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사 양반, 예쁘게 잘 찍어 주어야 혀.”
“아따! 걱정 팍 붙들어 매시고 잉, 치즈 해랑께요 잉.”
산 좋고 물 맑은 고향 마을회관 뜰 앞에는 동네 어르신들이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는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하셨다. 얼핏 보면 참 이상한 광경이었다. 단체사진도 아닌 한사람 한사람 독사진을 찍고 있으니 말이다.
사실 이 사진들은 당신들이 돌아가신 후에나 사용하게 될 사진이었다. 이른바 영정 사진인 것이다.
복지관에서는 ‘영정사진 찍어드리기’ 행사가 진행되었고, 한껏 자태를 뽐내며 정겹게 기다리고 계시는 어르신들이 가을의 넉넉한 햇살처럼 참 행복하고 평화스러워 보였다.
하지만 자신의 영정사진을 찍는다는 게 사실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내 나이도 어느덧 쉰 줄을 넘겼다. 누군가 나에게 영정사진을 찍자고 하면 쉽게 응할 수 있을까 자문해 본다.
문득 나는 몇 해 전 돌아가신 시골뒷집에 사시던 옥분이 할머님이 떠올랐다. 칠순이 넘으신 옥분이 할머님은 침을 흘리며 허튼소리를 하는, 장성한 막내 아들과 단둘이 살고 계셨다.
그 막내아들은 지적장애인이었는데 동네 아이들로부터 늘 따돌림과 놀림감의 대상이었다. 나도 어릴 때 그 분을 만나면 무서워서 피했고 때로는 동네 아이들과 함께 저주의 사신인양 돌을 던지며 못된 짓을 하기도 했다.
어느 날 옥분이 할머님이 나에게 도움을 청해왔다.
“민이 아범, 나 영정 사진 좀 찍을란디 좀 도와주어야 혀요 잉?”
“예, 암은요, 도와 드려야지요.”
“우리 막내도 같이 갈라고 헌당께.”
며칠 후 나는 아내가 운전하는 승용차에 두 분을 모시고 읍내 사진관으로 갔다.
“사진사 양반, 우리 아들 예쁘게 잘 찍어 줘야 혀요 잉? 돈은 많이 드릴 텡께로 잉?”
“할머님, 걱정 말고 환하게 웃어 보시소 잉, 주름살이 확 펴지께라 잉.”
나는 아내와 함께 사진사가 말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헛따! 할머니, 처녀 때 남자께나 울렸겠소 잉.”
“뭔 소리당가요 잉, 시방 내가 저 막내아가 때문에 속이 다 문드러졌당께라 잉”
할머님은 슬하에 3 남 3녀를 두었다. 막내아들만 빼고 모두 자기 앞가림을 하고 있다. 그러나 할머님은 막내아들 때문에 한시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고 했다.
우리 집에 오셔서 어머님께 한숨을 쉬시며 한탄을 늘어놓으시곤 하셨다. 옥분이 할머님은 불편한 자식을 평생 동안 가슴에 묻어두시다 2 년 전 세상을 뜨셨다. 그리고 작년에 막내아들마저 장애 없는 저 세상으로 가셨다. 아마 할머님께서 먼저 가셔서 좋은 자리 만들어놓고 데려가신 게 아닐까 생각한다.
막내아들의 장례식 날, 그의 형제들은 아무 말 없이 막내 동생 영정만 바라보고 있었다.
“막내가 해맑게 웃고 있네. 꼭 천사 같아. 흑흑흑, 막내야 미안하다. 살펴주지 못해서, 흑흑흑.”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영정사진을 찍을 때 할머님이 보여주신 깊은 뜻을 그제야 알수 있었다. 할머님의 목소리가 귓가에 생생하게 떠올랐다.
‘우리 막내아가 예쁘게 잘 찍어 주랑께, 돈은 얼마든지 드릴텡께. 사진사 양반요 잉.’
나도 이번 주말에 시골에 계신 칠순이 넘으신 양부모님을 찾아뵙고 조심스럽게 여쭤야겠다.
“엄마, 사진 찍으러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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