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맹자'라는 말은 최근들어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다. 같은 뜻으로 '비문해자'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컴맹'이라는 말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다. 대신 '정보소외자', '정보취약자' 등으로 부르고 있다.

문맹자에서 맹인이라는 말은 비하적 언어라고 보는 시각도 있고, 맹학교에서처럼 전맹을 말하는 것으로 저시력인과 구분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말로 인식하는 사람도 있다.

맹학교에서는 교명을 맹학교가 아닌 대명학교 등 다른 교명을 사용하였다가 특수학교라는 이미지가 없어져 사회적 인지도나 홍보 효과면에서 어려움이 있어 다시 맹학교로 교명을 되돌리기도 하였다.

시각장애인 단체는 맹인협회에서 시각장애인연합회로 단체명을 변경하였다. 장애유형의 시각장애인이 맹인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시각장애인이 보다 넓은 의미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전맹과 저시력인은 정보를 습득하는 방법에서 차이가 있고, 생활양식에서도 큰 차이를 보인다.

경증인 저시력인이 단체의 장이 되면 중증인 맹인의 정책이 흔들릴 수도 있어 단체장의 피선거권은 전맹으로 한정하고 있는 것을 단체의 특성으로 보는 사람도 있고, 회원의 피선거권 제한이라는 불평등으로 인식하는 사람도 있다.

이에 비해 청각장애인 단체는 농아인협회라는 이름을 청각장애인협회로 변경하지 않고 있다. 청각장애인과 언어장애인을 모두 아우르는 단어는 없는데다가 청각 손상은 언어장애를 동반하는 관계도 있다.

청각장애인이 농아인보다 폭넓은 의미이고, 법적 용어이지만 장애의 정체성을 고려하여 농아인협회라는 용어를 고집하고 있다.

그런데 '농'이 아닌 '벙어리'란 말은 아직도 사회에 만연하고 있다.

윤설하의 ‘벙어리 바이올린’이란 가요가 비하적 용어인가는 논란의 소지가 있다. 소리를 내지 않는 대상을 모두 이 사회는 벙어리라고 하고 있다.

경향에듀(경향미디어)에서 출간한 박정원 저, ‘박코치 영어훈련소’, ‘소리영어학습법’이라는 서적에서는 "박코치 어린이 영어훈련소는 아이들보다 더 영어를 무서워하는 벙어리 엄마들도 내 아이 영어를 직접 지도할 수 있는 최적의 DVD 학습법을 제시합니다."라고 하여 영어에 아직 말문이 열리지 않은 학생들에게 영어회화 강의법을 홍보하면서 영어로 말하지 않는 사람들은 영어벙어리라고 부르고 있다.

길벗이지톡에서 출간한 김은희 저, ‘영어 동사, 전치사 무작정 따라하기’라는 책에서도 "간단한 영어도 말이 나오지 않아요! 토익 점수도 꽤 높고, 어려운 영어 단어와 복잡한 패턴도 달달 외웠는데 원어민만 보면 벙어리가 된다고요?"라고 하여 영어를 말하지 못하면 벙어리라고 표현한다.

이런 단어는 이제 사회에 널리 퍼져 ‘영어벙어리 탈출법’ 등 뉴스나 인터넷 글들에서 상용어처럼 사용되고 있고, 학원에서도 학원생 모집광고 현수막에 ‘영어벙어리 모집’이라고 내걸고 있으며, 유학 알선 업체들도 영어벙어리 유학생 모집‘이라 광고하고 있다.

’영어벙어리를 수다쟁이로 만들어 드립니다‘라는 말에서 우리는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하게 한다.

첫째, 영어를 말하지 못하면 벙어리라는 표현은 영어사대주의가 내포되어 있다. 일본어나 중국어, 아랍어를 말하지 못한다고 벙어리라고는 하지 않는다.

어느 정도 알고는 있으나 입이 열리지 않는 것을 벙어리라고 표현하여 아주 직설적이고 자극적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단어로 인식하고 있어, 벙어리는 굳이 다른 설명이 없는 단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무엇인가 잘 되지 않는 것은 다 장애에 비유하는 사회적 악습이고, 공공연한 편견이며, 악의적 차별 단어이다.

그렇다고 영어에바다라고 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에바다는 성경 마가복음 7장 34절에 나오는 말로 갈릴리 바닷가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다.

귀가 들리지 않거나 혀가 굳어 말을 하지 못하는 이들이 ‘열리다’라는 말에 의하여 장애가 해결되었다는 말은 심오한 새로운 세상이나 새로운 패러다임의 이론이나 종교적 수용이 되지 않는 사람이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됨을 말한다.

이렇게 긍정적인 말이 왜 부정적 용어가 되었을까?

들어도 이해하지 못하고, 알아도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벙어리라고 한다면 아마도 국민의 대다수, 어쩌면 지구촌 인간 모두가 벙어리일지도 모른다.

광고에서 '영어벙어리'라고 하지 않고 ’영어말문트기’ 등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고, ‘영어를 10년 공부해도 영어벙어리이다’라는 표현도 ‘영어를 한 마디도 제대로 말하지 못한다’라고 하면 될 것이다.

과거에는 생활영어와 같이 아주 순화되고 절제된 단어들이 최근에는 자극적이고 무비판적이고 사회적 영향을 별로 고려하지 않은 체 마구 신조어를 만들어내고 있다.

언어는 문화의 주요 요소로서 후손들에게 상속되는 것이고, 사회의 의식을 담는 그릇이다. 그런데 언어를 갈고 다듬는 데에는 아주 인색하다.

아침에 눈이 내려 길은 막히지만 기분이 좋았는데, 영어벙어리 모집 현수막을 보고 아주 우울해졌다.

장애인이 아니라 이렇게 의식이나 태도가 사회적 장애를 조장하는 관습이나 언어, 시설물 등에게 장애등급을 부여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교육계가 비교육적이어서는 안 된다.

[설문조사] 2013년 장애인계 10대 키워드(20명 선정, 천연비누세트 증정)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