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일정은 마른 흙먼지가 날리지 않는 석회암 지대로 접어들었다. ⓒkbs 방송 캡처

그리고 떠난다.

대륙을 횡단할 때도, 거대한 수직 암벽을 올라갈 때도, 국토를 종단할 때도, 산을 오를 때도 항상 내게 물었다. 자연이 내게 주는 시련을 이겨내고 나서 얻을 게 무엇인가를.

나는 아직도 그것을 얻지 못했다. 아니 무엇인가 분명히 얻긴 했는데 그게 무엇인지를 명확히 모르겠다. 내가 지금 사하라를 달리고 있는 것도 내 안에 있는 그 무엇을 명확히 알고 싶어서인지도 모른다.

지면은 여전히 딱딱했다. 마른 흙먼지가 날리지 않는 것 같다. 실명을 한 이후 예민해진 것은 청각과 후각이다. 그리고 온몸의 세포가 감지해 내는 촉감이다.

마른 흙먼지의 그 흙 특유의 냄새와 매캐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비릿한 냄새가 풍기는 것 같다.

“인백 씨, 석회암 지대로 들어가는 가 봐?”

“안 그래도 지금 막 석회암 지대라는 얘기를 하려던 참이었는데 관장님 앞이 안 보인다고 속이려 했다가는 큰 망신당하겠네요.”

석회암 지대는 오래 계속되었다. 아득한 그 옛날 바다였던 이 곳, 물결에 일렁이는 해초와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헤엄쳐 다녔던 바다를 달리고 있다.

아득한 시간의 길을 걸어오는 동안 이 세상 모든 것은 변한다. 그 변화가 있었기에 지금 '나'라는 존재도 있는 것이다. 앞으로 또 아득한 세월이 흐르면 이 사막이 다시 바다가 될 수도 있으리라. 그 긴긴 세월의 틈바구니에 끼어 있는 '나'라는 존재는 이 사막에 널려 있는 한 톨의 모래 같은 존재일 뿐이다.

하지만 그 모래 같은 작은 존재 속에 이 지구하고도 바꿀 수 없는 생명의 존엄함과 영혼의 숭고함이 담겨 있다. 그 생명의 존엄과 영혼의 숭고함을 증명하기 위해 나는 지금 이 사막을 달리고 있는 것이다.

나는 발바닥의 통증을 가능한 한 줄이기 위해 뒤꿈치로 착지를 했다. 배낭을 지고 있는 하중 때문에 뒤꿈치로 착지를 할 때마다 온몸으로 기분 나쁜 진동이 퍼졌다. 그리고 피로의 강도가 더 심해졌다.

민이에게 열흘은 더 달릴 수 있다고 한 말을 상기했다. 그게 허세가 아니라 진정한 약속이라면 발바닥의 통증을 기피할 생각을 말아야 한다. 나만 겪는 고통이 아니라 모든 레이서들이 겪고 있지 않은가. 함께 달리는 인백 씨 역시 마찬가지이리라.

“인백 씨, 발바닥에 불이 나는 것처럼 아플텐데 잘도 참고 달리고 있네.”

“나는 지금 관장님 생각하면서 참고 달리고 있어요. 관장님은 새끼발가락 발톱까지 뽑았는데도 신음 소리 한 번 안 내고 달리잖아요.”

“어디 적당한 데서 쉬었다 가자구. 어제에 비하면 10㎞나 짧은데 설마 낙오 하겠어!”

“관장님, 조금 있으면 해가 뜰 텐데 해뜨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가지요. 정 힘드시면 쉬었다 가구요.”

“아니. 인백 씨 말대로 해 뜨기 전에 더 가자구.”

석회암 지대를 벗어나 주먹만 한 잔돌들이 깔려 있는 사막 특유의 황무지가 시작되는 것 같았다. 매캐한 흙먼지와 발끝에 차이는 돌멩이가 그걸 말해주고 있었다.

해뜨기 전 사막의 아침 공기는 원시의 신선함 그 자체였다. 사막에 깔린 태고의 정적 같은 신선함이었다. 폐부 가득 아침 공기를 들이마셨다. 발바닥의 통증이 점점 무디어졌다.

두 시간 남짓 달렸을 때 사막의 절대자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대기의 기온이 올라가는 게 호흡기로 감지되었다. 나는 아랫배에 힘을 주고 투지를 끌어 모았다. 오늘 하루, 저 가공할 태양과 내가 알 수 없는 이 사막의 지형과 악마의 숨결 같은 모래 폭풍과 싸우기 위해.

“헤이, 미스터 케이티 파이팅!”

의료진이 타고 있는 지프에서 의사들이 내게 성원을 보내주었다. 이번 사하라 레이스에서 시각장애를 무릅쓰고 레이스를 하고 있는 내가 어느새 유명세를 타고 있는 모양이었다.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내게 성원을 보내준 의사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주로가 경사를 이루면서 지면의 굴곡이 심해졌다.

“우뚝 솟은 바위들이 많이 있어요.”

인백 씨가 지형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나로서는 바위가 있든 모래구릉이 있든 달리기만하면 되었다. 주변 지형을 보고 미리 상황 판단을 해서 마음으로 대처할 필요가 없었다.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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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태씨는 군복무중이던 22살 때 수류탄 폭발사고로 두 눈을 실명하고 1급 시각장애인이 됐다. 꾸준히 장애인계에서 활동해왔으며 현재 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장이자 전북 시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 4대 극한 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마라토너이자 '삼 일만 눈을 뜰 수 있다면'이라는 시집을 낸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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