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중심 사회 서비스 표지. ⓒ서인환

한국장애인재단에서 '장애인 중심 사회서비스 정책과 실천-서비스 현금지급과 개인예산'이라는 책을 출간하였다.

이 책은 영국 버밍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인 존 글래스비(Jon Glasby)와 로즈마리 리틀차일드(Rosemary Littlechild) 두 교수가 집필한 것을 성공회대학교 김용득 교수와 이동석 성공회대학교 사회복지연구소 연구원이 번역 출간한 것이다.

최근 박근혜 정부에서는 2014년 7월부터 개별급여를 실시하겠다고 하였고, 장애인복지법에서는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권리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장애인에게 등급제 폐지는 2017년에 가서 실시한다고 하여 개별급여제가 실제로 실현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그리고 정부에서는 ‘맞춤형 서비스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정부가 서비스를 정해 준다거나, ‘서비스 전달체계 구축’이라는 정책을 장애인정책발전5개년계획에 담고 있어, 서비스를 전문가가 판정해 줌으로써 오히려 더욱 시혜와 동정이 강화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든다.

불쌍히 여겨 무언가를 주면서 자선의 우월감을 만끽하는 것이 심리적인 것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제도에서는 권리라고 말하지만 실상은 잘 포장된 또 하나의 시혜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영국에서는 2003년부터 현금 급여(Direct Payment)와 개인예산제(Personal Budget)가 실시되고 있어 이 두 제도의 역사적 배경과 권리, 효과 등에 대하여 이 책에서는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중증장애인에게 활동보조 서비스가 더 필요한가를 묻는다면, 그렇다고 할 것이다. 현재는 하루 24시간 케어도 되지 않으며, 자부담이 매우 불합리하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현금을 받을 것인가, 현물을 받을 것인가라고 물으면 차라리 활동보조 서비스가 줄어든다고 하더라도 현금을 받겠다고 말할 것이다. 그만큼 현금이 더 필요하며, 현금의 가치가 더 높다는 의미이다.

이 가치는 금액이 아니라 사용처의 다양성일 것이다. 그렇다고 활동보조 서비스가 필요없다는 것이 아니라 소득보전에서 격차가 심하여 자기결정에 의해 사용하고 싶다는 의미일 것이다.

정부에서는 자부담 없이 활동보조 서비스를 장애인에게 주면 도덕적 해이가 심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서비스양이 줄어들더라도 현금을 원한다고 하면 바로 이것이 도덕적 해이를 반증하는 것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현 제도에서는 사실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은 법적 선언에 불과하다. 마치 사랑한다는 말과 같이 감성적이지만 명확하지가 않다. 권리가 있다면 구체적 시행방법과 권리를 누리지 못할 경우의 구제책이 법으로 정해져야 완전한 권리이다.

현재의 서비스는 판정에 의해, 장애등급에 의해, 소득수준에 의해 정부가 정해 주는 것이고, 주어진 서비스 외에 다른 서비스는 절대로 사용할 수가 없다.

영국에서는 현금 급여를 통하여 그 사용 용도의 결정권을 장애인에게 주고 있다. 서비스의 민영화와 시장화를 통하여 정부의 예산을 절감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나 서비스의 질적 향상의 기대는 큰 효과를 보지 못하였고,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에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함을 시행착오를 통해 이미 절감하였다.

그리하여 현금으로 장애인에게 지급하고 정부는 사용의 용도에 대하여 간섭하지 않는 제도를 도입하였다.

그렇게 되자 장애인은 스스로 서비스 이용에 대하여 설계하고 관리를 하며 살게 되었다. 소득보전과 서비스가 현금으로 주어지자 정부가 정해주는 사용 용도의 한계가 없어졌다. 미술을 좋아하는 장애인은 그림도구를 구입하기도 하였다.

어차피 장애인은 소득에서 격차를 보이며, 오히려 장애로 인하여 더욱 재화가 필요하므로 현금으로 지급한다고 하여 특혜가 아니다. 서비스만 주거나 현금을 별도로 일부 지급한다고 하면 전체적인 삶의 질의 향상이 아니라 사용 용도가 정해진 부분만이 향상되어 삶의 불균형이 일어난다.

이러한 불균형을 극복하고자 도덕적 해이가 일어나며, 주어지는 현물 서비스에서는 오히려 도덕적 해이가 일어날 수 있다. 굶주렸으니 주어지는 것이라도 실컷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금으로 주어지면 필요 없는 서비스는 다른 용도로 스스로 조정하므로 서비스는 서비스 제공자에 의해 더욱 질 좋은 상품으로 제공되며, 경쟁적으로 고객 서비스 만족도를 높이게 된다.

주어진 서비스는 질이 높아지나 지원되지 않는 부분은 삶이 개선되지 않으므로 불균형이 일어나며, 장애인은 서비스의 결정권이 전혀 없이 대상이 되고 자기결정권은 박탈된다. 장애인은 취약하고, 돌보아 주는 대상이 되며, 통제하여야 하고, 철저히 사정하여야 하며, 후견이나 결정을 대신해 주어야만 한다.

그러나 현금 급여와 개인예산제는 스스로 관리하고 자기결정을 통해 본인의 상황에 맞는 가장 적절한 결정을 할 수 있다. 스스로 결정하고 참여하며, 자기통제를 통한 자립을 가능하게 한다.

아무리 전문가라 하더라도 본인만큼 자신을 잘 아는 것은 아니다. 그런 모순 속에서 다른 곳으로 사용하는 것을 부도덕으로 몰고 부정으로 간주하며 강제로 틀에 맞추어 한정된 생활의 단순 이용자로 전락시키고 있다.

물론 현금을 무한정 지급할 수 없으며, 적절한 수준과 대상을 선정하기 위한 기준과 사정은 필요하다.

그러나 서비스까지 남이 전문가의 탈을 쓰고 맞추어줄 필요는 없다. 전문가가 맞추어주는 서비스는 장애인의 자기결정능력을 막아버리고 배타적인 인간을 만들어 결국 자립을 성공하지 못하게 한다.

정부가 정해 주는 서비스 외에는 법적 근거가 없어 알아서 하라고 하니 장애인들은 힘들어지는 것이고 요구는 더욱 강해지고 법은 늘어나지만 만족은 오히려 거리가 멀어진다.

안내견을 훈련하는 데 2억원이 든다고 한다. 시각장애인에게 안내견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현금으로 다른 것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당장 배를 굶어도 개는 데리고 다닐 수 있는 것이 맞는 것인가라는 문제가 생긴다.

물론 안내견은 개인의 요구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지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비유가 적절하지는 않다. 그러나 현재의 정부가 맞춤형으로 사정을 통하여 주어지는 서비스는 이 것만 제공 가능하니 선택의 여지없이 받든지 말든지 하라는 식이어서 일단 기회만 주어지면 받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환경이나 기타 조건이 맞지 않으면 안내견을 받을 수 없으므로 흑 아니면 백이어야 하는 식으로 서비스는 단 두 가지 뿐이다. 그러니 복지는 로또처럼 당첨이라고 한다.

다른 곳에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정부가 복지재원으로 지원했어야 할 부분이나 다만 지금 지원하지 않을 뿐이다. 무한정 지원하는 것도 아니며, 소득의 보전은 장애인연금과 같이 지금도 실시하고 있다.

법으로 서비스를 정하고 그 테두리가 아니면 부당하다는 논리는 법의 눈이지 복지의 진정한 눈이 아니다.

이 책은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의 진정한 실현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미래에 결국 우리가 채택할 수밖에 없는 제도를 제시하고 있다.

평등은 기회의 균등이며, 비차별은 격차를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다. ‘차이를 인정하되 차별을 하지 말자’는 우리의 슬로건이 아니라 ‘차이를 없애지 않는 것은 차별’이라는 서구의 슬로건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비장애인은 소득을 스스로 해결하며 소득은 알아서 사용한다. 장애인은 소득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격차를 보이며, 사용 용도를 정부가 정해서 공급한다. 차이를 사정하여 자기결정권으로 스스로 구매권을 행사하도록 하는 것이 장애인이 자립하여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용돈을 주면서 사용처를 정해주는 한 그 용돈은 용돈이 아니다. 우리는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완전한 통합과 참여를 이야기하면서 실제적으로 경제적 참여가 아닌 서비스의 보조라는 시혜를 하고 있다. 동정과 시혜의 대상이 아니라 진정한 권리라면 자기결정권이 행사되어야 한다.

이번 한국장애인재단에서 출간한 <장애인 중심 사회서비스 정책과 실천-서비스 현금지급과 개인예산>은 우리에게 이러한 것을 일깨우고 있으며, 실제로 진정한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사람들을 증명해 보이고 있다.

이 책을 통하여 장애인 중심 서비스와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기 위한 길은 현금급여와 개인 예산제임을 우리는 확신할 수 있으며, 앞으로 우리 장애인복지가 나아갈 길을 밝혀주는 책으로 권하고 싶다.

자! 이제 지원이 아니라 보장으로 가자. 그리고 자기결정권을 주장할 무기를 이 책에서 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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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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