.

체크 포인트를 벗어나자 모래벌판이 펼쳐지고 있었다. 다행이도 흡혈귀처럼 체력을 빨아먹는 모래구릉이 없다고 했다. 안도가 서늘한 바람처럼 내 마음을 쓸고 갔다. 발바닥의 통증을 덜 느낄 수 있는 데다 인백 씨의 배낭에 연결된 로프만 잡고 마음껏 달릴 수가 있어서였다.

장애물이 없는 평지를 처음 만났다. 다행이도 모래 속으로 발목까지 빠지지는 않았다. 내 기분은 물 만난 고기 같았다. 그러나 기분과는 달리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모래밭은 체력을 흡수하는 스펀지 같으니까. 그래도 사하라에 와서 제일 좋은 기분으로 달렸다. 남은 주로가 이 모래밭으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했다.

모래벌판을 벗어나자 지면이 울퉁불퉁한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한 시간 가까이를 달리다 걷기를 반복한 모래벌판에서 체력을 소모한 탓에 오르막을 올라갈 힘이 고갈되어 버렸다.

헉헉대는 숨소리마저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인백 씨 역시 체력이 바닥난 것 같았다. 배낭이 짓누르고 있는 무게를 감당할 수 없었다. 배낭을 벗었다. 배낭을 벗었는데도 몸이 녹아내리고 있는 것 같아서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땅바닥에 퍼져 앉아서 물을 마셨다. 물을 마시자 금세 가슴팍 살갗으로 물이 배어 나왔다. 옷깃을 헤치고 가슴팍에 송골송골 맺힌 물방울을 검지 손가락 끝으로 찍어서 혀에 대어 보았다. 소금기가 전혀 없는 맹물이었다. 바싹 마른 몸이 수분을 흡수해 몸 밖으로 내보낸 것이다. 몸이 체온을 떨어뜨리기 위한 자구책이었다.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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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태씨는 군복무중이던 22살 때 수류탄 폭발사고로 두 눈을 실명하고 1급 시각장애인이 됐다. 꾸준히 장애인계에서 활동해왔으며 현재 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장이자 전북 시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 4대 극한 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마라토너이자 '삼 일만 눈을 뜰 수 있다면'이라는 시집을 낸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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