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하라사막마라톤 중 달콤한 휴식시간. ⓒkbs 캡처

백사막 지대를 벗어나 30여 분쯤 달렸을 때였다.

“관장님, 저 앞에 누가 누워 있는데요.”

13㎞ 지점이었다. 누워 있는 사람은 뜻밖에도 백전노장 이무웅씨였다. 잠시 휴식을 위해 누워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비행기 안에서 나눈 대화가 생각났다.

“골프를 좋아했는데 손가락을 다쳐서 마라톤을 시작하게 되었소.”

“처음부터 마라톤을 잘 하셨나요?”

“아니오. 집 근처 체육공원에서 달리기를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숨이 가빠서 트랙 반 바퀴도 못 돌겠더라고요.”

“늦은 연세에 시작하셨으니 당연히 숨이 차셨겠지요.”

“나이를 극복하는 건 의지라고 생각해요. 중년 아줌마들도 잘

뛰는데 나이 좀 먹었다고 못 뛸 게 뭐 있나 싶어서 오기로 뛰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오기로 시작했는데 차츰 의지로 바뀌더라고요. 아마 송 관장도 의지가 없었으면 지금 사하라에 가지 않을걸요.”

“첫 대회는 언제 참가하셨나요?”

“춘천국제마라톤대회에서 5㎞ 코스를 완주하고 나서부터 자신이 생겼어요.”

“저도 안내견과 함께 춘천국제마라톤대회 5㎞ 코스가 저의 완주 코스인 셈입니다.”

“그 후로 10㎞, 하프코스, 풀코스를 완주하고 울트라까지 도전을 했지요.”

“오지마라톤은요?”

“국내에서 울트라를 완주하고 나니 욕심이 생겼어요. 그래서 작년에 중국 고비사막 마라톤에 참가해서 완주를 했어요.”

그런 이무웅씨가 다리 근육에 경련이 생겨 지금 주로에 누워 있다. 이무웅씨 말을 들어보니 쉽사리 회복될 것 같지 않았다.

양쪽 허벅지와 종아리까지 근육이 경련으로 뒤틀리고 있다고 했다. 경련에서 비롯되는 고통을 참고 있는 이무웅씨의 얼굴에 진땀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바위를 뚫을 의지가 있다 하더라도 몸이 따라주지 않으면 어쩔 수 없는 일.

이무웅씨는 결국 레이스를 포기했다. 한국팀 최초의 탈락자였다. 이무웅씨의 초반 탈락은 한국 팀에게 상당한 충격을 주었다.

이무웅씨는 한국팀의 정신적 지주였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젊은이 못지않은 체력과 활달한 성격, 그리고 연장자의 포용력 때문에 우리 모두가 존경하고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두 번째 체크 포인트에 도착하기 전에 이집트 선수 부자가 포기했다. 나는 장비 검사를 할 때부터 그 이집트인 부자가 부러웠다. 나도 아들이 자원봉사자로 참가하긴 했지만 그보다는 민과 연결된 생명줄을 잡고 달렸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했다.

이집트인 부자의 탈락은 은근한 두려움의 파장으로 전해 왔다. 사막의 땅 이집트, 곧 사하라에서 태어난 그들이 포기할 정도면 사막을 모르고 살아온 우리들로서는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체크 포인트에 도착했다. 햇볕만 가린 텐트에는 여러 나라 레이서들이 아예 벌러덩 누워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체크 포인트가 위치한 곳의 온도가 섭씨 58℃를 기록하고 있었다.

나는 텐트 속 그늘에 들어서자마자 힘없이 쓰러졌다. 유 팀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가물가물 들렸다.

“신발을 벗기고 모자와 버프도 벗겨 주세요.”

유 팀장이 눈도 뜨지 못하고 누워 있는 나를 흔들어 깨웠다.

눈을 뜨고 싶어도 눈 뜰 힘마저 없었다.

“송 관장님, 송 관장님, 물을 흠뻑 마시고 잠시 주무세요.”

유 팀장이 나를 억지로 일으켜서 물을 마시게 한 후 온몸에 물을 뿌려 주었다. 온몸의 세포들이 춤을 추는 것 같았다. 나는 이내 잠 속으로 골아 떨어졌다. 아니 피로 속으로 침몰했을지도 모른다.

잠에서 깨어나자 의료진의 심문이 시작되었다.

“국적은?”

“대한민국”

“이름은?”

“송경태”

“나이는?”

“마흔다섯”

“여기에는 왜 왔나?”

”레이싱 더 플래닛에서 주최하는 레이스를 하고 있는 중이다.”

혹시라도 일사병이나 탈진으로 인해서 온전한 정신을 지니고 있는지가 의심스러워 문진을 했다. 내가 잠들어 있을 때에도 몇 차례 혈압과 맥박을 체크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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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태씨는 군복무중이던 22살 때 수류탄 폭발사고로 두 눈을 실명하고 1급 시각장애인이 됐다. 꾸준히 장애인계에서 활동해왔으며 현재 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장이자 전북 시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 4대 극한 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마라토너이자 '삼 일만 눈을 뜰 수 있다면'이라는 시집을 낸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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