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척수장애인협회는 3대 염원을 가지고 있다. 척수유형분리, 한국척수센터건립, 척수장애인재활지원센터 전국 확대이다.

특히 척수센터는 협회에서 엄청난 에너지를 쏟았고 세계의 우수한 척수센터도 견학하고 연구보고서도 만들고 기재부의 예비타당성조사도 2번이나 했으나 결국은 무산되었지만 아직도 척수센터 건립에 대한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협회가 생각하는 한국척수센터는 의료적인 치료에만 집중하는 현재의 재활시스템의 문제를 극복하려는 욕구에서 출발하였고, 진정으로 사회에서 필요한 실질적인 재활에 초점이 맞추어진 당사자 중심의 센터이다. 병원에서 지역사회로의 가교역활을 하는 사관학교같은 역할을 하려는 곳이다.

그렇게 오매불망 갈망하는 척수센터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꼽히는 네팔에도 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방문한 네팔척수재활센터(Spinal Injury Rehabilitation Center, 이하 SIRC)는 협회가 생각하던 많은 부분을 실행하고 있었고, 특히 직원들의 의지는 선진국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다고 본다. 그들에게 진정으로 척수장애인들의 재활과 사회복귀를 갈망하고 지원하려는 의지가 보였다.

SIRC의 초석은 이 연재의 1편에서 소개한 적이 있는 카낙(Kanak) 씨 사고로 시작되었다.

14년 전 안나푸르나를 트랙킹하던 도중 절벽에서 100피트(약 30미터) 정도 아래로 떨어져 목이 부러지는 부상을 당했다고 한다. 당시는 8월이어서 네팔의 우기였고 주변에 도움을 청할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나 다행히 빗물을 받아 조금씩 목을 축이며 구조를 기다렸고, 포터의 도움을 받아 로프를 이용하여 절벽을 탈출하였으며, 뼈가 으스러지는 부상을 당했지만 적절한 재활치료를 받고 운 좋게 현재는 거의 정상 생활이 가능한 상태이다.

이런 고통스런 재활을 마치고 척수장애에 대한 관심과 재활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낀 카낙 씨는 척수재활센터의 건립을 위해서 동분서주하게 되었고, 우여곡절 끝에 2002년 4월 7일 조르파티(Jorpati) 네팔장애인협회 빌딩의 일부를 임대하여 10병상, 3명의 직원으로 첫출발을 하였다. 이 날 개소식에는 에베레스트산을 최초로 오른 산악인인 에드먼드 힐러리경도 참석을 하였다고 한다.

이후 2008년 11월, 스위스 및 홍콩의 지원을 받아 카투만두 외곽 상아(Sanga)라는 곳으로 신축 이전을 한 SIRC는 현재는 51여개의 병상을 보유하고 있고, 현재 71명의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고무적인 것은 직원 중에 12명이 장애인이고 그중에 SIRC에서 환자로 생활했던 척수장애인들도 직원으로 고용되어 다른 환자들을 재활을 지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네팔에서 하나밖에 없는 척수재활센터인 SIRC는 비영리 기구로 9명의 이사회로 구성되어 있다. SIRC는 자체적으로 예산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펼치고 있다고 한다.

네팔에서 저명인사인 카낙 씨의 개인적인 사고로 인해 SIRC가 시작되었지만 이렇게 발전하게 된 바탕에는 역시 당사자의 경험과 갈망,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SIRC는 네팔에서는 보기 드문 현대적인 시설로 지어졌다. 산이 많은 네팔답게 약간 경사진 대지에 2층 구조로 지어진 센터에 도착한 일행은 그 시설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애인용 화장실이 널찍하게 지어져 있고 샤워시설까지 있는 것이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다.

센터장인 이샤(Esha)씨의 환대를 받고 주요 직원들과 함께 한 1차 미팅을 통해 향후 우리 척수협회가 네팔에서 하고자 하는 국제개발협력사업의 취지를 충분히 설명하고 100% 동의와 적극적인 협력을 약속받았다.

피부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고 환경도 다르지만 척수장애인들이 겪는 여러 어려움은 한국과 그리 다르지는 않았다. 사회의 약자로 중증의 척수장애인이 겪는 어려움은 어디서나 대동소이하기 때문이다.

이어진 SIRC의 라운딩을 통해 네팔의 척수장애에 대한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다.

현재 자동차 사고 등 현대적인 사고가 증가추세이기는 하나 여전히 낙상과 같은 전통적 의미의 사고가 가장 큰 원인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낙상을 당한 다음 환자를 옮기는 과정에서 2차 사고가 부상을 더욱 심각하게 만들기도 하며, 환자의 운송수단이 목초를 수집하는 대나무 바구니 정도이기 때문에 운송 과정에서 부상이 더 심각해지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많이 놀랐다.

우리나라도 지금은 응급조치가 잘 되고 있는 편이나 과거에는 척수손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환자를 업거나 택시 등에 앉혀서 이송되는 경우도 있었다.

2002년 개원이후 현재까지 1,211명의 척수장애인들이 센터에서 훈련을 받고 집으로 갔다고 한다. 척수손상 환자들에 대한 데이터를 보유하고 잘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척수손상 환자가 발생하면 우선적으로 병원으로 이송하고 외과적 수술을 마친 다음 재활센터로 이송하여 재활치료를 받아야 되나, 여러 상황으로 인해(특히 금전적이거나 여성이 다칠 경우는 치료 포기 등) 모든 환자들에게 재활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어서 일부는 집으로 복귀한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척수장애는 외과적인 수술도 중요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이 재활훈련이기 때문이다.

재활서비스를 받기 위한 입원과정에 특별한 기준은 없으며, 치료를 받고자 하는 척수손상환자는 누구든 입원 신청이 가능하며, 비용은 소득 수준에 따라서 차등 부여하되 최소한의 액수로 입원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었다.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고 후원 등으로 운영되지만 사정이 어려운 환자에게는 무료로도 훈련을 해주고 있다고 하니 참 인간적으로 운영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환자들은 3개월 정도 머무르며 훈련을 받고, 보다 장기간 치료를 원하더라도 추가적으로 받기는 어렵다고 한다.

한국의 경우 병원에서 몇 년씩 거주하다시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오랜 병원생활이 효과적인 재활훈련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재활센터에는 남성의 수가 여성의 수보다 많다. 남성중심 사회이며 가장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므로, 여성이 부상당한다 하더라도 가정에서 남성보다 우선순위가 떨어진다. 여성도 병원 치료는 받으나, 비용문제 때문에 재활센터에 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또 하나 특이 한 것은 네팔은 아직 간병인이나 활동보조인 같은 것이 없어서 척수장애인을 돌볼 수 있는 가까운 가족이 같이 센터로 같이 들어와야 한다. 보호자를 위한 직업재활도 실시하고 있어 부인들이 재봉기술 등을 배워 생계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참 합리적이지 않은가?

병실은 남녀로 나누어진 다인실의 병실도 있고 욕창치료 등 격리가 필요한 cabin형 병실도 있고 1인실도 있었다. 부유층 또는 기부자 대상용의 별도의 1인실이라 한다.

환자들을 대상으로 카운슬링을 제공하고 있는 상담가는 10년 전 척수손상을 당한 환자 출신으로, 재활치료를 받은 후 이 곳에 취업되어 상담가로 일하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그렇게 척수장애인 당사자를 상담가나 사회복지사로 채용하라고 해도 소귀에 경 읽기인데, 이 곳 네팔은 부럽게도 그렇게 하고 있었다.

외래 환자용 치료실은 척수손상의 정도가 심각하지 않은 환자를 대상으로 통원 치료를 받게 하며, 물리 치료 등 다양한 치료를 제공한다. 컨설팅 제공을 위한 1명의 의사가 수시로 방문하며, 14~15명의 간호사, 8명의 치료사가 상주하고 있다.

휠체어를 조립하여 제작하는 작업장을 가 보았다. WHO(국제보건기구)의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척수손상 환자들의 체형에 맞게 조립한다. 맞춤이라는 것이 한국처럼 신체의 각 부분을 재는 것이 아니고 휠체어의 폭만 재는 간단한 방식이다.

이 휠체어는 영국의 Motivation이라는 회사에서 디자인하였고, 개발도상국 국가에 휠체어를 제공하는 사업으로 영국의 지원으로 제공된 중국산 휠체어이다. 휠체어 한 대의 가격이 180$ 정도이나 이곳 현지인들에게는 상당히 비싼 금액이라 한다. 하지만 영국의 지원도 곧 중단될 예정이라 하여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보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네팔의 휠체어는 바퀴가 세 개인 것과 네 개인 것으로 구분한다. 부상 정도가 심하면 4바퀴식, 환자의 부상 정도가 약하거나 나이가 젊을 경우에는 3바퀴식 휠체어를 제공하고 있다. 환자들에게 직접 휠체어를 수리하고 윤활유를 칠하는 방법도 알려주고 있다.

한국처럼 날씬한 휠체어는 도로사정이 열악하여 사용을 할 수도 없거니와 가격이 비싸서 도저히 살수도 없다고 한다. 특히 척수장애인에게 필수인 에어방석은 꿈도 못 꾸고 스폰지로 된 방석을 사용하고 있었다. 네팔에서는 척수손상 환자들에게 적합한 휠체어를 찾기가 어렵다고 한다.

참고로 네팔에서는 전동휠체어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그 이유로는 가격이 비싼데다 도로사정도 안 좋고, 전기 사정도 한몫을 하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현재 전문 care giver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을 계획 중이라고 했다. <2부로 계속>

2002년 개소식 사진, 에베레스트산을 최초로 오른 산악인인 에드먼드 힐러리경이 참석해서 테이프커팅을 했다. 뒤의 백발신사가 카낙 씨다. ⓒ이찬우

SIRC전경.(작은 사진은 2008년 신축당시의 모습) ⓒ이찬우

SIRC의 내부 정원 모습. ⓒ이찬우

척수 손상 시 응급조치법을 알리는 포스터. ⓒ이찬우

75개 행정구역별로 SIRC에 입소한 척수장애인 현황을 보여주는 지도. ⓒ이찬우

척수장애인 상담가의 상담모습. SIRC에서 치료를 받던 척수장애인이 상담가가 되었다. ⓒ이찬우

도로 사정이 열악하고 산악지대 가 많은 네팔의 휠체어. ⓒ이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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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척수장애인협회 정책위원장이며, 35년 전에 회사에서 작업 도중 중량물에 깔려서 하지마비의 척수장애인 됐으나, 산재 등 그 어떤 연금 혜택이 없이 그야말로 맨땅의 헤딩(MH)이지만 당당히 ‘세금내는 장애인’으로 살고 있다. 대한민국 척수장애인과 주변인들의 다양한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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