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고 오지석씨 49제를 맞아 24시간 활동보조 서비스 쟁취 결의대회 행진 신고에 대한 경찰의 불허 통보 공문. ⓒ서인환

지난 17일 저녁 고 오지석씨의 사망 49제 추모식이 서울 광화문 해치마당에서 있었고, 이에 앞서 오후 3시부터 인근의 종각역 광장에서 오씨와 같이 활동보조서비스 시간의 부족으로 호흡기 호스가 빠져 죽거나 화재로 인한 장애인의 사망 등 더 이상의 불상사가 없어야 한다며 ‘활동보조 서비스 24시간 쟁취 결의대회’가 열렸다.

광화문 광장에는 300여명의 휠체어 장애인과 장애인 활동가들이 참여하였는데, 행사를 마치고 광화문 해치마당으로 가려고 하자 경찰은 행진을 불허한다고 통보하였으므로 행진은 불법이니 해산하라고 계속 방송을 하고 있었다.

‘집시법에 의거 불법집회의 해산을 명한다, 즉시 해산하지 않으면 법적 조치를 하겠다’는 방송이 1차 통보, 2차 통보, 3차 통보, 최종 통보 식으로 제목을 달아가며 경찰 방송차에서 명령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해산을 하고 싶어도 행사장을 빠져 나갈 수가 없었다. 전경들 700여명에 의해 완전히 포위되어 종각광장에서 집회 참여자들은 옴짝도 할 수가 없었다. 방패로 다가오는 장애인을 가로막는 이상 참석자들은 화장실도 갈 수가 없었다.

해산을 하라면서 왜 해산할 수 없도록 광장 안에 가두어 두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공식으로 허가된 집회는 오후 7시로 아직 집회 시간도 충분히 남아 있었다. 단지 행진에 대하서만 불허 통보를 받은 것인데, 행진을 미리 막기 위해 광장에 가두어 두고 있으니 장애인의 집회가 아니라 전경의 집회처럼 느껴졌다.

특히 오후 4시 반에 결의대회 행사가 끝이 나서 행사 주최자인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합회의 무대 마이크가 꺼지자 오로지 경찰차의 방송만이 크게 외치고 있어 집회는 경찰이 하는 것 같았다.

지난 17일 장애인들이 장애인활동보조 24시간 쟁취를 위한 전국결의대회가 끝난 후 광화문 해치마당으로 행진하려 했지만 경찰의 제지로 몸싸움이 일었다. ⓒ에이블뉴스DB

사람들이 길을 가라고 만든 것이 인도이고, 인도로 가는 행위는 특별히 허가를 받아야 하는 사안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여러 사람이 줄을 지어 간다면 행진이므로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냥 가는 것과 우연히 많은 사람이 가는 것과 정식으로 줄을 지어서 가는 행진의 판단은 참으로 애매하다.

어떤 행사에서 행사를 마치고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전철역으로 간다면 특별한 이슈가 없을 뿐이지 거의 행진 수준일 것이다.

한자연은 행진 코스를 정하여 종로경찰서에 신고를 하였으나, 경찰은 이를 불허한다고 공문을 보내어 왔으며, 그 공문의 내용은 대통령이 정하는 주요 도로에는 행진을 불허한다고 되어 있었다. 특히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들의 행진은 다른 사람들의 보행에 지장을 줄 수 있어 허가할 수 없다고 되어 있었다.

그리고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들도 인도가 복잡하게 되면 차도로 내려올 것이 확실하므로 교통을 방해할 것이라고 행진 불허 사유로 적혀 있었다.

또 한 가지 행진 불허 사유로 6월에 장애인단체에서 집회를 하다가 한 사람이 경찰을 폭행하여 현행범으로 처리가 된 사례가 있어 불법 폭력행사로 번질 우려가 예상된다는 내용도 공문에는 들어 있었다.

6월 집회는 행사를 주최한 단체가 다른 단체이고, 경찰과 충돌한 사람 역시 다른 단체 소속인데 불미스런 사건 하나로 인해 다른 행사의 행진을 불허한 것 역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장애인 행사에서 장애인 중 한 사람이 문제를 일으켜 장애인 행사를 할 수 없다면 비장애인 행사에서 비장애인 한 사람이 문제를 일으킨 사례가 있다면 모든 행사가 불허되어야 형평에 맞을 것이다.

이번 행사와 전혀 관계 없는 한 사람의 행동으로 이번 행사 불허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면 일종의 연좌제 처벌이라 생각된다.

정보과 형사는 행사 전날 한자연을 찾아와 행사 불허에 대하여 불허가처분 신청을 한 것에 대하여 논의하였다.

행정절차에 대하여 이의가 있으면 소송을 할 수 있는 것은 헌법에도 나오는 조문인데, 소송을 하였기 때문에 앞으로 모든 집회가 불허될 것이고, 집회에서 조금의 문제라도 생기면 가령 휠체어가 인도로 가기만 하여도 현행범으로 체포될 것이라는 말을 경찰이 했다. 결국 한자연은 장애인들이 피해를 입을 것을 염려하여 가처분신청을 취하였다.

대통령이 정하는 주요 도로라서 불허하며 이에는 인도도 포함된다고 경찰의 불허통보 공문에는 나와 있는데, 몇 일 후에 열린 세월호특별법 제정 촉구 집회는 행진이 허가되었다. 법적 근거가 아니라 장애인이라 차별을 한 것이다.

그날 행사장에서 장애인들을 두 시간이나 가두어 두고 옴짝할 수 없이 경찰들이 압박을 했으니 흥분하거나 위협을 느껴 정말 불법이라도 저지르거나, 경찰과 충돌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한 휠체어 장애인은 발작으로 인하여 길바닥에 드러누운 일도 벌어졌다. 어쩌면 경찰은 시민들의 자유로운 권리인 집회를 보장하기 위한 법이 집시법이지만, 불법을 유도하여 사건이 생기기를 바라고 있지는 않는가 하는 상상을 하기에 충분했다.

한자연은 처음에는 차도의 한 차선으로 행진을 하려고 하였으나, 경찰측이 불가하다고 하여 인도로 가겠다고 행진에 대한 신청을 하였는데, 이 역시 거부되었다.

그래서 오후 6시 30분 경 경찰은 2분 내지 5분마다 3명씩만 종각 광장 밖으로 나가도록 해 주었다. 행사장을 벗어나는 장애인들은 전경들의 포위망을 벗어나면서 마치 세월호 배에서 탈출한 것처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것이다.

다른 행사가 있어 이동을 하는 것을 불법이라 하여 3명씩 이동을 하라고 하니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런 일도 있을 수 있구나 싶었다. 비장애인 행사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경찰측은 휠체어장애인은 횡단보도를 건너는 데에 시간이 많이 걸리므로 몇 백 명이 한꺼번에 길을 건너려면 30분 이상 걸리게 되고, 그러면 차들의 진로를 30분 이상 막게 되어 엄청난 교통체증을 일으키게 되므로 행진을 불허한다고 종로경찰서 정보과 형사가 말하였는데, 횡단보도에서 길을 건너는 시간을 재어 보니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전동휠체어로 길을 건너니 오히려 비장애인들보다 시간이 적게 걸렸다. 정말 교통 체증이 염려되어 행진을 불허하였다면 파란불이 켜졌을 때 일정 숫자만큼씩 건너게 하면 될 것이지만, 경찰측은 모두 건너도록 하였다.

이는 건너다가 도로 중간에서 현수막을 펼치고 도로를 점거할 것을 염려하여 장시간 이를 지켜보기 어려우므로 건너는 것을 재촉하여 한꺼번에 건너도록 유도를 한 것이다. 진정한 교통문제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었다.

길을 걸어가는 곳이 청계천 지역인데, 도로가 넓어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이인들이 두 줄로 지나가도 행인들에게 아무런 방해도 되지 않았다. 그리고 차도로 휠체어를 몰고 가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그렇다면 경찰이 차도로 가는 휠체어 사용 장애인들이 생기는 것이 명백하므로 불허한다는 사유는 잘못된 것이다.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사법이나 행정 절차에서 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하고 편의를 제공하도록 하고 있으며, 대등하게 이용 가능하도록 하지 않는 것을 차별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장애인 행사 역시 비장애인 행사와 같이 국민의 권리이며, 이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경찰이 할 일이며, 집시법 역시 교통 방해나 사고 방지가 법의 목적이 아니라 집회에 대한 보장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데,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들은 행동이 느리고 타인에게 불편을 줄 우려가 크다고 하여 집회와 시위를 불허한 것은 분명 차별금지법 위반인 것이다.

정말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이 행동이 느려서 문제가 된다면 대등하게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오히려 장애인의 입장을 고려하여 행사를 보장해 주어야 차별이 아닌 것이다.

두 시간 동안 종각 광장에서 갇혀 불안에 떨어야 했던 장애인들이 자신들의 동료가 죽음을 맞이한 억울함에 다시는 그러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복지 수준을 높이고, 제도를 개선해 보자는 주장을 하는 의무감과 사회참여의 기회를 가졌다는 장애인 정체감마저 불법이라는 이유로 빼앗아 버린 경찰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장애인이 국제 행사를 하기 위해 호텔을 이용한다면 호텔에서 편의제공을 해야 하듯, 장애인들이 집회를 하겠다고 하면 편리를 경찰은 제공해야 한다.

휠체어가 많고 울분을 터뜨리다 경찰에게 덤벼드는 사람이 있다고 하여 집회를 불허하고, 집회가 아닌 복지부와 면담을 요청했느냐 그러한 것을 추진해야지 왜 집회부터 했느냐, 집회는 면담의 압박 수단인데 정부와의 면담을 하지 않은 것은 집행부의 과실인 것처럼 오히려 경찰이 집회 집행부를 가르치려고 한 행동은 집회 자체가 국민의 권리라는 점에서 보면 잘못된 행동이며, 경찰은 인권에 대한 의식과 장애인 차별이라는 개념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행정절차에서 장애를 이유로 행진을 불허한 것은 차별이며, 경찰은 장애인의 권리를 불법으로 만들어 억압하고 차별하는 그러한 행동은 이제 없어졌으면 한다. 그리고 이동의 자유를 막고 특정 지역에 가두어 둔 전경들의 행동 역시 시정되어야 한다. 이제 국가인권위원회의 차별에 대한 명확한 답변을 들을 차례다.

지난 17일 제헌절에 법의 정신은 사라지고 동료의 억울한 죽음에 그 영혼을 달래려 한 장애인들만 또 상처를 입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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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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