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계에서 일하면서 가장 많이 듣기도 하고 사용하기도 하는 말이 “역량강화”라는 말이다.

우리말로는 “역량강화”라고 사용하지만 영어에서는 이러한 의미로 몇 가지 용어를 사용한다. 이미 김영식 교수, 김대성 회장, 윤재영 관장님이 2010년에 발표하신 “UNESCAP 제3차 아태장애인 10년 전략 연구”에서 관련된 내용을 언급하신 적이 있다.

여기에 관해 간략히 설명하면, 역량강화 (Empowerment)와 유사한 의미로 사용하는 용어들로는 Capacity Development (역량개발), Capacity Building (역량구축), Capacity Investment (역량투자) 등이 있다.

김형식 교수님 등은 이들 용어가 유사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만 적극적 개념으로 역량투자를, 경제개발에서 주로 이루어지는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 등의 의미로 역량구축을, 인간 중심 조직 중심의 개념으로 역량개발을 언급했다.

일반적인 의미로 역량강화를 표현할 때 Empowerment를 사용할 경우 “권한의 부여”라는 의미가 있다. 즉, 장애인의 역량은 어떤 교육이나 학습에 의해서도 향상될 수 있지만 장애인의 권리를 스스로 개발하고 실현하기 위한 국가 또는 사회의 정책개발, 제도개선, 행정 등의 과정에서 권한을 행사할 수 있을 때, 실현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Empowerment'를 제외하고 다른 용어들이 가지는 공통점이 바로 Capacity라는 용어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 말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크게 세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나온다.

첫째는 “용적이나 용량”이라는 의미이다. 어떤 공간의 수용가능인원, 전기나 물의 용적 등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재능이나 역량, 자격, 법적 지위 등을 의미한다고 나온다. 역량개발 등의 용어에서 Capacity를 “역량”이라는 의미로 번역하는 근거가 여기에 있다. 이 의미와 관련한 각종 예문을 살펴보면 사람의 수안이나 능력, 심적인 여유 등으로 해석되어지는 것들이 상당수이다.

끝으로 “능력”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여기에는 공장의 생산능력이나 컴퓨터의 자료 저장 능력 (용적), 한 국가의 전투능력, 사람이 마실 수 있는 물의 양, 전기의 출력량 등을 표현할 때 Capacity를 사용하는 것으로 나온다. 이들을 종합하여 Capacity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 사람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함양하기 위한 교육, 법적 지위나 자격을 향상시키기 위한 제도의 개선, 어떤 일을 수행하거나 감당할 수 있는 능력 등을 의미하는 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역량강화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얼마 전 끝난 국제장애인권리협약 이해당사국 회의에서 “경제적 역량강화 (Economic Empowerment)”라는 말이 새로이 대두되었기 때문이다.

국제장애인권리협약 이해당사국 회의는 올해로 6차를 맞이했으며 국제장애인권리협약을 비준한 국가들이 협약의 이행 상황을 보고하고 국제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해마다 개최되고 있다.

올해 회의에서 다루어진 주제가 “장애인권리협약의 틀 속에서 생활의 적정한 기준의 보장: 장애인의 참여와 역량강화 (Ensuring Adequate Standard of Living: Empowerment and Participation of Persons with Disabilities within the Framework of the CRPD)”였고 세부 주제 1이 바로 “포괄적 사회보장과 빈곤 감소 전략을 통한 경제적 역량강화 (Economic Empowerment through Inclusive Social Protection and Poverty Reduction Strategies)”였다.

사실 지금까지 역량강화라는 용어가 어떤 형용사와 결합되어 사용된 사례가 적었다는 측면을 고려해 볼 때, 이번 회의에서 “경제적 역량강화”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며 역량강화라는 막연한 개념을 보다 현실적인 모형 즉, “소득 보장과 빈곤 감소 정책이나 제도의 실현을 통한 장애인 당사자들의 경제적 자립”으로 현실화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실제 회의 전에 배포된 회의 자료에서도 전세계 약 10억 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장애인구 대다수가 상대적 혹은 절대적 빈곤상태에 처해 있으며 열등한 교육 수준, 저조한 고용률로 인해 경제적 자립을 성취하지 못하고 있음을 먼저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의 지적과 더불어 지난 20년간 전세계적으로 나타난 경제위기, 에너지 고갈, 기후 변화 등의 문제들에 장애인이 비장애인에 비해 더 심각하게 노출되어 있다고 언급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장애인에 대한 노동시장 진입 장벽을 낮추고 (Participation) 장애인들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의 영위를 위한 사회보장제도를 운영하여 (Social Protection) 교육 기회의 평등, 보건/의료 서비스 및 대중교통수단에의 접근, 직업생활의 영위 등을 가능하게 하는 역량을 강화하도록 하자는 내용이다.

이를 위한 실천 전략으로 이미 국제적으로 합의되고 공포된 유엔의 국제장애인권리협약과 국제노동기구 (ILO)가 장애인의 고용 확대와 직업재활을 위해 제시한 권고안, 가이드라인 등을 충실히 이행하고 차별금지 및 평등에 기반한 사회보장제도의 운영의 구체적 실천으로써 공공부조, 사회보험 제도 속에 장애인을 포함시켜야 함을 지적하고 있다.

정리하면 일할 수 있는 장애인에게는 일자리를 그렇지 못한 장애인에게는 사회보장 제도의 틀 속에서 경제적 자립을 보장하여 장애인이 주도적으로 자신의 생활을 꾸려나갈 수 있는 역량을 강화시켜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원탁회의에서도 이해 당사국들은 자국 내에서 운영하고 있는 사회보장제도를 소개하고 빈곤의 퇴치 혹은 감소를 위해 실시하고 있는 정책을 소개했는데 눈길을 끄는 논의 구조는 2015년에 종료되는 새천년 개발계획 (Millenium Development Goals)을 연장하고 장애포괄적개발 (Disability Inclusive Development)의 개념에 기초한 실천목표를 강조하여 장애이슈를 새로이 채택될 제2차 새천년 개발계획의 행동목표 속에 구체화하자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이 의견은 공식 일정 전에 열린 시민사회포럼 (Civil Society Forum: CSF) 회의에서도 제시되었는데 종전의 새천년 개발계획이 빈곤 퇴치를 목적으로 하는 저개발국 경제개발에만 집중되어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평등을 실현하고자 하는 노력이 부족했음을 지적하고 경제 개발이나 사회 개발에 있어 장애를 포괄하는 개발계획을 수립하고 실천함으로써 교육, 노동, 생존, 접근권과 같은 장애인의 권리를 증진함은 물론 빈곤이나 자연재해 등 위기 상황에서의 위험 감소에 대한 구체적 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고 논의했다.

이러한 국제사회의 노력은 결국 국제장애인권리협약을 비준한 국가들이 협약이 규정하고 있는 장애인의 교육권, 노동권 및 생존권 등을 실현해 나가는 과정에서 드러날 것이며 유엔을 포함하여 여러 국제기구들이 그 동안 경주해온 장애인의 권리실현과 통합사회의 구현을 위한 노력을 권리협약의 틀 속에서 완성해 나가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고 분석할 수 있다.

그 동안 국제사회는 장애인의 권리실현과 완전한 사회통합을 위한 노력을 경주해 왔다. 1981년 유엔이 세계장애인의 해 (IYDP)를 선포하고 장애인을 고려한 세계행동계획 (The Program of Action concerning Disabled People)을 선포했고 유엔 에스캅에서는 1993년 이래로 아태장애인10년을 10년 주기로 선포하면서 1993년에 장애인을 위한 기회 평등화에 관한 표준 (Standard Rules on Equalization of Opportunities for People with Disabilities), 2003년 비와코 새천년 행동계획 (Biwako Millenium Framework: BMF), 2007년 BMF Plus Five, 2013년 아태지역 장애인의 권리 실현을 위한 인천전략 (The Incheon Strategy to Make the Right Real for Persons with Disabilities in Asia and the Pacific) 등을 선포했다.

이 외에도 국제노동기구 (ILO), 세계보건기구 (WHO)를 포함하여 국제아동기금 (UNICEF) 등에서도 지속적으로 장애인과 관련한 노력들이 경주되어 왔다.

이러한 상황을 정리하고 향후 진행되는 국제적 노력의 전략 혹은 목표로 장애인권리협약을 활용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필자는 조심스럽게 전망해 본다.

결과적으로 장애인권리협약을 비준한 국가들은 장애인과 관련한 국제협력의 과정에서 협력 내용이나 목표를 장애인권리협약의 실천에 두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생각한다.

향후 ILO나 WHO 등 국제기구들의 활동에서도 장애인권리협약이 보장하고 있는 장애인의 노동권이나 건강권의 실현에 초점을 맞추고 업무를 진행할 것이고 새천년 개발목표와 같은 이유로 활용되는 ODA 기금이나 국제협력기금 등의 활용에 있어 향후 장애인 관련 국제협력에 재원이 활용될 경우 재원의 투입 목표는 “국제장애인권리협약의 실현”이라는 목적 하에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는 제3차 아태장애인10년과 같은 지역개발 프로젝트들이 지향하고 있는 목표가 장애인권리협약이 실현하고자 하는 이상적 상황과 차이가 없고 2006년 국제장애인권리협약 채택 이후 수립되고 시행되는 국제협력 혹은 국제적 지역개발 프로젝트들이 장애인권리협약의 내용을 참고하고 있다는 측면에서도 예측할 수 있다.

결국 장애인권리협약이라는 하나의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틀 속에서 향후 국제협력의 방향이 설정될 것이다.

이번 장애인권리협약 이해 당사국 회의를 시작으로 우리는 장애인권리협약, 아태장애인10년, 국가간 국제교류 프로그램들 등의 진행에 있어 하나의 구조를 만들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장애인의 권리실현, 평등사회·통합사회의 실현을 위한 국제협력은 장애인권리협약이 천명하고 있는 장애인의 권리보장수단의 틀에서 진행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 국가간 협력의 목적이 평등사회, 통합사회의 구현이나 장애인의 권리실현이라는 측면에서 설정되고 그에 따르는 목표는 역량강화, 교육기회의 보장, 근로기회의 제공 등 장애인권리협약에 포함되어 있는 구체적 내용으로 정리될 것이다.

구체적 실천내용은 교육/훈련 프로그램의 실시, 지원고용이나 보호고용과 같은 직업재활·고용촉진 모델의 운영, 자조집단 형성 지원 및 풀뿌리 장애인 당사자 단체에 대한 지원 등으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국제장애인권리협약이라는 하나의 틀 속에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활동을 통해 장애인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국제적 노력을 경주할 것이다.

그러한 노력의 첫 번째 과제가 바로 경제적 역량강화이고 이 첫 걸음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우리 장애인 당사자들이 향후 활발히 전개될 국제협력활동을 이해하는 토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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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준 럼리스트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사무국장이자 아시아태평양 세계시각장애인연합회 부회장이다. 제3차 아태장애인 10년을 위한 전략 수립을 위한 기초자료 수집을 목적으로 유엔 에스캅에서도 근무한 경험이 있다. 세계 장애인계의 동향, 뉴스를 소개하며 시사점을 살펴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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