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태씨가 사막을 걷고 있다. ⓒkbs방송 캡쳐.

"인백 씨, 지금 무슨 생각하고 있어?”

“아무 생각도 안 나네요. 생각까지도 이놈의 불볕이 말려버리는 것 같아요.”

1m밖에 안 되는 생명줄을 잡고 함께 달리긴 해도 생각은 전혀 딴판일 수도 있으리라.

나는 인백 씨도 나처럼 닥터 테일러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을 줄 지레 짐작하고 있었다. 오르막을 다 올라가 평지가 시작되고 있는 지역으로 들어섰을 때였다.

“아이고, 행님 아잉기요? 인백이 행님이랑 욕 보지예?”

앞쪽에서 우리를 발견한 재철씨가 원형질의 경상도 말로 우리를 반겼다. 재철 씨는 한강 둔치에서 두달 남짓 야간 훈련을 함께 했었다.

경상도 사람들이 기질적으로 무뚝뚝하다는데 재철 씨는 오히려 그 반대였다. 친화력이 좋은 데다 무엇이든지 수중에 있는 것을 나누어주려는 성품이었다.

“재철씨, 어머니의 정성이 담긴 인삼 미숫가루 덕을 참 많이 봤어. 지금까지 버텨온 게 인삼 미숫가루 힘인 것 같아.”

“갱태 행님, 인백이 행님, 꼭 완주 하이소. 그런 의미로 인삼 미숫가루 좀 더 자시고 가이소.”

재철씨가 배낭에서 인삼 미숫가루가 담긴 봉지를 꺼냈다.

“그릇이 없으니까 가루를 입에 푹 떠 넣고 물을 자시이소.”

재철 씨가 내 입에 인삼 미숫가루를 듬뿍 떠 먹여주었다. 물을 마시자 기도를 매우고 있던 미숫가루가 재채기와 함께 뿜어져 나왔다. 재철 씨 모친의 정성이 담긴 미숫가루가 허공에 뿌려지는 게 아까웠다.

사막에서의 레이서들은 야전의 병사들 같았다. 자신이 먹을 일주일치 식량을 스스로 짊어지고 달려야 했다. 주최 측에서는 잠자리와 물만 제공할 뿐 그 외 모든 것은 스스로 알아서 해결해야 했다.

동양인 레이서들은 주로 손쉽게 먹을 수 있는 알파미(凍結米)를 준비했다. 전투식량으로 동결 건조시킨 밥이었다.

출발하는 체크 포인트에서 물을 부어서 다음 체크 포인트에 도착하면 맛있는 밥이 되어 있었다. 라면 역시 중요한 식품이었다. 라면의 얼큰한 국물 맛은 영양가 이전에 몸의 활기를 돋우어 주었다.

그 밖에도 참치통조림, 쇠고기 장조림, 건조 김치, 김, 스팸, 멸치, 소시지 따위를 준비했다.

어제 내가 배낭 무게를 줄이느라 사막에 버린 식품들은 대부분 그와 같은 종류들이었다. 아침과 저녁은 쌀밥과 라면을 주식으로 삼았지만 레이스를 해야 하는 점심은 행동 식으로 해결했다. 주

로 육포, 과자, 양갱, 초콜릿, 말린 바나나, 땅콩, 아몬드 등을 먹었다. 행동 식은 점심때뿐만 아니라 수시로 먹어주었다. 극심하게 소모되는 칼로리를 보충해 주기 위해서였다.

레이스 중에는 땀을 많이 흘리고 에너지 소모가 많기 때문에 전해질 보충제와 비타민을 빼놓을 수가 없었다.

두 번째 체크 포인트에 들어서니 오늘의 고생 절반을 끝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절반의 안도였다. 텐트에는 휴식과 치료를 겸하고 있는 레이서들이 많이 있었다.

인백 씨 말에 따르면 치료는 거의가 발바닥에 생긴 물집 치료라고 했다. 의사들은 발바닥에 부푼 물집의 표피를 오려내서 약을 바르는 치료를 하고 있다고 했다.

속살이 어느 정도 표피화되기 전에는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서 부드러운 무엇이 닿기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상태로는 열이면 일곱 여덟은 레이스를 포기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 고유의 방법으로 치료를 했다. 바늘 끝으로 물집을 터뜨려서 물만 빼내고는 속살과 표피가 서로 붙게 했다. 의사들의 치료에 비해 월등히 효과가 좋았다.

왼쪽 발바닥에 새로 생긴 물집을 바늘로 터뜨려서 말린 후 알콜올젤을 발랐다.

체크 포인트를 나서자 이내 모래구릉 지대가 시작되었다. 세 번째의 모래구릉에서 이동욱씨와 정혜경씨를 만났다. 이동욱씨는 첫날부터 시작된 요통과 발 부상으로 악전고투를 하고 있었다. <계 속>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송경태씨는 군복무중이던 22살 때 수류탄 폭발사고로 두 눈을 실명하고 1급 시각장애인이 됐다. 꾸준히 장애인계에서 활동해왔으며 현재 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장이자 전북 시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 4대 극한 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마라토너이자 '삼 일만 눈을 뜰 수 있다면'이라는 시집을 낸 시인이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