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백 씨와 사막을 걷고 있다. ⓒkbs 방송 캡처

두 번째 체크 포인트를 출발할 때의 발걸음이 생각보다 가벼웠다. 한 시간 남짓 죽음보다 깊은 잠을 자고 난 몸이 소생을 한 모양이다. 체크 포인트를 출발하기 전에 먹은 육포와 말린 바나나가 생기를 돋우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음성온도계가 58℃를 알려주었다. 수은주가 37℃, 38℃만 되어도 살인적인 더위 어쩌고 하는 것이 정말로 호들갑에 불과하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이 살인적인 불볕에서 벗어나려면 달리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나는 불 채찍이 등가죽을 내리치고 있다고 속으로 상황설정을 해두었다.

그리고 그 불 채찍을 피하기 위해서는 오직 달려야 한다고 마인드 컨트롤을

하기 시작했다.

레이스 파트너 인백씨도 무슨 생각을 하며 달리는지 체크 포인트를 출발해서부터 줄곧 입을 다물고 있다. 어쩌면 체력을 아끼기 위해 입을 다물고 있는지도 모른다.

반바지를 입은 탓에 노출된 왼쪽 종아리 바깥 면이 화상을 입기라도 한 듯 화끈거리고 쓰라렸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메마른 먼지가 풀썩거리는 게 감지된다. 인백씨와 나의 발걸음 소리뿐 사막은 뜨거운 햇살과 함께 무거운 정적이 누르고 있다.

체크 포인트를 출발한 지 30분이 조금 지났다. 그동안 두 차례나 물을 마셨지만 혀의 침샘마저 말라버려서 입천장에 혀가 닿으면 서걱서걱 소리가 날 것 같았다.

“인백씨, 잠시 쉬었다 가자구.”

“관장님, 종아리에 불에 덴 것처럼 물집이 두 개 생겼어요. 아마 화상인가 봐요. 나도 같은 위치에 물집이 생겼네요. 햇빛이

비치는 방향이에요.”

“인백씨, 입술은 어때?”

“바싹 말라서 갈라 터져 피가 나오고 쓰라려요.”

“나하고 같군. 인백씨 어디서 나는 소리야?”

나는 인백씨와 말을 하다 말고 소 워낭 소리 같은 방울 소리에 귀를 곤두세우고 물었다.

“낙타예요. 레이스 도중 낙오자가 생기면 태우고 가려고 주최 측에서 후미에 따라 오게 했어요. 그리고 저 낙타보다 레이스 속도가 늦으면 탈락이래요.”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낙타가 저승사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은 고달픔의 연속이다. 그 고달픔 속에서 역경을 이겨낼 에너지를 얻고 극복의 과정에서 의미와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

그게 바로 삶이다. 죽음은 그 고달픔으로부터 해방이다. 그러나

보람도 의미도 그 무엇도 없어져 버린다. 지금의 레이스도 삶이다. 포기하고 저 낙타 등에 올라타면 온갖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곧 죽음이다.

“인백씨, 어서 가자고.”

나는 저승사자에게 쫓기기라도 하듯 허둥대며 말했다.

저승사자에게 쫓기듯 얼마나 달렸을까? 나는 달리면서 몇 번이고 속으로 부르짖었다. 기어가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로 저 저승사자 등에는 타지 않을 것이라고.

다시 사막의 냉혹하지만 아름다움의 극치인 모래구릉 지대에 이르렀다. 발목이 뜨거운 모래 속으로 거침없이 빠지고 가쁜 숨을 내쉴 때마다 몸 안의 기운이 다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헉헉대며 모래구릉 위로 올라갔다.

“관장님, 모래 언덕 선이 황홀하네요. 모래구릉의 선이 면도날처럼 날카로운데 곡선으로 휘어지면서 뻗어 있어요.

지금은 해가 서쪽에서 비추는데 동쪽과 서쪽의 모래 빛깔이 기가 막힌 대비를 이루고 있어요.

햇살을 받고 있는 서쪽은 눈부신 황금색이고 동쪽은 조금 어두운 갈색인데 환상적일 만큼 아름다워요. 나 혼자 보는 게 정말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나는 빛과 색과 선을 볼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빛과 색과 선의

아름다움을 알고 있다. 때문에 나는 볼 수가 있다. 시신경을 통해서 보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볼 수가 있다.

눈이 성하면 풍경이 한눈에 들어와 보이지만 마음으로 보면 풍경 속의 부분 부분을 따라가며 본다. 때문에 풍경의 상이 마음속에 오래 남아 있게

마련이다.

모래구릉을 셀 수도 없이 넘고 또 넘었다.

나는 모래구릉을 넘으며 생각했다. 사막은 그 자체가 길이라고. 모래구릉 지역을 빠져 나왔을 때 서쪽의 지평선으로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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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태씨는 군복무중이던 22살 때 수류탄 폭발사고로 두 눈을 실명하고 1급 시각장애인이 됐다. 꾸준히 장애인계에서 활동해왔으며 현재 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장이자 전북 시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 4대 극한 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마라토너이자 '삼 일만 눈을 뜰 수 있다면'이라는 시집을 낸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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