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로에 주저 앉아 화상이 덧나 진물이 흐르는 종아리에 알코올젤을 바르고 있을 때 의료진을 태운 지프가 앞에 와 멎었다. ⓒkbs방송 캡쳐.

“나이는?”

“마흔다섯.”

“어디를 경유해서 왔는가?”

“서울을 출발해서 두바이를 경유해서 왔다.”

“여기는 왜 왔는가?”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분노가 치밀었다. 그 말꼬리에는 ‘앞도 못 보는 주제에 정상인도 힘든 레이스를 끝낼 수 있을 것 같아’라는 비아냥거림이 달려 있었다.

첫날, 장비검사를 끝냈을 때 테일러가 내게 다가와 충고를 해주었다. 그 때는 그게 의사로서 내게 해주는 우정어린 충고라고 생각했다.

“헤이 미스터 송, 앞을 못 보는 1급 시각장애인이라고 하던데 의사로서 한마디 충고를 하겠다. 당신의 신체적 결함으로는 이 레이스를 할 수 없을 것 같다. 고생하지 말고 아예 지금 포기를 해라.”

나는 그 때, 그의 말을 듣고 조금이라도 불쾌하거나 달리 해석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코리아라는 나라가 있나’라는 말은 나 개인을 모독하는 것보다 더 참을 수 없는 모멸이었다. 그때 신체검사장에서 내 이름과 내가 1급 시각장애인이라는 걸 알 정도면 신청서에 기재된 나의 국적을 분명 확인했을 것이다.

“그러는 당신은 왜 왔나? 보수를 많이 준다고 해서 왔나?”

나는 노골적인 적개심을 드러내면서 말했다.

“나는 지금 당신의 건강 상태를 체크하고 있다. 그런데 당신의 발언은 우호적이지가 않다.”

“당신이 조금 전에 한 말은 우호적이라고 생각하나? 코리아가 지리적으로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면 물어봐야 할 것 아닌가. 마치 지구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나라라는 뉘앙스의 말을 하는 당신을 우호적으로 대하란 말인가. 나는 당신에게 내 건강상태에 대해서 도움을 받지 않아도 아무런 지장이 없다. 내가 이 레이스에 참가한 것은 라이센스를 따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리고 주최측에 이미 서약을 했다. 레이스 도중 일어나는 어떤 일에 대해서도 책임을 묻지 않기로. 그것은 곧 내 몸, 내 생명까지도 내가 책임을 지겠다는 의미다. 당신이 실격을 시켜도 나는 레이스를 할 것이다. 이 레이스는 바로 나 자신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레이트, 그레이트, 미스터 송, 당신은 위대한 레이서다. 파이팅!”

의료진 차량에 타고 있던 다른 의사가 내 말을 듣고 손뼉을 치며 격려를 해주었다. 의료진이 탄 지프가 저만치 멀어져 가는 것을 보며 인백 씨가 불만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관장님, 저 친구들의 임무는 어떻게든 레이스를 끝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데 있어요. 엄밀히 말하면 레이싱 더 플래닛에서 저 친구들을 고용한 게 아니고 우리들이 저 친구들을 고용한 거라구요.”

어떤 상황에서든 감정이 섞인 충돌은 뒷맛이 개운치가 않다. 닥터 테일러와의 언쟁 후유증이 나의 체력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닥터 테일러가 했던 ‘코리아라는 나라가 있나?’ 라는 말이 계속 귓가를 맴돌고 있었다. 속에서 더위와는 다른 열기가 끓고 있었다. 내가 닥터 테일러에게 정말로 화가 났던 것은 장비검사를 마치고 신체검사를 하는 과정에서 했던 말 때문이 아니었을까?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나의 조국마저도 폄하해서 말했던 요인이었을 것이다. 나는 사막에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복병을 만난 셈이었다. 아니 그 복병은 내 마음속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타인에 대한 공격성, 그게 바로 내 마음 속에 숨어 있던 복병이었을 것이다.

기분이 안 좋긴 인백 씨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지형이 조금만 바뀌어도 설명을 해주는 데 오르막이 시작되는데도 말이 없다. 다운된 내 감정이 전염이라도 된 것일까?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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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태씨는 군복무중이던 22살 때 수류탄 폭발사고로 두 눈을 실명하고 1급 시각장애인이 됐다. 꾸준히 장애인계에서 활동해왔으며 현재 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장이자 전북 시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 4대 극한 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마라토너이자 '삼 일만 눈을 뜰 수 있다면'이라는 시집을 낸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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