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 만에 자전거를 탔다.

시력을 잃고 다시는 혼자 탈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가을을 만나러 마라도 옆에 있는 섬 가파도에 들어갔다가 대여점에 줄지어선 자전거들이 나를 유혹하는 바람에 큰마음 먹고 용기를 내서 폐달을 밟았다.

다행히 통행하는 사람이 적었고 바다를 끼고 섬 모퉁이를 순환하는 길이 단조로워 두려움은 덜했다.

하지만 워낙 오랜만에 핸들을 잡아서 그런지 중심 잡기가 어려웠고, 막상 올라 타보니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앞에서 한 사람이 "따르릉"하며 약 3초 간격으로 유도 신호를 보내 주어 귀를 쫑긋 세워 뒤를 따라가면서 순전히 동물적 감각을 모두 동원해서 조심스럽게 추진해 나갔다.

시력을 잃고 32년만에 다시 자전거를 탔다. ⓒ유석영

파도 소리는 험한 세상의 아우성처럼 들렸고, 어쩌다가 불규칙한 도로에서 자전거가 충격을 받으면 이해가 부족한 사람들로부터 비상식적인 공격을 당하는 느낌이었다.

그동안 나는 장애를 가졌지만, 강한 의지로 차별의 벽을 충분히 넘어섰다고 생각했으며, 내가 걸어온 극복의 과정들이 다른 장애인들에게 건강한 모델로 승화되기를 바라며 장애복지 현장을 지켜왔다.

가능성과 성공할 수 있는 전망이 심신의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사회로부터 무시되면 안 된다는 일념에 정신없이 현장을 쏘다녔다.

특정한 때에 시혜적인 배분을 매우 당연하게 받아온 장애인들에게는 잠재되어있는 꿈을 확인시켜주는 일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불편·불리한 장벽을 제거하고자 설득과 투쟁을 계속해 왔다. 힘에 겨워 울기도 했고 날아오는 돌에 맞아 상처도 적지 않게 입었다.

자전거 위에서 만난 가을바람이 무척 신선했다.

몇 개의 후회 덩어리가 스쳐 지나가기는 했지만, 앞으로 달리다 보니 아직 포장지를 뜯지 않고 그대로 둔 크고 작은 꿈 상자들이 아주 많이 있음을 발견했다. 눈이 안 보인다는 이유로 자전거를 탈 수 없다고 예단해버린 나 자신이 더 문제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닫는 시간이었다.

마라도 옆 섬 가파도에서 용기내 폐달을 밟았다. 자전거 위에서 느낀 세상에게 다가가듯 장애인복지 현장을 지켜가리라 결심했다. ⓒ유석영

"이제 속도를 더 내도 될까요?"

앞에서 신호음으로 나를 유도하며 가던 사람이 섬을 반 바퀴쯤 돌았을 때 좀 더 달려볼 것을 주문했다.

"좋아! 한 번 달려 볼까나!"

순간 긴장이 되기는 했지만, 페달을 강하게 밟기 시작했다. 두려움이 엄습해 오면서 등줄기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곧 바다에 빠질 것 같아 "안 돼, 천천히!"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약해진 나의 정신세계를 새롭게 무장한다는 생각으로 이를 악물고 끝까지 달렸다.

약 40분을 달려 원래 있었던 자리로 돌아 왔을 때는 마치 금메달을 목에 건 기분이었고, 무겁게 나를 짓눌렀던 상실감들이 모두 날아가는 느낌이었다.

페이스북에 이 소식을 올렸더니, 걱정하는 사람 반, 칭찬하는 사람 반이었다.

아무에게라도 "시각장애인이 혼자 자전거를 타고 가파도 섬 한 바퀴를 돌았다!"하며 큰 소리로 자랑하고 싶었다.

아쉬움 속에 하던 일을 내려놓았지만, 자전거 위에서 세상을 다시 느끼고 새로운 꿈을 선물로 받았으므로 또 다시 선한 마음으로 예술가가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가듯 그렇게 장애인복지 현장을 지켜 가리라 다짐해 본다.

또 다시 고난이 가는 길을 막아선다면, 가파도로 달려가서 더 빠른 속도로 자전거의 페달을 힘차게 밟을 것을 스스로에게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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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석영 칼럼니스트
사회적협동조합 구두만드는풍경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장애인복지 향상, 선한 가치의 창출과 나눔을 이념으로 청각장애인들이 가진 고도의 집중력과 세밀한 손작업 능력을 바탕으로 질좋은 맞춤형 수제 구두를 생산하며, 장애 특성에 맞는 교육을 실시하여 안정적인 일자리를 갖고 사회 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이끌어 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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