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을 조력하는 CAP 상담사(출처 http://elconciliofs.org/home/client-assistance-program.) ⓒ서원선

2년 전에 필자는 직업재활 서비스를 받고자 장애인 고용관련 기관에 전화로 약속을 하고 방문한 적이 있다. 소위 초기면담이라 불리는 것인데, 재활 서비스를 제공하는 종사자와 처음 만나는 공식적인 만남이었다.

직업재활 서비스를 받을 생각으로 나름 기대를하고 약속 날짜를 기다리며 제출해야 할 서류를 준비했다. 약속 당일 모든 서류를 챙기고 아버지가 운전하는 차로 기관을 방문했다. 초행길을 나서야 하는 부담과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아버지의 차를 타고 갔으며, 덕분에 약속 시간보다 15분 정도는 일찍 도착했다.

기관에 도착한 후 일단 면담 약속을 안내인에게 알리고 대기실에서 기다렸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약속 시간이 20분이 지나도 필자의 사례를 맡은 종사자는 나오지 않았다. 조금 이상한 것 같아서 다시 안내인에게 약속 시간을 알려 주었다. 그로부터 다시 15분이 지난 후에서야 어떤 여자분이 나와 초기면담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 필자를 내부로 안내하였다.

분명히 필자의 사례를 맡은 종사자는 남자 분이었는데, 이상해서 물어보니 사례를 맡았던 담당자가 외근이라서 대신 다른 종사자가 필자의 사례를 맡게 되었다고 했다. 그 여자분은 담당자가 바뀐 것에 대해 별다른 안내나 사과 없이 필자의 개인적인 서류를 이리저리 보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 전혀 통보받지 못한지라 당황스럽긴 했지만 서비스를 받으러 온 입장이라 그냥 넘어갔다. 초기면담은 마쳤으나 기분은 별로 좋지 않았다.

우선 필자에게 아무런 통보 없이 담당자가 바뀐 것이며, 바뀐 담당자 역시 충분한 설명 없이 필자의 개인적인 서류를 열람한 것, 그리고 제일 기분을 언짢게 한 것은 약속 시간을 30분이나 넘게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위의 사례는 어찌 보면 별일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장애인이 서비스를 이용하는 주체이며 정당한 재활 서비스를 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측면에서 바라보면 재활 종사자가 장애 고객을 방치하였거나 종사자의 전문적인 책임을 다하지 못한 직무 태만일 수도 있다.

만약 재활기관, 혹은 기관에서 일하는 종사자의 잘못으로 장애인의 권익이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보거나 심한 경우 인권까지 침해된다면 어떻게 될까?

이러한 재활 과정 중에 발생할 수 있는 장애인의 권익 및 인권 침해를 예방하고 옹호하기 위해서 미국은 CAP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CAP(Client Assistance Program)은 장애인의 권익과 인권을 보호 및 옹호(Protection & Advocacy, P&A)하는 옹호 프로그램의 하나로써 1983년에 개정된 재활법(Rehabilitation Act)에 의해서 설립되었다. 재활법에 의해서 CAP는 미국 모든 주에 반드시 영구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작업장에서 장애인을 조력하는 CAP 상담사.(출처: http://www.disabilityrightsca.org/about/cap.html.)ⓒ서원선

CAP 프로그램은 장애인의 권익을 보호하고 옹호하는 것을 최우선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발달·자폐 장애인을 포함한 모든 장애인들이 재활, 자립생활, 지역사회참여 등의 서비스를 누리는데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감독하며, 발생한 권익·인권침해에 대해서 직·간접적인 절차를 통해 장애인을 옹호하고 지원하고 있다.

본 칼럼을 통해 CAP을 소개하는 이유는 당연히 장애인의 권익과 인권을 보호·옹호하는 전문 프로그램이 필요하기 때문이며, 장애등급제 폐지와 같은 장애 페러다임의 변화를 위해서는 장애인의 권익을 침해 당하기 전에 보호하고 옹호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기 때문이다.

장애등급제는 기본적으로 정부나 상위 기관에서 급수를 정하고 그 급수에 맞추어 서비스를 제공하면 되지만 장애등급제가 폐지되면 기관의 특성, 장애인의 장애 정도, 환경, 재활목표에 따라 기관에서 일하는 종사자에 의해서 서비스의 양과 종류가 결정될 확률이 높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장애인과 종사자들 간의 의견 차이로 인해 장애인의 권리나 인권이 침해당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장애인의 권익과 인권을 전문적으로 보호하고 옹호하는 시스템이 필요한 것이다.

미국에서는 재활서비스를 받는 전 과정 중 장애인이 자신의 권리나 인권이 침해당한 것으로 생각되면 언제라도 CAP 상담사나 변호사의 무료 조력을 받을 수 있다.

실제로 필자가 재활상담사로 일하는 동안 필자가 내린 적격성 결정이나 서비스 제공 방법에 동의하지 않았던 장애인들이 CAP 상담사의 조력을 요청한 적이 있다.

CAP 상담사는 종사자인 재활상담사와 장애인 간의 상담기록이나 장애인과 관련된 자료를 열람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필요한 경우에는 장애인 옆에 앉아서 재활상담사가 장애인에게 어떻게 대하며 무슨 내용을 상담하는지를 직접 모니터링 한다.

의사소통이 어렵거나 지적장애로 인지능력이 부족한 장애인의 경우에는 CAP 상담사가 직접 장애인을 대신하여 재활상담사와 상담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장애인과 동석해서 재활상담사의 상담 내용을 모니터링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장애인이 재활 과정 중 겪을 수 있는 권익 및 인권 침해를 사전에 최대한 예방하기 위해서이다. 이것이 권익·인권 보호(protection)의 기본적인 방법 중에 하나이다.

이 뿐만 아니라 장애인과 관련된 권익·인권 침해 사건이 발생된 이후에도 CAP 상담사는 그 해결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옹호(advocacy) 서비스를 제공한다.

가벼운 권익침해의 경우에는 종사자와의 논의나 토론을 통해 의견 조정을 요청하며, 권익침해의 정도가 심한 경우에는 공식적인 이견을 제기하거나 아니면 법적인 소송을 통해 장애인의 권익을 적극적으로 옹호한다.

끝으로 재활 및 자립 과정 중 발생하는 발달·자폐장애인들의 인권침해에 대한 보호 및 옹호 역시 CAP 상담사나 변호사가 조력을 제공한다. 발달·자폐장애인과 관련된 인권침해는 성폭행, 노동착취, 임금체불 등과 같이 그 정도가 심각한 경우가 많아 CAP 변호사의 도움으로 장애인을 옹호한다.

발달·자폐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권침해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며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인터넷으로 검색만 해도 발달·자폐장애인과 관련된 인권침해 사건을 다룬 뉴스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으며, 이들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방안이 시급하게 요구된다.

이러한 점에서 장애인의 권익과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 미국의 CAP 프로그램과 같은 보호·옹호(P&A) 시스템의 구축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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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선 칼럼리스트
재활복지전문인력양성센터 센터장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장애인 재활·복지 분야의 제도 및 정책적인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미국의 장애인 재활서비스와 관련된 올바른 정보와 소식을 전하고자 한다. 특히 현재 장애계의 주요 이슈인 장애 등급제 폐지, 재활서비스 대상자 판정, 개별서비스 제공 방식과 서비스의 종류, 원스톱 서비스 체계의 구축 등과 관련해 미국에서 얻은 실무경력을 토대로 정책적인 의견을 내비칠 예정이다. 미국 주정부 재활기관에서의 재활상담사로서 실제 업무를 수행함으로써 얻은 지식과 실무 경력을 바탕으로 미국의 선진 장애인 재활서비스 제공 과정과 내용에 대해서 상세하게 기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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