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계올림픽 열기가 한창입니다. 이 곳 영국도 예외는 아닌지라, TV를 틀 때마다 영국 선수들이 출전하는 경기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만, 아쉽게도 한국 선수들의 경기는 참 보기가 어렵습니다.

운동경기를 좋아하는 주언이는 늘 동계올림픽 소식에 귀를 쫑긋 기울이고 있는데요, 단순히 운동을 좋아하는 이유도 있지만 얼마 전 정말 귀한 기회를 가졌던 적이 있어 더욱 동계스포츠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보내준 안내문을 들고 온 주언이. “어차피 나는 못 가는데요, 뭘…….” 이라고 말하는 아이의 표정이 어쩐지 밝지가 않습니다. 무슨 내용인가 싶어서 살펴 보았더니 아이스스케이팅 세션이 있으니 참석할 친구들은 참석 여부를 결정해서 알려달라는 안내였습니다. 학교에서 안내문이 올 때마다 먼저 소식을 전하며 모든 프로그램에 관심을 갖는 주언이가 왜 기대감 없이 얘기했는지 금방 알 수 있었지요.

처음엔 그러려니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실망하는 모습을 보며 왠지 한 번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해당 프로그램을 검색해보니 일주일에 한 시간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들의 세션이 배정되어 있더군요. 그렇다면 못할 것도 없겠다 싶어서 학교에 편지를 썼습니다.

“쉽지 않겠지만 어떤 식으로든 참여할 수 있다면 주언이가 정말 행복할 것 같다”라는 요지의 편지와 함께 아예 참가비를 보내버렸지요.

며칠 뒤, 주언이가 밝은 표정으로 선생님이 알아봐주시겠다고 했다는 얘기를 전합니다. 또 며칠 뒤, 신청한 친구들이 너무 많아서 추첨을 했는데 자신도 당첨이 되었다면서 엄청 흥분된 모습입니다.

짐작컨데, 주언이가 장애인이라서 특별히 배려된 것이 아니라 다른 아이들과 동등한 조건 속에서 당첨되었다는 식으로 아이들에게 얘기를 전달한 선생님의 센스가 엿보이는 대목이었지요.

그렇게 주언이는 생애 첫 번째 스케이팅(?)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주언이가 직접 스케이팅을 할 수는 없으니 주언이는 휠체어에 그냥 앉아 있고 스케이팅에 능한 선생님이 동반하시는 걸로 확인되었습니다.

주언이와 함께 덩달아 흥분한 엄마 아빠도 스케이트장에 가보기로 합니다.

친구들과 함께 스케이팅 교육을 받고 있는 주언이. ⓒ이은희

저희가 살고 있는 영국 리즈(Leeds) 도심에 있는 밀레니엄 광장. 이 곳에는 시즌별로 다양하게 축제의 장이 펼쳐집니다. 겨울에는 이렇게 스케이트장과 함께 튜브썰매장이, 여름에는 수영장과 함께 물놀이 시설이, 또 크리스마스에는 북적북적한 크리스마스 마켓이 한두 달씩 설치되곤 합니다.

가설 스케이트장 옆 카페에 자리잡고 앉아 아이들이 스케이팅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우선 안전교육과 함께 스케이팅 스킬에 대해 교육을 받습니다. 수준에 따라 몇 조로 나뉘어진 후 본격적으로 얼음판 위에서 놀기 시작하면서 즐거운 표정의 아이들. 엉덩방아도 찧고 친구들과 부딪히기도 하지만, 그런 두려움과 아픔은 물론 매서운 추위조차도 아이들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아 보였습니다.

주언이도 휠체어에 앉은 채로 똑같이 교육을 받고 선생님이 밀어주는 휠체어 위에서 즐거움을 만끽하는 모습입니다. 이따금씩 선생님이 얼음판 위를 질주하면서 엄청난 스피드를 보여줄 때에는 무서워서 질린 모습도 보였지만 정말 행복한 표정이었지요. 지켜보고 있는 저희 부부 또한 힘겹게 외국살이하는 보람을 진정으로 느꼈던 순간이었습니다.

인솔해주신 선생님들과 함께. ⓒ이은희

학교에서 돌아온 주언이는 스케이팅 교육 후 수료장을 받았다면서 뿌듯해합니다. 어찌 보면 20분 교육/30분 스케이팅에 무슨 수료장인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아이들한테 상당한 자극을 주는, 가치 있는 종이 한 장입니다.

주언이 또한 그저 휠체어 위에 앉아있었을 뿐이지만, 친구들과 함께 동등하게 ‘경험’ 을 했다는 것, 그 것이 주언이가 느끼는 행복감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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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희 칼럼리스트
주언이가 보통 아이처럼 건강했으면 결코 알지 못했을 사회의 여러 구석들과 만나면서 아이 덕분에 또 하나의 새로운 인생을 얻은 엄마 이은희. 가족들과 함께 낯선 땅 영국에서 제3의 인생을 펼쳐가고 있는데... 이방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좌충우돌 일상사를, 영국에서 보내온 그녀의 편지를 통해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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