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있는 어느 홈페이지 개발회사에 근무하고 있는 개발자로부터 편지가 왔다. 그 편지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안녕하세요. 저는 부산에서 웹페이지를 만들고 있는 사람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부산에서는 드문 직종이지만 웹퍼블리셔(UI 개발)입니다.

저는 이전에 서울에서 8년 가까이 같은 직종으로 일을 했었습니다. 서울에서 일을 할 때에는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웹접근성에 대한 인식이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되기 전부터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이어서 저도 그렇게 생각했고 그런 인식이 옳다고 생각하고 일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지금 제가 일을 하고 있는 부산은 그게 아닌 것 같습니다. 제작하는 단가에 따라 웹접근성을 준수하느냐마느냐를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지금 현재 위치가 회사에 소속된 직원이기 때문에 제 생각만 고집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닙니다.

하지만 회사의 대표가 주장하는 대로 제작하게 되면 이곳에서 만들어지게 되는 거의 모든 웹페이지들은 웹접근성은 무시된 채로 만들어지게 될 것입니다.

지금 제가 근무하는 곳뿐만 아니라 서울을 제외한 다른 지방의 웹페이지 제작사들도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전부터 웹접근성은 웹페이지를 만들 때 선택해야 하는 사항이 아닌 필수사항이라는 생각으로 웹페이지를 만들어왔던 저로서는 양심의 가책까지 느껴질 정도로 그런 저의 신념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메일을 보낸 이유는 차라리 장애인단체 같은 곳에서 대대적으로 이런 웹페이지들을 찾아서 신고를 해 주실 수 없을까란 생각에서입니다.

그렇게라도 해서 홈페이지를 의뢰한 곳이나 제작해주는 곳에서 막말로 벌금 폭탄이라도 맞으면 뭘 잘못했는지 알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가능하시다면 다른 지역은 모르겠고 일단 부산 쪽에서 만들어지거나 운영 중인 웹페이지들 중 몇 개를 무작위로 신고해 주실 수는 없나요?

정말 너무 답답해서 이런 메일까지 보내게 되었습니다.

장애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당연히 웹접근성을 갖추어 누구나 접근가능하고 이용 가능한 작품을 만들고 싶은데, 제작비 절감을 위해서 장애인은 쓸 수 없는 웹페에지를 만들고 있어 양심의 가책도 되고, 많은 고민과 의욕상실을 느끼고 있는 모양이다.

오죽했으면 자신은 월급을 받고 일하는 입장에서 개선할 방법이 없으니 장애인 단체들이 나서서 적극적으로 법적 대응이라도 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을까.

개발자들이 귀찮아서, 또는 제작하는 데 더 많은 힘이 들어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 이왕 만드는 홈페이지를 자랑스럽게 누구나 사용 가능한 작품으로 만들고 싶어 함을 알 수 있다.

안행부에서 주관하는 정보마을 사업은 올해 웹접근성을 개선하는 국고지원 사업으로 진행 중인데, 웹접근성 인증심사를 받으면 돈이 들어가니 개발 회사에서 웹접근성을 준수하여 개발했다는 확인서로 갈음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고 한다.

사용자의 이용 편의성을 공급자가 편하다는 것을 확인해 주는 꼴이고, 웹접근성 개선 사업인데도 불구하고 그것의 검수와 같은 인증심사를 기피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자동차를 잘 만들었으니 달리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믿고 시험가동 한 번도 해 보지 않고 판매하는 것과 같으며,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겨 놓은 형국이다.

이러한 행태는 안행부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정부와 공공기관에 만연하고 있는 일이다.

편지를 보낸 개발자는 이런 것을 실제 이용자인 장애인들이 나서서 막아 달라고 하니 스스로 자신의 권리도 찾지 못하고 있는 장애인들의 소극적 태도를 꾸짖는 듯하기도 하다.

서울에 소재한 개발사들, 모든 개발사가 그러하지는 않겠지만 중앙에 있는 이유로 한국정보화진흥원이나 장애인단체들이 주관한 웹접근성 세미나나 개발자를 위한 전문가 강의를 들을 기회라도 있어 그나마 낫다는 말은 지방을 포함한 전국으로 웹접근성의 인식이 확산되어 있지 못함을 보여준다.

부산해운대자립생활센터에서 부산시의 몇 가지 홈페이지 웹접근성 미준수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한 사건이 있었다.

그 당시 부산시는 장애인차별금지법에 접근성 인증심사를 받으라는 조항은 없으며, 국가정보화기본법에도 인증심사 제도에 대한 규정은 있으나 의무적으로 받으라는 말은 없으니 개발업체가 알아서 개발하면 되지 않느냐고 답했다.

결국 제대로 개선되었는지를 검증하는 것이 인증심사이니 인증심사를 득했으니 곧 개선되었다는 증거가 되므로 반드시 받으라는 요청을 법무부로부터 받고 이에 응하였었다.

정부는 한국의 웹페이지 접근성율이 80% 수준이라고 말한다. 전국 90만여 개의 사이트 중 80%가 웹접근성을 갖추고 있다는 말이 아니다. 인증심사의 점수표에 의한 채점을 한다면 100점 만점에 80점은 맞을 것이라는 말이다.

200자 원고지 한 장에 오타가 40자가 있으면 80점을 받은 셈이다. 80점은 상당히 우수한 점수 같지만 장애인이 사용할 수 없는 서비스가 된다. 이는 한국의 모든 웹사이트는 장애인들이 사용할 수 없다는 말인데, 상당한 점수가 나온다는 식으로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자동차 부품이 80%는 들어 있는 자동차가 달릴 수 있을까? 가득 들어 있어야 하는 음료수에 80%만 담아서 판다면 국민들이 용인할 수 있을까?

일부만 사용 가능하고 어떤 사람은 사용할 수도 없는 제품을 만들어 이용 불가능한 서비스를 하고 있는 웹사이트들이 고객의 10%를 스스로 포기하면서도 아무런 손해도 감지하고 있지 않으니 실로 답답한 일이다.

국가에서는 웹접근성 개선과 인증심사에 필요한 예산을 보조하여 적극적으로 개선하여 유엔이 인정한 전자정부 1위와 세계 IT 강국으로서의 부끄러운 뒷모습을 지워야 한다.

홈페이지 개발이나 업그레이드 사업에서 공공기관은 조달청에 공개 입찰하면서 처음에는 장애인 웹접근성 인증심사를 통과하는 것을 조건으로 공고를 해 놓고는 일단 입찰이 되고 나면 적당히 한다거나 조금 점수가 낮아도 마무리된 것으로 한다거나, 인증심사를 생략하는 것으로 발주자를 회유하여 합의하고 마는 경우가 많다.

업체의 농간에 장애인의 권리와 발주자의 원 취지가 휘둘리고 있는 것이다. 이란 상황이라면 과연 웹접근성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또한 자동으로 웹접근성을 체크해 주는 프로그램을 개발하여(이미 자동 체크 프로그램은 한국정보화진흥원에서 개발하여 무상보급하고 있음) 이것으로 체크만 하면 된다고 거짓 정보로 유혹하기도 하고, 음성출력 프로그램 판매 대행사들은 음성으로 나오는 프로그램만 탑재하면 된다고 엉터리 사기영업을 하고 있기도 하다.

자동체크 프로그램은 그림에 대한 설명이 단 한 자라도 있기만 하면 그 내용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통과가 된다. 자동체크 프로그램에서 90점이 나와도 실제 인증심사를 해 보면 80점 이하가 되는 것이 보통이며, 심지어는 30점 이하도 나온다.

그리고 시각장애인들은 자신의 PC에 개별 음성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있어 홈페이지에서 소리를 내면 오히려 이중 소리가 되어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어느 사이트 개발자의 편지를 받고 장애인이 누구나 편한 세상, 새로운 가상공간에서의 차별문제를 어떻게 해야 무장애 공간으로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해 본다.

이미 만들어진, 그러나 장애인 편의시설이 빠진 건축물과 도로가 장애인들을 집과 시설에 가두어 버렸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이중적으로 들어가는 어마어마한 비용을 처음 설계 단계부터 고려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후회를 사이버 세상에서는 하고 싶지가 않다.

장애인들은 살 수 없는 매몰차고 끔찍한 사이버 세상은 만들지 말아주기를 정부와 개발자와 사이트 운영자에게 신신당부하는 바이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