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가 자신의 그림을 공짜로 주면서도 마치 윗사람에게 바치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안태성

식당에서 배를 채우고 나면 돈을 줘야 한다.

옷을 구입하든 영화를 보든 돈이 필요하다.

식당이나 옷이나 영화 모두 공짜가 아니다.

만일 밥이나 옷을 공짜로 달라고 하거나 돈을 치르지 않으면 물물교환의 원칙과 실정법을 어겼으니 그에 따른 대가를 치르게 된다.

그런데 공짜로 받아도 된다는 상품이 하나 있다. 그림이다.

근대화 이후 한국인의 그림에 대한 상 개념(商槪念)은 공짜로 받아도 되는 물건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그림은 작가의 영감과 정신력 및 노동력 등을 포함하여 수많은 시간을 투자한 끝에 완성하면 상품이라는 말 대신 ‘작품’이나 ‘예술품’이라는 명칭이 붙는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한국식 자본주의 하에 이런 명칭은 상품보다 등급이 떨어진다.

식당의 밥보다 더, 옷 보다 더 장시간을 투자하고 정신적 고통의 과정을 지나 온갖 스트레스와 싸운 끝에 완성된 그림 한 점이 무가치한 대접을 당당히 받는다.

필자가 지난 30여 년간 화가 생활을 하는 동안 그림을 공짜로 달라고 한 예가 무수히 많았다.

“그림 한 점 주세요” 라는 말에 당연히 그림을 받고 그림 값을 물어 본 후 일정 거래 후 돈을 주는 줄 알았더니 그 뒤로 소식이 없었다.

연락을 주고 받고, 가끔 만나도 그림 값에 대한 말은 일언반구조차 없다. 이런 일이 가뭄에 논바닥 갈라지듯 비일비재 했다.

“그림을 샀으면 그림 값을 주셔야…….”라는 말도 하지 못했다.

이런 말을 하려면 사이가 틀어져 다시는 안 볼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나만 그런 줄 알았더니 동료 화가나 다른 작가들도 마찬가지라 했다. 식당 밥값보다 못한 신세라고 한탄 아닌 한탄을 한 적도 많았다.

나름 고민하고 온갖 스트레스를 받으며 작품을 그려 공짜로 바쳐도 마치 제 물건 제가 돌려받기라도 하는 양 당연하게 받은 후 입에 발린 공치사 한마디 없는 것이 일상적이다.

심지어 그림을 달라고 해서 온갖 스트레스와 싸우며 나름대로 고민하며 열심히 그려서 보내준 뒤, 그림 값 대신 술이라도 한잔 사주십사 하는 농담성 소통 메일까지 보냈어도 일언반구 하나 없이 연락 메일을 ‘씹어버리는’ 경우까지 있었다.

이런 경향은 장애, 비장애를 따질 것 없이 한국인이라면 모두 갖추고 있는 품성(?)이자 취향(?)이었다.

육두품 이상이 아닌 일개 천민 장애인 화가라 그런 대접을 받았을까?

실생활에서도 비를 맞고 있는데 우산을 같이 쓰자고 하거나, 주머니에서 물건이 떨어졌다고 알려주어도 고맙다는 인사치레를 하는 세상이 아닌가!

그나마 그림을 한 점 드리겠다고 하면 공짜라 생각하고 받아주는 것만 해도 황송하고 고맙기 그지없는 일이다.

문화 예술에 대한 인식 수준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현실이자, 암울한 예술의 현주소가 아닐 수 없다.

형편이 이러니 예술 지망생인 장애 청소년들의 앞길에 대한 걱정과 우려가 묵직하게 뒷덜미를 누른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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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성 칼럼리스트
청강문화산업대학 만화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 왕따와 차별로 해직됐다. 현재 “圖와知” 라는 조직원 한명 뿐인 곳의 명목상 대표다. 백수 실업자로 2014년부터 담배 값이 좀 나온다니 할 일없는 형편에 아주, 조금 반갑다. 미술칼럼과 만화, 만평을 통해 현재 장애인에겐 약간 생소한 예술 문화의 저변과 미래, 장애인의 현실 등등을 직설적이고 노골적이면서 ‘슬프게’ 전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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