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매우 추워졌다. 한 방송에서 따뜻하게 몸단장을 하는 방법을 시청자들에게 알려 주었는데, 목을 따뜻하게 하라는 것이었다. 목을 통해서 열이 많이 빠져나가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방법을 제안하였는데, 손을 주머니에 넣고 걸으면 넘어질 때 팔이 부러지는 등 위험할 수가 있으며, 장갑을 끼면 방한에 도움이 된다고 하면서 벙어리장갑이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다.

벙어리장갑은 손가락이 서로 붙어 있어 차가운 공기에 노출되는 표면적이 적으므로 열을 적게 빼앗기므로 추위를 견디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하였다.

그런데 우리는 벙어리장갑이라는 말을 꼭 사용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고민을 하게 된다. 그렇다고 다른 단어가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다. 다른 단어가 있는데도 벙어리장갑이라는 말을 사용한다면 비하적 용어라고 할 수 있겠으나 다른 단어가 없다면 비하적 용어라고 할 명분이 없다.

농아 아동들은 겨울이 싫다. 겨울이 되면 아이들이 벙어리장갑을 끼고 나와 장갑을 낀 손을 입 가까이대면서 놀리기 때문이다.

왜 벙어리장갑이란 이름을 붙였을까? 손가락이 자유롭지 않게 막혀있기 때문일 것으로 짐작된다. 물건을 잡는 데에 사용하는 손가락이 벙어리장갑을 끼면 불편하여 막혀 있다고 느끼게 된다. 이것이 입이 막혀있다는 것을 연상하여 벙어리장갑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영어로는 mitten(a pair of mittens)이다. 줄여서 mitt라고도 한다. 미트는 섬유공학에서 레이스가 달린 미트재료를 이용한 제품으로 장갑을 의미하기도 하고, 야구에서 캡처가 사용하는 장갑을 의미하기도 한다.

영어에서는 벙어리라는 의미는 전혀 없다. 그러니 한국말로 특별한 단어가 생각되지 않으면 벙어리장갑 대신 미트장갑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유럽의 아이들이 농아인들을 보고 mute(말을 할 수 없는)라고 놀릴 수도 있을 것이다.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mitt는 주먹이라는 뜻과 중앙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손이나 손금을 mitt라고도 하는데, mitt camp는 손금을 보는 오두막집(점보는 집)을 의미한다. 속어로는 수갑을 뜻한다.

수갑은 손이 묶여 있어 자유롭지 못한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손이 한 곳에 묶여 있는 상태가 된다. 벙어리장갑 역시 손가락이 한 곳에 모여 있으니 수갑이란 속어를 생각하면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mitt는 종교에서는 자선단체를 뜻한다. 이 때에는 정관사 the를 앞에 붙여야 한다. 종교단체의 매우 중요한 일의 하나라는 의미이지 농인을 생각하거나 장애인을 연상하여 만들어진 단어 같지는 않다.

동사로는 ‘악수하다’란 뜻도 있고, ‘한 대 먹이다’라는 뜻도 있으며, 승리의 표시로 ‘깍지낀 손을 머리 위로 올리다’라는 의미가 있다. mitt-glommer(손을 붙잡은 사람)은 너무 악수를 많이 하는 지나치게 저자세인 사람을 뜻한다.

수화에서 농인을 표현할 때 주먹을 쥐고 입 가까이 댄 다음 작은 원을 그리면 된다. 그리고 벙어리장갑을 표현할 때에도 이런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즉 청각장애인 스스로도 벙어리장갑이란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는 셈이다.

장애인끼리는 서로 같은 처지의 동질군이므로, 같은 동질군끼리 사용한다고 하여 비장애인이 사용해도 좋다는 법은 없다. 여성들끼리는 ‘계집애’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 오히려 친근감을 주는 용어일 수 있으나 여성들이 사용한다고 남성들도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장애인들의 용어가 비하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하나의 동질집단문화로 일반적 용어사용의 명분이 될 수는 없다.

벙어리장갑을 주머니장갑이라고 이름을 바꾸어도 좋다. 주머니에 손을 넣듯이 손을 통째로 쏙 집어넣는다는 의미이다. 두꺼비장갑이라고 해도 된다. 어릴 때 모래더미에 손을 넣어 두꺼비집을 지어 본 사람이라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통장갑은 어떨까? 손가락이 없이 통으로 만들어졌다는 의미이다.

장애를 나타내는 handicap란 말의 어원이 손에 캡을 씌운 것이니 손이 불편해서 그렇게 불리운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장애인들은 대부분 과거에 걸인으로 살았을 것이니 손에 모자를 들고 있다고 하여 그런 말이 생긴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 용어는 중세시대 물물교환 시장에서 경매를 할 때에 서로 교환하는 가격을 제시할 때에 모자에 손을 넣어 구슬 수를 정하여 보여줌으로써 흥정을 한 것에서 유래한다.

소와 닭을 교환할 경우, 닭 몇 마리와 바꿀 것인지 모자에 손을 넣어 구슬 수를 정하여 보여주고 상대가 수락하면 거래가 이루어진다. 이러한 상행위에서 상대의 마음속을 미리 알 수가 없고, 모자 속의 손이 구슬을 몇 개를 잡았는지 제시하기 전에는 모르므로 손이 가려져 있다고 하여 핸디캡이라고 한 것에서 장애가 유래한 것이다.

소록도에는 천주교 성당도 있고 개신교 교회도 있으며 원불교 절도 있다. 종교의 관심이 소외계층이라면 한센인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한센인들도 가족과 생이별을 하고 한많은 아픔을 종교에 의지하여 투병생활을 하는 것은 도움이 될 것이다.

한 종교단체에서 육지의 교인들에게 한센인을 위해 정성을 모아 달라고 호소하자, 추운 바닷바람에 힘들 것이라며 모금한 돈으로 소록도의 한센인 수만큼 벙어리장갑을 사서 보내어 주었다고 한다. 벙어리장갑이 더 따뜻할 것이라는 생각보다는 손이 문드러져 장갑을 끼기에 불편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을 것이다.

이 선물을 받아든 한센인들은 우리를 놀리는 선물을 보내어왔다며 매우 화를 내었다고 한다.

우리의 상처를 약점으로 생각하기에 벙어리장갑을 보냈을 것이라는 것이다. 선물을 보낸 사람은 진정 한센인을 생각해서 보내었을 것이지만, 그것을 받아든 사람 입장에서는 매우 속상한 일이 될 수도 있다.

지금은 벙어리장갑 외에 다른 단어가 없어 비하발언이라고 따질 수는 없지만 다른 단어를 만들어내는 순간 벙어리장갑은 비하적 용어로 전락할 것이다.

벙어리장갑은 농인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장애가 끊어지고 막혀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처럼, 벙어리장갑도 막혀있음을 의미하면서 장애의 한 유형의 비하적 용어를 차용하여 사용한다면 이 용어는 새로이 만들어져야 하지 않을까 한다.

일본에서는 벙어리장갑을 미튼장갑이라고 영어를 그대로 차용하여 사용한다. 어느 인터넷 쇼핑에서는 벙어리장갑을 모장갑이라고 이름붙여 놓은 것도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다.

국어에서 벙어리매미, 벙어리뻐꾸기, 벙어리저금통 등의 용어도 새롭게 한번 만들어 보급해 보았으면 한다.

[설문조사] 2013년 장애인계 10대 키워드(20명 선정, 천연비누세트 증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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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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