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국가적인 주요 행사나 장애계 관련 행사에서 수화통역을 제공하는 것이 일반적인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제대로 된 수화통역이 제공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기본적으로 수화통역은 말하는 사람의 바로 옆에서 해야 한다.

농인들이 정확한 내용을 전달받기 위해서는 통역사의 손의 움직임만 보는 것이 아니라 말하는 사람의 전체적인 표정과 행동들을 통역 내용과 동시에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의사소통에 있어서 말하는 사람의 내용 외에 비언어적인 행동도 의사소통에 있어 매우 중요한 정보를 포함하고 있는 것도 이유다.

그런데 유독 국가적인 큰 행사, 특히 사회적으로 지위가 있는 내빈이 인사말을 하거나 축사를 하게 되는 경우 수화통역사들이 옆으로 가서 통역을 하려고 하면 의전 담당자나 행사관계자들은 마치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멀리 떨어져서 통역을 해야 된다고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

말하는 사람의 옆에서 수화통역하는 것을 결례라고 생각하는 잘못된 인식 때문인데 외국의 경우에는 대통령 바로 옆에서 수화통역을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그런 문화가 수용되지 못하는 분위기이다.

또한 농인들이 모든 내용을 다 알 필요는 없으며 중요한 정보만 알면 되기 때문에 수화통역사가 중요한 내용만 통역을 제공하면 된다는 그릇된 생각 때문에 행사 순서 중 일부는 통역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거나 무대 배치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농인들이 보기 힘든 위치에 수화통역사를 배치하는 경우도 많다.

심지어 농인들이 대다수인 행사에서 원형테이블에 귀빈들이 앉기 때문에 그 자리에 농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화통역사 배석이 안되므로 단상에 있는 수화통역사를 통해 행사 내용만 알면 되니 원형테이블에 수화통역사 배치는 안된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농인들은 그 자리에 함께 한 귀빈들과 대화도 하지 말고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라는 것과 같다.

이와는 달리 사회적으로는 수화통역사를 마치 농인을 위해 헌신하는 천사 같은 존재로 미화시키기만 하거나, 수화통역에 대한 정당한 비용을 청구하는 것은 마치 돈만 밝히는 수화통역사로 치부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갖고 있기도 하다.

수화통역사는 행사장의 악세사리가 아니라 농인이 청인과 동등한 정보를 취득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전문가이다.

수화통역사는 농인들의 정당한 의사소통을 위해 존재하는 전문가로 수화통역을 하기에 가장 적합한 환경이 제공되어야 하며, 그에 합당한 처우가 당연히 뒤따라야 한다.

봉사와 희생만을 강요해서는 질 높은 수화통역에 대한 농인들의 갈증은 영원히 해결될 수 없다.

수화통역사라는 전문직에 상응하는 처우와 사회적 인식이 뒷받침 될 때 더 우수한 인력들이 수화통역사로서의 날개를 펼칠 수 있을 것이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이미혜 칼럼리스트
한국농아인협회 사무처장으로 근무했다. 칼럼을 통해서 한국수어를 제 1언어로 사용하는 농인들이 일상적인 삶속에서 겪게 되는 문제 또는 농인 관련 이슈에 대한 정책 및 입장을 제시하고자 한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