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프에는 몽골의 게르가 마을을 이루듯이 수십 채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사진출처 kbs

모래 입자들이 노출된 피부를 따갑게 공격했다. 하지만 사하라에 발을 딛고 서 있다는 사실이 감동으로 다가왔다.

이 엄혹하면서도 광막한 대지 위를 달릴 것을 생각하면 두려움이 일기도 했지만, 첫발을 디디고 있다는 사실이 감동으로 환치되었다.

8시간 20분 동안 사막을 달린 버스가 마침내 레이스의 출발지인 파라프라에 도착했다. 캠프에는 몽골의 게르가 마을을 이루듯이 수십 채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게르 한 채에는 여덟 명에서 열 명이 자도록 되어 있었다.

나는 우리 팀 아홉 명과 함께 3번 천막에 배정되었다. 어젯밤 카이로의 호텔에서 한 방에 묵었던 아들 민은 자원봉사자들 숙소로 갔다. 아쉽기도 했지만 그래도 가까이에 내 혈육이 있다고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든든했다.

캠프파이어를 하면서 스테이크와 빵으로 저녁 식사를 했다. 저녁 식사를 하는 도중 간간이 탄성이 들려왔다. 쏟아져 내릴 듯이 빛나는 별들을 보며 지르는 탄성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산꼭대기에서나 사막에서 바라보는 밤하늘이 다를 바 없으리라고. 그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 또한 다를 바 없으리라고. 나는 머릿속으로 밤하늘의 별들을 상상해 보았다.

동료들이 탄성을 지르는 사막의 밤하늘 별들은 그려지지 않았다. 대학 시절 설악산 정상 대청봉에서 야영을 하며 보았던 밤하늘의 별들이 명멸하고 있었다. 침낭 속에 누워 설악산 대청봉에서 보았던 별들을 추억하며 잠이 들었다.

“텐, 나인…, 투, 원, 제로.”

23개 나라에서 온 107명의 레이서들이 함성을 지르며 출발했다. 6박7일 동안 250㎞를 달려야 할 이들의 함성과 발걸음에는 넘치는 힘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과연 몇 사람이 마지막 골인 지점에서 환호할 수 있을지?’

나는 레이스 파트너인 인백 씨의 배낭과 연결된 1m의 생명줄을 잡고 첫발을 내디뎠다. 250㎞ 끝에 있는 골인 지점은 생각지 않기로 했다. 그저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는 데에만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우보천리(牛步千里), 소걸음이 천리 간다는 말을 마음에 새기고 소처럼 그렇게 가야만 하리라.

첫 번째 체크 포인트는 10.5㎞. 오후로 접어들면서 체력이 떨어질 걸 감안해 2시간 30분 안에 첫 번째 체크 포인트에 도착해야 하리라고 마음속으로 다짐을 했다. 스타트 라인을 출발해서 달리는 동안 평탄한 지역이 한동안 계속되었다.

“인백 씨, 주변 풍광이 어때?”

“황량한 지표면에 돌멩이와 모래뿐이에요.”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도 없단 말야?”

“그래요. 저 아득한 지평선 너머에는 있을지 몰라도 가시거리 안에는 모래와 돌멩이뿐이에요.”

“선수들은 잘 달리고 있는 거지?”

“길게 행렬을 이루면서 달려가고 있는데 선두 그룹은 작은 점으로 보여요.”

선두 그룹이 작은 점으로 보일 정도면 지금 나는 가장 후미에서 달리고 있음이 분명하다. 나는 애당초 이 레이스에서 등수에는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다만 완주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레이스 파트너 인백씨는 나와 생각이 다를 수도 있으리라. 자청해서 나의 레이스 파트너가 되어 준 데 대해서는 말할 수 없이 고마움을 느끼지만 또 한편으로는 나 때문에 후미에 뒤처져 레이스를 해야 하는 것에 대한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9시에 출발해 30분 조금 넘게 달렸다. 발바닥으로 느껴지는 감촉이 모래는 아니다. 가끔 발끝에 잔돌이 차이고 잔돌을 밟는 바람에 발목이 삐끗하기도 했다. 사막의 더위가 얼마나 체액을 말리려 들지는 모르지만 아직은 견딜만하다. 하긴 이제 10시도 안 되었으니 하루 중에서 기온이 가장 높이 올라가는 두시가 되려면 한참을 있어야 할 것이다.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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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태씨는 군복무중이던 22살 때 수류탄 폭발사고로 두 눈을 실명하고 1급 시각장애인이 됐다. 꾸준히 장애인계에서 활동해왔으며 현재 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장이자 전북 시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 4대 극한 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마라토너이자 '삼 일만 눈을 뜰 수 있다면'이라는 시집을 낸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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