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하면 더운 나라란 인식에 춥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델리의 기온은 한국의 초겨울 날씨처럼 춥다. 추위를 많이 타는데도 난, 얇은 옷만 가져왔다. 여행리더가 내복과 두툼한 옷을 가져오라고 했지만 설마하고 안 가져온 것이다.

두툼한 옷을 가져오지 않은 이유는 또 있다. 배낭여행 특성상 자신의 배낭에 자기만의 물건을 넣고 각자 매고 다니지만 난 그럴 형편이 아니었다. 최대한 짐을 적게 가져오고 그나마도 필요한 물건은 현지에서 사서 쓰면서 최소화하려 했다.

내 짐은 다른 일행보다 더 많다. 휠체어에 배낭까지 일행의 두 배가 넘는 짐은 내 의지와 상관없는 부피지만 그 짐을 모두 일행이 나눠서 들고 나를 태운 휠체어까지 밀고 가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처럼 보도블록이 매끈하지도 않고 차도가 훌륭하지도 않으며, 건물마다 계단 높이도 장난 아니게 높다. 게다가 2층 이상 건물은 엘리베이터가 없어 휠체어 이동과 접근이 참 어려운 환경이다.

아무리 친분 있는 사이라고 해도 배낭여행에서 타인의 가방까지 들어달라고 하다는 것은 미안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염려 때문에 일부러 짐을 가볍게 가져온 탓도 있다. 할 수 없이 가져온 옷 중에 제일 두툼한 겉옷을 더 입고 거리에 나왔다.

전쟁터 같은 여행자 거리는 현지인과 여행객이 뒤섞여 뒤죽박죽 걸어 다닌다. 그래서인지 거리는 아침부터 문을 연 식당들이 제법 눈에 띈다.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다 티베트 식당엘 찾아 들어갔다.

자리를 잡고 앉아 메뉴판을 들여다봤다. 하지만 모두 영어와 힌두어 티베트어까지 도무지 뭐라고 썼는지 알 수 없다. 인도에 여러 번 여행 온 동료는 이 식당의 메뉴와 맛을 열심히 설명한다. 나는 뭐가 뭔지 몰라 전적으로 동료 식성에 내 입맛을 맞추기로 했다.

티벳식 만두 모모와 인도 음료 “짜이”를 시키니까 일행도 같은 메뉴를 주문했다. 그리고 조금 있으니 음식이 식탁에 차려졌다. 모모는 티베트 음식이지만 우리나라 만두와 닮아있다. 맛도 모양도 닮은꼴인 모모를 맛있게 먹고 있는데, 식당 밖에서 허름한 옷차림의 걸인이 우릴 보고 손을 내민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음식을 달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의 몸 상태가 경악할 정도로 삐쩍 말라 아사직전의 몸이다. 너무 말라 해골에 가죽만 입혀 논 것 같았다.

피골이 상접 하다는 말은 그 사람에게 해당하는 말인 것을 실감했다. 너무 충격적이어서 먹던 음식을 든 체 정지화면처럼 멈춰 있었다. 그리곤 먹던 음식 중에 깨끗한 곳을 골라 접시에 담아 그에게 건넸다. 그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 충격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인간이란 존재는 참 이상하다. 옆에선 굶어 죽어가고 또 그 옆에선 질병과 전쟁으로 신음하는 사람을 보고도 먹어야 산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직감하고 행동하는 것 같다.

충격은 컸지만 그래도 음식이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음식을 먹으면서 맘은 편치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시킨 음식을 싹싹 비우고 음료까지 먹고 나서 다시 거리로 나왔다.

그런데 내가 휠체어를 타고 가는 모습이 신기했는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든다. 워낙에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라서 생소한 행동이나 목소리가 조금만 커도 순 식간에 구름떼처럼 몰려든다.

구경꾼들은 휠체어를 보고 신기해하며 이리저리 떠들며 만져보고 자기들끼리 시끄럽게 난리도 아니다. 그들에게 휠체어는 처음 보는 물건이라고 한다. 휠체어라고 말했지만 그들은 휠체어란 단어조차 모르는 눈치였다.

휠체어 뒤로 아이들과 사람들이 따르기 시작했다. 심지어 어떤 아이는 직접 휠체어를 밀어준다며 신나서 밀기 시작했다. 그런 탓에 어디를 가든 휠체어에 관심이 집중된다.

거리엔 오토바이와 자전거가 즐비하고 세발자전거인 싸이클릭샤와 오토바를 개조한 오토 릭샤도 많다. 릭샤는 인도인의 대중교통 수단이다. 사이클 릭샤는 뒷좌석에 물건을 실고 성인은 두 명까지 탈수 있다. 그런데 사이클 릭샤를 끄는 사람이 너무 힘겨워 보인다.

하나 같이 말랐고 있는 힘을 다해서 싸이클 릭샤를 끌고 간다. 그나마 운이 좋아야 손님을 많이 태울 수 있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일용직 노동자다.

이번 여행은 환경을 생각하는 공정여행이니 만큼 이동수단을 이용할 때도 될 수 있는 데로 싸이클 릭샤를 이용했다, 이유는 또 있다. 우린 착한여행, 공정여행, 환경여행을 목적으로 떠나온 여행이기 때문이다.

우리를 따라 다니던 사람들이 새로운 이동수단인 휠체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자꾸 물어본다. 휠체어라는 개념조차 없기 때문에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난감했다. 영어도 어설퍼 손짓 발짓에 아는 영어 총 동원해서 설명해도 소통의 어려움은 있다.

한 마디로 내가 하는 영어가 인도에 와서 개고생 한다. 외국을 여행하다 보면 소통의 어려움을 느낄 때가 많다. 길도 설고 문화도 설고 게다가 말도 통하지 않으니 5분이면 찾아갈 곳도 돌고 돌아 한 시간 넘게 걸려 힘겹게 찾아간 적도 있다. 그 때 언어장애와 청각장애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내 생각을 온전히 전달하지 못할 때 느끼는 박탈감과 안타까움은 실로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그럴 때마다 텔레비전 볼륨을 확 줄여놓고 이미지만 보는 느낌이다.

겉보기엔 난 장애가 전혀 드러나 보이지 않고 멀쩡해 보이니 이곳 사람들에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난감했다. 그런데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뉴 릭샤” 라고 했다. 아이들과 사람들이 감탄사가 쏟아진다.

게다가 일행들 다섯 명이 호위를 하면서 뒤에서 휠체어를 밀고 한 명은 앞장서서 길을 여니 관심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그들은 뉴 릭샤를 타고 가는 내가 엄청난 부자거나 계급이 높은 외국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인도는 1950년대 계급제도인 카스트제도 폐지됐지만 관습적으로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카스트라는 말은 인도인들 사이에 특별한 신분제도가 있다는 것을 인지한 포루투칼 사람이 카스트라고 이름붙인 것이 어원이다.

결국 카스트라는 말은 인도엔 없는 어원이었다. 인도가 영국에게 독립 한 후 신헌법에 의해 카스트 제도에 따른 차별을 법적으로 금지했지만 여전히 관습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카스트제도다.

지금까지 내려오는 카스트 계급은 4가지로 나눠져 있다.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 계급이다. 브라만계급은 제일 윗 단계인 최고 계급으로 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을 뜻한다. 브라만은 종교의례를 관제한다.

3천 가지가 넘는 종교 중에 힌두교가 가장 많고 이슬람교, 자이나교, 기타 종교가 있다.

갠지스 강가에 가면 브라만 계급이 주관하는 종교 행사를 종종 볼 수 있다. 화려하고 현란한 몸짓으로 신께 제를 올리는 광경은 실로 경이롭다.

두 번째는 크샤트리아 계급이다. 크샤트리아는 군사‧정치를 담당하는 계급이다. 인구가 워낙에 많고 다양한 민족과 다양한 종교가 뒤섞여 살다보니 종교적 갈등과 정치적 이념 문화적 차이나 관습때문에 치안도 불안하다.

그 단적인 예는 뉴스를 통해 종종 볼 수 있다. 인도를 여행하던 덴마크 여성이 건장한 인도남성 6명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했다. 이 여성은 뉴델리 기차역에서 호텔로 가는 길을 묻다가 외진 곳으로 끌려갔고, 흉기로 위협받은 뒤 성폭행을 당한 것이다.

기차 안 역시 안전하지 않다. 자원봉사단체에서 일하는 독일 여성은 동부 첸나이로 이동하는 기차 안에서 한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한다. 피해 여성은 겁에 질려 소리를 지르지 못했고, 사흘 뒤 경찰에 신고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두 살짜리 아이와 여행하던 폴란드 여성이 택시기사에게 성폭행 당했고, 스위스와 미국 여성도 피해를 봤다. 외국인 여행자를 상대로 하는 성폭행은 뉴스에 알려진 것 말고도 인도를 여행하다보면 여행자들 사이에서 종종 듣는다.

불안한 치안은 인도여성들에도 예외는 아니다. 결혼한 인도여성은 희잡으로 얼굴을 가리고 낮선 남성과 말을 하거나 얼굴을 보여서도 안 된다. 미혼인 여성이 자신을 짝사랑하는 일방적 사랑에 응하지 않을 때 얼굴에 염산을 뿌리는 테러를 저지르고 다른 주로 도망가거나 경찰에 잡혀가도 솜방망이 처벌로 끝나버린 경우가 허다하다.

명예살인도 종종 있다. 가족과 친척이 원하지 않는 결혼을 한 여성과 그의 남편을 여자 집안 남성이 살해해도 마을에서는 영웅대접을 받는다. 도저히 용인할 수 없고 상상 할 수도 없는 명예살인 사건들이 종종 전파를 타고 전해진다.

반면에 경찰의 공권력은 상당하다. 곤봉과 총을 가지고 있는 경찰은 질서를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공권력을 남용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서민들은 경찰의 공권력을 가장 무서워한다.

부당한 공권력을 행사해도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많지 않고, 여행자와 현지인이 시비가 붙으면 대게는 여행자 편을 들어준다. 그만큼 인도에서 경찰은 높은 계급이어서 그들과 맞서는 서민들은 그리 많지 않다.

세 번째 계급은 바이샤라는 장사꾼이다. 인도인의 상술은 전 세계적으로 소문난 상술이다. 물건을 사려는 여행객에게도 부르는 것이 값이 된다. 나도 가져간 옷이 부족해 겉옷을 하나 사려는데 터무니없는 가격을 제시한다.

겉옷 하나에 천 루피. 현지인에겐 상상할 수 없는 큰돈이다. 너무 비싸 삼분의 일 가격으로 깎았다. 점원은 절대 깎아 줄 수 없다고 하며 고개를 흔든다. 할 수 없이 밖으로 나오려고 하는데 다시 붙잡는다. 다시 흥정을 시작했다. 처음 제시한 가격도 비싼 것 같아 다 더 깎기로 했다.

지갑을 보여주면서 백 루피 밖에 없으니까 백 루피에 팔던가 아니면 그냥 간다고 했다. 점원은 곰곰이 생각하는 척하더니 손해보면서 판다고 선심 쓰듯 백 루피에 겉옷을 건넨다.

여행객에겐 백 루피가 큰돈은 아니지만 현지인에겐 엄청 큰돈이다. 아마도 현지인들에겐 더 저렴하게 팔았을 거다. 그런데 옆 가게에서 똑같은 옷이 보였다. 가격을 물어보니 오십 루피에 사라고 한다. 아마도 오십 루피보다 더 싸게 살수도 있었을 것이다. 인도인은 역시 장사에 능하다.

마지막 계급은 신도 버린 사람들, 불가촉천민이다. 그들은 시체를 태우거나 도축장이나 분뇨를 치우는 일, 쓰레기를 치우며 살아간다. 그들은 계급제도 때문에 늘 열악한 환경에서 배움의 기회도 없이 가난을 대물림하며 험한 일을 주로 한다.

기차를 타고 델리를 빠져나갈 때 산처럼 쌓인 쓰레기 더미를 봤다. 쓰레기 산이 얼마나 크고 넓은지 그곳을 빠져 나가는데 삼십분 정도가 걸렸다. 코를 막아도 냄새 때문에 머리가 아프고 숨을 쉴 수가 없을 정도였다.

악취가 진동하는 쓰레기 산에서 아이들은 쓰레기를 골라내며 살아간다. 그런 곳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은 장애 발생율도 높다. 수은과 환경호르몬이 가득한 산업폐기물과 온갖 생활 쓰레기로 환경은 최악이다. 쓰레기 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계급이 낮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신흥 계급으로 떠오르는 아이티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다. 인도의 아이티 산업은 한국을 위협할 정도로 막강하다. 인도에서 인터넷을 할 때 한국보다 느리지만 그 넓은 대륙에 인터넷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인도가 아이티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뉴 릭샤에 최신식 휴대폰을 들고 카메라도 삐까번쩍하니 그들이 보기엔 내가 높은 계급의 사람이고 생각 할만도 했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내 뒤를 졸졸졸 따라다닌다. 워낙에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따라다니니 귀찮기도 하고 이동에 방해도 됐다. 그들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여기저가 둘러보는데 거리에 장애인이 눈에 띈다.

한 두 사람이 아닌 눈 돌리는 곳 마다 많기도 했다. 인도의 장애인들의 이동방법도 다양했다. 등에 업혀 다니거나 굴러다니거나. 앉아서 다는 사람, 기어서 다니는 사람, 다리가 한쪽 없는 사람은 나무로 대충 깎아 만든 목발을 짚고 다니고, 손이 불편한 장애인은 자전거를 개조해서 발로 굴려서 다니거나 발이 불편한 사람은 발 대신 손으로 폐달을 굴리는 사람까지, 자신의 몸 상태에 맞게 특별한 방법으로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다.

하지만 그 많은 장애인 중에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은 나밖에 없는 것 같다. 수 많은 장애인이 휠체어 없이 다니는 모습을 보니 맘이 짠하다. 한국에선 흔하디흔한 수동휠체어 조차 인도에선 개념조차 없는 보장구라니 맘이 복잡하다. 수많은 장애인이 내 곁을 무심히 스쳐 스쳐지나갔다.

인도에 와서 휠체어를 본 기억은 공항에서 뿐이다. 인디아 공항 한구석에 가지런히 놓인 휠체어가 갑자기 생각났다. 공항에 있는 휠체어는 외국인을 위한 것이거나 장식용으로 갖춰 놓은 휠체어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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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배낭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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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탄 식당. ⓒ전윤선

싸이클 릭샤. ⓒ전윤선

짐 가득한 싸이클 릭샤. ⓒ전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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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윤선 칼럼니스트
여행은 자신의 삶을 일시적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천차만별이지만 일상을 벗어나 여행이 주는 해방감은 평등해야 한다. 물리적 환경에 접근성을 높이고 인식의 장벽을 걷어내며 꼼꼼하고 정확한 정보가 제공되어야 한다. 돈 쓰며 차별받지 않는 여행, 소비자로서 존중받는 여행은 끊어진 여행 사슬을 잇는 모두를 위한 관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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