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을 쓴 사람과 이야기를 하면서 안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안경을 가리킨 것인지, 사람을 가리킨 것인지 애매할 수도 있고, 설사 안경을 가리켰다고 하더라도 자기 얼굴을 향해 날아온 손가락질이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그러니 그냥 말로 ‘안경이 멋있다’거나 ‘안경을 닦아야겠어요’라고 말만 하거나 굳이 손으로 그 안경을 가리키고 싶으면 손바닥을 펴서 하늘을 향하게 하고 손끝으로 안경을 가리켜야 한다. 손바닥을 땅을 향하게 아래로 하여 무엇을 가리키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안경을 쓴 사람에게 안경을 벗으라고 하면서 안경을 강제로 벗기는 것은 엄청나게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다.

안과병원이나 안경점에서 안경을 벗겨서 살펴보거나 닦아주는 경우에도 두 손으로 양쪽 다리를 손으로 감싸 쥐면서 벗겨야 하고, 미리 언어로 안경을 벗겨 드린다고 말해야 한다. 아무 말 없이 갑자기 안경을 벗겨도 안 되고, 코걸이를 한 손으로 잡고 벗기는 것은 큰 실례이다.

같이 사는 식구라 하더라도 안경을 벗지 않고 잔다고 하여 도와준다고 안경을 벗길 경우나 안경을 벗고 자라며 벗기는 경우, 안경을 닦아준다며 벗기는 경우 모두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그리고 상대가 기분 나쁘지 않게 벗겨야 한다.

안경은 늘 몸에 부착하여 사용하는 것이므로 신체의 일부와 같고, 그것을 벗기는 것은 다른 세상을 대하게 하는 것이며, 얼굴에 손을 대는 것이므로 기분 상하기 쉽다.

휠체어를 탄 사람의 휠체어를 가리킬 경우에도 손가락질을 하면서 휠체어를 가리키면 휠체어를 탄 사람은 손가락이 자신을 가리키는 것에 대하여 매우 기분 상할 수 있다.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기 위해 휠체어를 수화물로 부쳐야 하는데, 항공사 직원이 ‘이 휠체어를 부치고 다른 휠체어로 갈아타야 합니다’라고 말하면서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기분을 상하게 된다.

휠체어 중에 앞부분에 모터와 핸들을 달아 마치 자전거오토바이처럼 전동휠체어가 되게 하는 장치가 있는데, 항공사 직원이 휠체어에 대한 상식이 부족하여 수화물표를 휠체어 한 곳에만 부착하자 장애인이 이 휠체어는 두 부분으로 분리가 된다고 말했고, 직원이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 상사를 불러와 설명을 하면서 분리되는 앞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장애인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것에 대하여 주의를 주자, 사과를 한 사례가 있었다.

이는 보청기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목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평소에 실수를 하지 않으려면 아예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것을 하지 말고, 모든 경우 손바닥 끝으로 가리키는 것을 습관으로 익히면 된다.

사람 이름 뒤에 붙이는 ‘씨“의 경우 존대말이 된다. ’○○○씨‘는 ’○○○‘보다는 분명 존대말이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씨 입니까”라고 묻는 것은 실례가 아니다. 주로 아랫사람에게 사용하지만 윗사람에게 사용한다고 하대하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씨“가 다르다고 말하면 ’종자‘라는 의미로 비속어가 된다. 그러니 ’○○○이란 분이십니까” 또는 ‘○○○씨께서“와 같이 뒤에도 정중한 존대말을 더 붙여 사용하지 않고 ’○○○씨가‘와 같이 말하면 화를 내는 사람이 있다. “씨라니, 다시 한 번 말해 봐’라고 화를 내거나 ‘누구한테 씨라는 거야?’라고 하면서 불만을 말하게 된다.

사회에서 어느 정도 지위가 있고 그 지위가 누구나 다 아는 지위로서 공인인 경우 ‘○○○씨’라고 부르면 이는 존대가 아니라 하대의 의미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사람에게는 ‘치아’라고 사용하고, 동물에게는 ‘이빨’이라고 말한다. ‘무심코 사람에게 ’이빨‘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되면 바로 앞 면전에서는 지적하지 않고 넘어가지만 속으로는 참 못배운 사람이거나 나를 무시한 사람으로 생각하게 된다.

우리말인데도 너무 어렵다. 말 속에는 대오와 의식이 포함되어 표현되기 때문이다. 경어를 사용한다고 무난한 것도 아니어서 더 높은 사람 앞에서는 아랫사람을 경어를 사용하면 안 된다. ‘우리 직원 ○○○양께서’라고 사장 앞에서 말하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체스추어나 손언어는 말보다는 휠씬 자극적이고 분명하여 윗사람에게 지나치게 손동작을 같이 하면서 말하는 것도 문제가 되기도 하고, 오히려 정서적으로 불안정하거나 과격한 사람으로 오해를 받기도 한다.

특히, 책상을 치거나 물건을 만지면서 말하는 것도 큰 실례가 될 수 있다.

수화생활을 하는 농아인의 경우 수화이니까 하고 이해하거나 통역으로 알아듣고 이해할 수 있다. 혹은 수화를 하는 사람이 조용하고 잔잔하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과격하게 말하거나 같은 말을 반복하거나, 힘주어 강력하게 말한다는 인상을 주기 쉬운데, 이는 자신의 말을 분명하게 전달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농인들끼리 말을 할 경우에는 긴장을 하지도 않고 손동작도 빠르며 자연스러워 보이다가도 통역을 사용하여 비장애인과 대화를 할 경우에는 동작에 힘이 들어가고 과격한 행동처럼 비추어지는 것이다.

이는 농인도 답답함을 느끼면서 말하는 것이기도 하고, 단어 하나하나를 강조하여 분명하게 말하고자 하는 노력과 긴장 등이 포함되어 그렇게 나타나는 것이다. 농아인들은 평소에도 연설하듯이 말한다는 오해를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장애인이 사용하는 보장구나 보조기구는 그 사람의 신체의 일부와 같아서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매우 불쾌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을 비장애인은 모른다. 그리고 장애인이 사용하는 보조기구를 신기해하면서 만져보고 살펴보고 싶어 하는데, 이것이 장애인의 마음을 상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도 잘 모른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일을 하는 중인 안내견은 행인이 만지면 안 된다. 공무를 집행하는 안내의 집중력을 방해받는다. 쉬고 있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만지거나 부르거나 해서는 안 된다. 애완동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안내견처럼 보조기구 역시 그 사람의 신체의 일부라면 살펴보는 것에 대하여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특히 아무 말 없이 가져가서 만지거나 타고 있는 휠체어를 만지는 것은 마치 성추행을 당하는 것과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할 수도 있음을 비장애인들도 알아야 할 것이다.

말에 대한 실수나 경어법의 사용이 잘못될 경우 장애인은 평소 교양 부족보다는 장애인에 대한 태도 불량이나 비하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한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비장애인은 장애인을 까탈스러운 성격의 소유자라고 또 하나의 낙인을 찍어버릴 수도 있다.

진정한 장애인에 대한 이해를 하기 위해서는 장애인의 감정에 대한 이해도 포함해야 한다.

장애인의 목을 ‘모가지’라고 불렀을 경우에도 부르는 사람은 평소에도 그런 단어를 사용할지라도 듣는 장애인은 자신이 장애인이기 때문에 그렇게 불렀다고 인식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은 상당히 모호한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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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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