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백 씨와 사막 한가운데에서. 사진출처 kbs

아직은 침낭 속에서도 한기를 느꼈던 차가운 밤 기온의 영향이 남아 있을 것이다.

이 레이스에 참가하려고 마음을 굳힌 후 사하라에 대해 공부를 했던 내용들이 떠올랐다. 아프리카 북부의 사하라 사막은 엄청나게 넓다. 서 사하라에서 동쪽의 이집트까지 길이가 장장 5000㎞나 된다. 사하라가 언제나 메마른 땅으로 있었던 것만은 아니다. 습윤기를 거치면서 사하라는 울창한 삼림지대와 사바나 초원지대로 바뀌었다.

인류의 조상인 호모 에렉투스가 50만 년 전 우기에 처음 이 땅에 도착해 니제르강 북쪽으로, 그리고 나일강 동쪽으로 사냥감을 쫓아 종횡무진 누비고 다녔다. 10만 년 전 중부 사하라에는 작은 집단의 부족들이 흩어져 살면서 충분한 먹잇감을 사냥하고 뼈와 돌로 만든 도구를 사용했다.

이후 기후 순환에 따라 건조기가 찾아왔다. 그 시기가 언제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기원전 8000년 무렵, 마지막 습윤기가 찾아왔을 때 먼지로 혼탁해진 대기는 다시금 맑아지기 시작했다.

오늘날 늪지로 변한 차드호는 당시 니제르강까지 굽이굽이 흘러 베넹만으로 빠져나가던 거대한 내륙 호수였다. 중앙 사하라 높은 지대인 호가르 산맥은 참나무와 호두나무, 느릅나무로, 그리고 타실리 산맥은 울창한 소나무가 삼림을 이루었다.

남쪽으로 내려가면 아프리카 사바나의 비옥한 목초지에서 풀들이 바람에 넘실대고 있었다. 주변을 볼 수 없는 내 머릿속에는 사바나의 비옥한 목초지가 펼쳐지고 있었다. 몸집이 큰 뉴(아프리카 들소)들이 집단을 이루어 풀을 뜯고 있고, 기린이 높은 교목의 잎을 뜯어 먹고 있는 옆으로 얼룩말들이 꼬리로 파리를 쫓으며 한가하게 풀을 뜯고 있다.

가젤(소과의 포유류) 무리 중에서 힘이 팔팔한 놈이 이따금씩 용수철처럼 뛰어오르고 있다. 나는 도약하는 가젤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달렸다. 표범이나 사자에게 쫓길 때 가젤의 질주는 역동적이면서도 우아했다. 가젤의 그 아름다운 질주를 생각하며 달리고 있는 내 발이 단단한 물체를 차면서 상체가 앞으로 꼬꾸라졌다.

지표면에 솟은 제법 큰 돌부리를 찬 것이다. 숨이 막힐 것만 같은 뜨거운 열기가 얼굴을 맞댄 땅에서 확 풍겨왔다. 순식간에 비옥한 사바나의 초원은 사라지고 거칠고 황량한 사막이 펼쳐졌다.

“관장님 괜찮으세요?”

인백 씨는 시각장애인 도서관장 직함을 상기해서 언제나 나를 관장이라고 불렀다. 내가 넘어진 책임이 자신에게 있기라도 한 듯 인백 씨의 목소리에 미안함이 가득하다.

“사하라의 지신이 내게 신고시킨 거야. 앞으로 이 대지에 대한 경외심을 지니고 달리라고.”

나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일어나 무의식적으로 하늘을 보았다. 작열하는 태양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눈이 따갑다. 실명한 지 23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환상통’이 남아 있단 말인가?

사바나의 비옥한 초원을 그리며 달려온 행복한 시간은 끝이 났다. 사막, 그리고 앞을 못 보는 장애인, 현실로 돌아온 것이다. 내게 주어진, 아니 내 의지로 해야 할 일은 발바닥을 잠시라도 땅에 붙이지 말아야 하는 그것이다. 가차 없이 흐르는 시간처럼 발을 움직여야 한다.

“유지성 팀장이 우릴 기다리고 있네요. 500m쯤 앞에 있어요.”

유 팀장의 주행 능력으로 봐선 선두 그룹에서 달리고 있어야 마땅한데, 내가 신경이 쓰여서 일부러 기다리고 있음이 분명했다.

“괜찮으세요?”

유 팀장의 목소리에 담긴 기운이 느껴진다.

“아직은 달릴 만한데 앞으로는 모르겠어.”

“관장님 이제 시작이에요. 다른 모든 사람들도 앞은 몰라요. 잘 달리다가 갑자기 포기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거든요. 체력이 바닥나면 그 다음엔 무엇으로 버티는 줄 아세요? 깡이에요. 점잖게 말해서 의지인데 이번 레이서들 중에서 관장님만큼 깡이 좋은 사람은 없을 거예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관장님만은 반드시 완주하리라 믿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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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태씨는 군복무중이던 22살 때 수류탄 폭발사고로 두 눈을 실명하고 1급 시각장애인이 됐다. 꾸준히 장애인계에서 활동해왔으며 현재 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장이자 전북 시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 4대 극한 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마라토너이자 '삼 일만 눈을 뜰 수 있다면'이라는 시집을 낸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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