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노트북’의 한 장면. 노년을 함께 보내는 노아와 앨리. 치매로 인해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앨리에게 기적이 생기기를 바라며 두 사람의 추억이 담긴 책을 읽어주는 노아의 모습. 사랑하는 이를 끝까지 외면하지 않는 것. 이것이 내가 추구하는 ‘사랑’이다. ⓒ 네이버 영화

감정이라는 것은 일희일비(一喜一悲)할 수 있을 정도로 변화무쌍하다. 이같이 변화무쌍한 감정을 만일 누군가가 왜 그러느냐며 터치하는 것은 굉장히 큰 무례이며, 월권행위이다. 감정의 변화는 마치 자고 일어나는 것과 먹고 배설하는 행위처럼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사람은 자기감정에 자유로울 수 있지만, 그와는 별개로 자유로운 감정으로 이성(異性)을 대할 때 단순히 떨림만 있다고 해서 그것이 곧 사랑은 아니다. 사랑을 객관적으로 정의할 순 없지만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상대를 위한 대가 없는 희생이 행복할 때’ 비로소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사랑은 일희일비해서도 안 되고 자신의 유익만을 구해서도 안 된다. 그런데 사실 사랑을 시작하면 이렇게 하지 말라고 해도 저절로 하게 된다. 모든 초점이 상대에게 향해 있고, 삶의 기준 역시 상대에게 이로운 것을 택하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에게 사랑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사랑은 곧 신뢰이며 그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만 유지될 수 있다. 그런데 신뢰를 쌓을 준비가 안 되어 있다. 신뢰를 쌓으려면 지속적 교류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어느 쪽이 상대의 존재에 관해 두려워하거나 낯설어 한다면 그 관계가 아름다운 모습으로 발전할 수 있을까?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관계가 이렇다. 서로를 향한 떨림은 고사하고, 일단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히 쌓여 있다. 장애인 간의 연애는 ‘장애’라는 공통분모라도 있지만 이 케이스는 그렇지도 않다. 그리고 이런 난감한 상황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 상황들을 풀어가기 위한 열쇠는 ‘잦은 만남’임을 알고 있지만 사람의 감정을 제도화하거나 억지로 끌고 갈 수 없기에 오로지 나의 행동과 상대의 감정 흐름에 맡겨야 하는 것이 딜레마인 것이다. 내가 만나기를 요청해도 그 사람이 내키지 않으면 그만 아닌가.

기회를 잡지 못하면 시간만 흐르고, 시간이 흐르면 또 다른 누군가와 그녀는 사랑에 빠지게 될 테니. 이것 참 어렵다.

또, 심기일전 끝에 연애에 성공하고 시간이 흐르면 결혼이라는 난관이 봉착한다. 그 때 찾아오는 시련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적어도 장애인과 비장애인간의 연애나 결혼은 비장애인의 무한한 희생이 바탕이 되어야 할 것이다. 달콤함이 전부가 아니다.

타인과 타인이 만나 상대를 위해 희생을 한다는 것은 어지간한 믿음과 사랑 갖고는 행하기 힘들다. 그런 힘든 여정을 함께 해쳐 나갈 확신이 없다면 사랑한다는 말도, 상대를 향한 감정소모도, 결혼하자는 프러포즈도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은 전부 현실이기 때문이다. 난 지금 이 순간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리고 그 사랑을 ‘유지’할 수 있을까?

[설문조사] 2013년 장애인계 10대 키워드(20명 선정, 천연비누세트 증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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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열정과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30대의 철없는 뇌성마비 장애인이다. 주관적인 옳고 그름이 뚜렷해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분노하고 바꿔나가기 위해 두 팔 벗고 나선다. 평범한 것과 획일적인 것을 싫어하고 항상 남들과는 다른 발상으로 인생을 살고픈 사람. 가족, 사람들과의 소통, 이동, 글, 게임, 사랑. 이 6가지는 절대 놓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다. 최신 장애 이슈나 미디어에 관한 이야기를 장애당사자주의적인 시각과 경험에 비춰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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