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길을 따라 걷다보면 많은 인연과 마주한다. 파란 하늘도 선선한 가을바람과 꽃도, 그리고 제주를 감싸 안은 바다도 예사롭지 않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했던가. 마을 주민과 올레꾼의 시선도 교류하며 잠시 머문다. 올레 길은 어떤 인연과도 서로 인사하며 웃음 짓게 하고, 여행객에게 자유를 선물한다.

올레는 순례자에게도 고행의 길이 아닌 여행의 길과 상생 한다. 가을볕이 황홀한 제주로 2차 자립여행에 나섰다. 이번 자립여행은 2코스 식산봉에서 시작. 갯물이 들고 나는 오조리 마을에서 주민들과 만났다.

주민들은 지나가는 일행에게 음료수와 귤까지 대접한다. 목마른 나그네가 우물을 만나 물 한바가지 얻어먹을 때 나뭇잎을 띄워주던 옛 선인들의 인심이 전해진다.

오조리엔 퐁(팽)나무 쉼터도 있다. 이곳에서 올레꾼은 걷던 걸음을 멈추고 잠시 쉬어간다.

이백년 넘게 마을을 지켜온 팽나무집 주인장은 제주를 닮은 작은 정원으로 일행을 초대해 따스한 커피를 내온다. 주인장은 제주의 자연과 제주 방언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제주엔 까치가 없었지만 1989년 a항공사가 첫 취향하면서 까치 서너 쌍을 기념으로 들여와 기하급수적으로 번식해 지금은 제주 토종 새인 까마귀를 쫓아내서 한라산 중턱까지 쫓겨났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제주엔 토종동식물을 위협하는 외래종이 많다. 그 대표적인 식물이 개민들레다. 개민들레는 목초를 수입하면서 따라들어온 지 15년 됐다.

관광객에겐 노랗고 키 큰 개민들레가 보기 좋지만 현지인에겐 골칫거리 꽃이다. 매번 꽃을 베어내지만 생명력이 강한 개민들레는 좀처럼 사리지지 않고 제주 전역을 접수하며 주인행세를 한다.

우리말에 “개”자가 들어가면 비하는 말이 많다. 식물도 그렇다. 개망초, 개민들레 등 “개”자가 들어가면 왠지 좋지 않는 느낌이 들기 마련이다. 이처럼 외래종은 “개”자를 붙여 베어버리거나 없애려고 한다. 개민들레나 까치도 제주에선 주객이 전도된 샘이다.

퐁나무집 쥔장은 제주방언의 유례도 들려준다. 퐁나무는 제주 방언이고 원래 나무 이름은 팽나무라고 한다. 그러나 바람의 섬 제주에서 목소리를 크게 내어 말하지 않으면 바람에 말이 묻히기 일쑤였다

바람 때문에 소통에 어려움이 있다 보니 큰 소리로 이야기 하게 됐고 발음도 세졌다고 한다. 그래서 팽나무도 퐁낭구로 불리며 퐁나무 집이라고 오조리 사람들은 말하고 있다.

퐁나무 집에서 제주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고 피정길 종착지인 성산포 성당으로 발길을 이어갔다.

성당으로 가는 길엔 암자인 봉원사도 지나야 하고, 교회도 지나야 한다. 그러고 보니 오조리 작은 마을에 3대 종교가 모두 모여 있는 샘이다.

순례길, 피정길, 올레길, 길은 길을 낳고 그 길엔 또 사람이 걷고 걸어서 신에게 다가가는 길로 거듭난다.

봉원사는 작은 암자다. 제주에는 인가와 떨어진 깊은 산속보다 마을과 가까이에 있는 사찰이 많다.

이는 제주만의 지형적 특색을 잘 나타내고 있다. 올레 2코스 오조리마을에도 제주의 색깔이 분명하게 나타난다.

봉원사를 지나 성산포 성당으로 들어섰다. 성당은 성산일출봉과 어우러졌다. 잔디밭엔 예수님이 태어날 때부터 죽음과 부활까지 고난의 길인 십자가의 길이 있다.

그 길을 따라 예수님의 삶을 살펴보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림은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십자가에 못 박히고 창으로 찔려 온몸에 상처투성인 예수님이 가엽기 그지없다.

또한 인간의 잔인성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어 인간이 어디까지 잔인할 수 있는지 소름이 끼친다.

고난의 길은 보는 내내 그림의 모습이 내게 투영돼 가슴이 저려온다. 십자가의 길을 뒤로하고 성산하수 처리 종말장을 한바퀴 휘 돌아 숙소로 돌아와 일정을 정리한다.

동트기 전 눈을 뜨니 바람이 심상치 않았다. 오늘은 올레 1-1코스인 우도를 둘러보는 일정인데, 새벽부터 바람이 요동친다.

제주기상청에 전화를 걸어 일기를 체크하니 예비풍랑특보가 내려졌다고 한다. 우도에 입항할 수 있지만 우도에서 나오는 뱃길은 장담할 수 없다고 한다. 일행과 급하게 의견조율을 거쳐 섭지코지로 일정을 급히 변경했다.

아침을 먹고 섭지코지로 향했다. 섭지코지 가는 길에 일출봉을 지나고 광치해변을 지났다. 그리고 초콜릿 체험장에 들러 예쁜 수제 초콜릿도 맛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며 발길을 이어간다.

일렬로 달리는 전동휠체어 행렬은 장관이다. 일행은 바다처럼 두려움도 없이 자유를 만끽하며 걷고 있었다. 스치는 올레꾼은 전동휠체어 부대가 자유롭게 이동하는 모습이 멋있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응원해 준다.

바닷길을 따라 섭지코지에 도착했다. 유명관광지답게 사람들로 넘쳐나고 중국관광객이 주를 이룬다. 여기저기서 중국말로 쫑알쫑알 소란스럽다. 중국관광객은 일행의 전동휠체어에 급 관심을 보이며 가격을 물어본다.

제주 동쪽해안에 볼록 튀어나온 섭지코지는 봄철이면 노란 유채꽃과 성산 일출봉을 배경으로한 아름다운 해안풍경이 일품이다.

들머리의 신양해변백사장 끝머리 언덕 평원에 드리워진 유채밭과 여유롭게 풀을 뜯는 제주조랑말들, 그리고 바위로 둘러친 해안절벽과 우뚝 치솟은 전설어린 선바위는 전형적인 제주의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섭지코지 언덕엔 바닷가를 배경으로 드라마 올인 하우스가 그림같이 앉아있다. 올인 하우스는 빨간 지붕에 십자가가 돋보이는 곳이다. 드라마가 끝날 때쯤이면 주인공들은 세상 시름 잊고자 종교에 귀하하거나 세상을 떠나 자연인의 삶을 살아간다.

드라마 올인도 여주인공이 종교인으로 삶을 살아가면서 끝을 맺는다. 올인 하우는 드라마 세트장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지만 보이는 모습 그대로 성당이라고 믿고 싶어졌다. 그리곤 하느님께 진심으로 기도한다. 내일 우도로 들어가는 뱃길을 열어주세요.

바람이 잔잔하다. 게다가 아침햇살도 싱그럽고 기온은 더욱 따스하다. 마음은 벌써 우도에 도착해 있고 여객선을 타러 가는 발걸음은 가볍다.

오전 여덟시 성산 항에서 도착해 첫배를 타기위해서 한참을 기다렸다. 드디어 첫배가 출항한다.

바다는 파란하늘 과 꼭 닮아 있고 이토록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날씨는 보기 드물다. 확 트인 시야는 저 멀리 추자도까지 보인다. 축복이다. 어제 올인 하우스에서 하느님께 떼를 쓰며 기도한 보람이 있다.

산호해변은 에메랄드빛으로 속을 훤히 보여주고 산호가 부서진 해변은 은모래가 반짝인다. 카메라 셔터는 쉴 새 없이 우도의 비경을 꾸역꾸역 밀어 넣고, 언제 봐도 반할 수밖에 없는 풍경은 오늘도 우도와 사랑에 빠지게 한다.

햇살에 데워진 가을은 싱그럽고 일상에서 풀려나서일까 풍경이 새로워지는 만큼 마음도 새로워진다. 성산앞 바다를 항해하는 여객선은 비단주름을 힘차게 가르고 햇살이 엎질러진 바다는 황금비늘로 눈부시다.

가는 길 (전동휠체어 이용)

• 김포공항에서 제주까지 주중 복지할인 적용. 왕복 12만원 미만

• 제주 장애인 콜택시 이용 하루 전날 오전 9시부터 예약 가능 064-756-8277∼

• 한라산 렌터카 리프트 차량, 양손 핸드컨트롤 장착 차량 이용 064-748-8222~3

먹거리 (휠첸어접근가능)

• 일출봉 호텔 옆, 푸른제주 흙돼지 064-784-4830

• 일출봉 앞, 한성식당 064-782-4648

• 우도, 천진항 앞 소라반점/해물짜장,짬뽕/ 가격 1만원부터

• 우도봉 주차장 앞 /오가네 국수. 산채비빔밥, 고기국수/ 8천원부터

화장실(장애인화장실)

• 성산일출봉 화장실

• 천진항 대합실

• 하우목동 항 대합실

• 산호해변 앞

• 성산항 대합실

잠잘 곳 (장애인 객실)

• 상 호 : 일출봉 호텔

• 주 소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성산리 26 일출 봉 앞

• 전 화 : 064-782-8801

• 요 금 : 평일 8만원부터

• 객 실 : 1층. 1111호/ 장애인 객실 더블침대 2개

• 홈페이지 : http://www.ilchulbonghotel.co.kr/

주변볼거리(휠체어 이동 접근 가능)

• 성산일출봉

• 섭지코지

문의

• 휠체어배낭여행

• http://cafe.daum.net/travelwheelch

반할수 밖에 없는 비경. ⓒ전윤선

비양도 꿀벌 등대. ⓒ전윤선

자유롭게 달리며. ⓒ전윤선

섭지코지 아쿠아리움에서. ⓒ전윤선

성산포 성당 피정길 에서. ⓒ전윤선

초코렛 체험관에서. ⓒ전윤선

우도행 배를 기다리며. ⓒ전윤선

우도 흙돼지 탕수육, 군만두. ⓒ전윤선

우도 뽀요요 카페에서 여유의 시간. ⓒ전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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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윤선 칼럼니스트
여행은 자신의 삶을 일시적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천차만별이지만 일상을 벗어나 여행이 주는 해방감은 평등해야 한다. 물리적 환경에 접근성을 높이고 인식의 장벽을 걷어내며 꼼꼼하고 정확한 정보가 제공되어야 한다. 돈 쓰며 차별받지 않는 여행, 소비자로서 존중받는 여행은 끊어진 여행 사슬을 잇는 모두를 위한 관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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