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려의 말과 함께 앞을 볼 수 없는 내게 손까지 흔들어 주고 가는 브랜튼에게서 따뜻한 우정을 느꼈다. ⓒkbs 방송 화면 캡쳐

“주식시장은 인간의 탐욕이라는 불나방이 날아드는 광기의 장이오. 만유인력을 발견한 뉴턴이 천체의 법칙은 예측할 수 있어도 주식시장에서의 인간의 광기는 도저히 예측할 수 없다고 했소. 결국 뉴턴도 주식시장에서 모든 재산을 잃고 말았지요. 화가 폴 고갱도 런던의 증권가에서 일을 했었지요. 탐욕의 줄기가 얽혀 있는 증권가의 비정한 구조에서 느낄 수밖에 없는 환멸을 떨치지 못해 파리로 갔소. 고갱은 화가가 되기 위해 파리로 가서 말할 수 없는 가난에 시달렸소. 그리고 타히티로 가서 불멸의 화가가 되었지요. 물론 고갱의 정신 속에는 예술이라는 마그마가 끓고 있었지만."

"……."

"나도 증권가에서 20년 넘게 일을 하는 동안 고유한 나를 잃고 있다는 자괴감 때문에 괴로웠소. 그래서 택한 게 사막 레이스였소. 나는 이 고통의 시간에서 진정한 자아를 찾을 수가 있었소. 내년에는 남극 레이스에 도전할거요. 극지 레이스의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고 나면 내 삶이 단세포적인 삶이 아니었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소.”

나는 브렌튼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격려의 말을 했다.

“미스터 브랜튼, 당신의 자아를 찾으려는 레이스에 성원의 박수를 보내고 있소. 파이팅!”

“미스터 송, 당신의 레이스는 감동 그 자체이오. 당신은 이번 레이스에 참가한 모든 레이서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고 있소. 당신은 위대한 레이서요. 나는 당신과 함께 레이스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행복하오. 그리고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될 거요. 나는 당신이 이 레이스를 훌륭히 끝낼 수 있으리라 믿어요. 파이팅!!!”

격려의 말과 함께 앞을 볼 수 없는 내게 손까지 흔들어 주고 가는 브랜튼에게서 따뜻한 우정을 느꼈다. 물론 손을 흔들어 주었다는 말을 인백 씨가 해주었지만.

새벽의 어둠과 사막의 정적을 흔드는 레이서들의 스틱 소리가 뜸해진 걸로 보아 인백 씨와 나는 오늘도 후미에 뒤처져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발 디딜 자리에 장애물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스틱을 이용하지만 다른 레이서들은 체력 부담을 줄이기 위해 스틱을 사용했다. 스틱을 번갈아 짚으면서 몸 쪽으로 당기듯이 하며 뛰면 체력 소모를 현저히 줄일 수가 있다.

컨트리크로스 스키어들이 스틱을 이용해 평지를 달리거나 경사면을 올라가는 것처럼. 나는 다른 레이서들에 비하면 스틱의 이용도에서도 불리하다 못해 손해를 보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내게는 정상인들에게는 없는 그 무엇이 있다. 그건 바로 앞을 못 보는 장애다. 장애를 극복하려는 의지가 정상인에게는 없는 힘이다. 이 힘은 경이로울 정도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이끌어 주었다.

나는 내가 지닌 생명의 힘을 믿는다. 그 생명의 힘이 ‘평생 동안 해주는 밥이나 먹으면서 방안에 있어야 할 몸’으로 이 아프리카 대륙의 사막 사하라를 달리게 해주고 있다.

“관장님, 해가 뜨기 직전이에요. 지평선 위의 하늘이 붉게 물들고 있네요.”

나는 대기의 염열(炎熱)이 지표면마저도 녹이려 드는 오늘도 달릴 것이다. 나는 순간을 최선을 다해 달릴 것이다. 순간이 이어져서 한 시간이 되고, 하루가 되고, 한 달이 되고, 일 년이 되고, 일생이 되는 것처럼. 생명을 지닌 모든 존재는 엄밀히 말해서 순간을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죽음조차도 순간이 아닌가!

발바닥에 감지되는 모래의 서걱거림이 다르게 느껴진다. 모래밭의 표면에 딱딱하면서도 얇은 막이 형성되어 있는 것 같다. 발을 디디면 그 막이 낮은 파열음을 내면서 발이 모래 속에 묻히는 걸 어느 정도는 막아 주었다. 발바닥과 지면의 마찰 강도가 낮아 부르튼 발바닥의 고통이 덜 느껴진다.

호흡기로 들어오는 공기의 온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살갗으로 배어 나오는 땀이 소금버캐가 끼어 서걱거리는 옷을 부드럽게 해주었다. 그러나 조금 지나 이 땀의 수분도 증발 되어버리고 나면 염분이 고체로 변해 섬유의 표면에 막을 이룰 것이다. 내가 달리고 있는 모래밭의 표면에 형성된 막처럼. 모래밭의 표면에 형성된 막도 염분일지 모른다.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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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태씨는 군복무중이던 22살 때 수류탄 폭발사고로 두 눈을 실명하고 1급 시각장애인이 됐다. 꾸준히 장애인계에서 활동해왔으며 현재 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장이자 전북 시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 4대 극한 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마라토너이자 '삼 일만 눈을 뜰 수 있다면'이라는 시집을 낸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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