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늘 새로운 모습을 발견케 한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기분 좋은 불안감은 행복감을 더해주고, 새로운 것과 대면해야 하는 호기심으로 자신의 내면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 모습도 볼 수 있게 한다. 아이 같은 천진함에서 대담함까지 여러 모습이 여행하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나타난다. 평소엔 자신에게 늘 엄격했던 생활이 여행을 통해 무장해제 되면서 부드러워진다.

몇 해 전부터 이런저런 일들로 순천만을 찾게 된다. 처음 순천을 찾았을 땐 겨울과 봄의 경계에 걸려 있었다. 남쪽이었지만 산비탈 그늘엔 아직 얼음꽃이 녹지 않은 채 계절의 경계에서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날도 송광사를 찾았다.

조용한 사찰엔 예불소리만 가득했고, 궂은 날씨 탓인지 관광객은 찾아볼 수 없었다. 송광사를 방문한다는 기별을 미리 넣어둬서 자윤 스님이 사찰입구까지 마중 나와 주셨다.

스님과의 인연은 인도여행에서 시작됐다. 낯선 나라에서 이동에 대한 불편한 환경과 문화적 충격의 두려움으로 여행을 갈까 말까 결론내지 못하고 갈등하고 있을 때 용기를 주신 분이 자윤 스님이었다.

당시 스님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과 여러 번 해외여행의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었고, 여행 방법도 다른 배낭여행과 많이 달랐다. 환경을 지키고 동물의 생명까지 소중히 여기며 빈 그릇 운동을 실천하는 분이었다. 스님의 그런 행동이 내겐 적잖은 충격이었다.

그렇게 인연이 된 스님은 그 후 속세와 잠시 연을 끊고 마음공부를 위해 부처님께 귀의했다. 몇 년 동안 스님을 보지 못해 아쉬웠지만 수행하던 스님과 어렵게 연락이 닿아 지인들과 함께 만날 수 있게 됐다. 벚꽃 내리던 어느 날. 스님을 만나러 기차에 몸을 실었다.

도착한 순천엔 봄장마가 한창이었고 비는 잠시 소강상태였다. 순천의 장애인 콜택시는 시외 지역인 송광사까지 운행하지 않는다고 해서 콜벤 택시를 섭외했다.

택시에 휠체어를 싣고 버스 터미널에서 울산에서 오는 R을 기다렸다. 오랜만에 만난 R은 성숙한 여인이 돼 있었다. 인도 여행 때 R 은 20대 중반이었다 당시 R은 상큼한 청춘이었다.

세월은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여행친구들의 삶과 생활에도 변화의 물결이 흘렀다. 세계 곳곳을 돌며 세상을 향해 뚜벅이가 된 친구도 있고,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좋은 직장을 그만두고 아프리카 오지에서 나눔의 길을 택해 그들과 함께 하는 친구 까지.

인도여행은 그들도, 내게도, 많은 것을 변화케 했다. 구도자의 길을 선택한 자윤 스님도 인도여행 후 삶의 방향을 바꾼 것이다. 그렇게 여행친구들과 오랜 만에 순천 송광사에서 만났다.

사찰입구 전통찻집에서 스님과 일행은 해후했다. 반가운 인사를 하고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차를 시키고 스님께 수행과정을 소소히 들을 수 있었다. 이야기가 오가는 동안 주문한 차가 테이블이 세팅됐다.

스님은 일행에게 차 따르며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구도자의 길을 선택한 스님의 모습은 맑은 유리처럼 투명해 보였다. 밖은 다시 봄장마가 세차게 퍼붓고 차담이 끝나고 사찰내부로 갔다. 비를 맞으며 가는 길은 질퍽거렸고 우산을 들었지만 옷과 신발까지 이미 다 젖어있었다. 여벌옷을 가져가지 않아 난감했지만 친구들과의 만남은 즐겁기만 했다.

사찰에 도착해 스님이 마련해준 방으로 들어갔다. 젖은 옷을 벗고 스님이 가져다준 옷으로 갈아입었다. 마른 옷으로 갈아입었는데도 추위가 엄습했다. 따스한 아랫목에서 이불을 덮고 있으니 잠시 스스르 잠이 왔다.

눈을 떠보니 방안엔 나 혼자였다. 밖은 벌써 어두웠고 멀리서 예불소리가 들려왔다. 방안엔 예불소리와 소쩍새 울음소리, 대나무 사이로 지나가는 바람소리가 하모니되어 듣기 좋았다.

다시 눈을 감았다, 방안가득 울려 퍼지는 예불소리와 바람소리를 들으니 묘한 해방감이 든다. 또 다른 세상으로 로그인 할 땐 잠시 휴대폰을 꺼두셔도 좋습니다. 라는 광고가 떠올랐다. 다시 방안을 천천히 훑어보니 찻상과 이블 몇 채, 베게 가 전부였고 젖은 옷은 벽에 걸려있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스님과 일행이 방으로 들어왔다, 저녁을 먹어야 하는데 난 공양간으로 갈 수 없어 일행이 식사를 가져다준다고 한다. 다른 일행들은 공양 간에서 저녁을 먹을 수 있지만 2층인 공양간에 난 갈 수가 없다. 템플스테이에 참여한 모든 행자들은 공양간에서만 식사가 가능하다고 한다.

“하필 공양간이 2층이야, 장애인은 어떻게 올라가라고, 부처님이 장애인 차별하는 거야 뭐야" 혼자서 투덜댔다.

일행이 저녁을 방안으로 가져왔다. TV도 없고, 휴대폰도 켜지 않았다. 조용한 방안에서 혼자 밥을 먹으며 음식의 맛을 음미 할 수 있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사찰음식은 정갈하고 가벼웠다.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고 자연에서 나는 재료만으로 맛을 낸 된장국에 나물이 전부였다. 가벼운 식단이지만 깔끔하고 자연스러웠다.

저녁을 먹고 스님과 일행이 다시 한자리에 모였다. 스님은 정성스럽게 차를 준비하신다. 주전자에 물을 데우고 데워진 물에 작설차를 넣고 중탕을 한다. 찻잔 가득 스님의 정성이 담긴다.

스님은 차를 마시는 것에서도 예의와 법도를 지키며 자신의 욕심을 내려놓는다고 한다. 방안 가득 녹차향이 퍼지고 차를 만드는 스님의 손놀림에 예절이 묻어난다.

혼자서 차를 마실 땐 명상하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다스리고, 함께 할 사람이 있으면 이야기를 나누며 차담을 즐긴다고 한다.

인도여행 당시 스님에게서 풍기던 분위기가 이어지는 것 같았다. 스님은 욕심을 내려놓고 세상과 더 가까이 하기 위해 구도자의 길을 가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스님과의 차담은 늦은 밤까지 이어졌다.

•가는 길

용산에서 KTX 이용 복지할인 적용 왕복 4만원

순천장애인 콜택시 두 시간 전 예약 이용. 전화 061-751-8181

•먹거리

순천만자연생태공원 앞 꼬막정식

•장애인화장실

송광사 곳곳에 장애인 화장실이 잘 마련돼 있다.

•잠자리

순천장애인 자립생활센터에 휠체어 접근 가능한 숙박업소 정보 제공

에코비치캐슬 http://www.ecobeach.co.kr/ 전화 061-725-3355/010-6621-0718

•문의

휠체어 배낭여행,

http://cafe.daum.net/travelwheel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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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윤선 칼럼니스트
여행은 자신의 삶을 일시적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천차만별이지만 일상을 벗어나 여행이 주는 해방감은 평등해야 한다. 물리적 환경에 접근성을 높이고 인식의 장벽을 걷어내며 꼼꼼하고 정확한 정보가 제공되어야 한다. 돈 쓰며 차별받지 않는 여행, 소비자로서 존중받는 여행은 끊어진 여행 사슬을 잇는 모두를 위한 관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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