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인권운동가나 장애인 활동가들은 장애인 인식을 개선하려고 하는가? 모든 것들은 인식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차별을 근원적으로 해결하는 것도 인식개선이다. 그러기에 차별을 했다고 판단되는 사람에게 국가인권위원회는 재발방지 대책으로 인식개선 교육을 받도록 권고하고 있다. 각종 차별행위와 폭력행위 역시 그 예방책은 인식개선 밖에 없다.

장애인이 억압을 받고 살아가는 것과 소득이 낮아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정치적 참여나 사회적 통합이 부족한 것도 문화적 격차를 보이거나 편의시설이나 지식정보의 접근성 보장의 미비함에 있어서도 출발은 장애인의 인식개선이 필요하다.

장애인을 시혜적·동정적 대상에서 ‘누구나 삶의 가치는 같다’는 견지에서 동등한 권리의 주체자로서 인정하는 것도, 시설 중심의 분리 복지정책에서 벗어나 자립생활이라는 새로운 삶의 설계와 자기결정권의 보장 역시 모두가 장애인 인식개선이 전제되어야 실현 가능한 것이다.

정치·경제·문회·사회적 모든 분야가 인식문제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말은 장애인의 인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말해 주는 것이며, 인식은 모든 문제의 출발점이고 해결점이라는 것을 명확히 하고 있다. 인식은 출발점이며, 태도는 결과적 행위이다.

아무런 사회적 편견을 가지고 있지 않은 유치원 아이가 유치원에서 장애인 친구를 알게 되고, 장애인인식교육을 받으면서 장애인에 대한 차별의식도, 편견도 없이 장애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나 이 아이는 어린 아이인만큼 어리광을 부리는 것이 당연했다.

어느 날 엄마와 함께 시장에 갔다가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 엄마에게 그것을 사 달라고 졸라대고 있었다. 처음에는 엄마가 ‘너는 초콜릿이니, 아이스크림이니 몸에 좋지 않은 것만 먹으려 하는구나. 찬 것은 몸에 좋지 않다.’라고 아이를 달래었으나, 아이는 그래도 사 달라고 계속 엄마에게 요청하였다.

이때에 엄마 옆을 지나가는 목발을 짚은 한 지체장애인이 있었다. 엄마는 아이에게 “너 이렇게 엄마 말을 듣지 않으면 저 사람처럼 되고 말 거야”라고 말했다.

엄마는 더 이상 아이스크림을 사 주지 않아도 되었다. 아이에게 가장 확실하게 거부의사를 말한 것이다. 그러나 아이는 장애는 나쁜 것이고, 장애인은 무엇인가 엄마 말을 듣지 않는 등 자신의 비도덕의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울다가 호랑이가 온다는 말을 듣고 울음을 그치듯이 울음이나 조르는 것을 그치게 하는 것은 무서운 것들이라, 장애는 무서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동안의 백지와 같은 순수한 아이의 머릿속에 장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새겨지는 순간이었다.

유치원에서 몇 시간의 장애인인식교육도 허사가 되는 순간이었고, 장애인 친구와 자연스럽게 어울리던 1년 간의 경험도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어떤 장애인인식개선 교육을 받더라도 절대로 지워지지 않는 편견과 오해가 새겨진 것이다.

이 만큼 인식은 순간이나 찰나의 말이나 배경에 의하여 과거와 미래를 모두 결정해 버린다. 그러므로 올바른 인식개선을 위해서는 절대 긴장을 늦추어서는 안 된다.

뉴스보도 전문 채널인 YTN에서는 지난 23일부터 25일까지 매시간 뉴스보도와 인터넷 뉴스보도를 통해 ‘장애와 문화차이 넘은 한마당 잔치!’라는 기사를 내보내었다.

가정의 달을 맞아 장애인과 다문화가정 학생들이 함께하는 한마당 잔치가 열렸다는 기사였다. 소속 기자가 광주에서의 한 행사를 취재한 것이었다.

‘눈이 좋지 않은 장애인과 일반인들이 축구를 합니다. 안대를 쓴 일반인들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넘어지기 일쑤입니다. 다문화가정 어린이와 일반인들이 조를 이뤄 장애인들과 대결도 펼쳤습니다. 시각과 지적 장애를 한꺼번에 겪고 있는 장애인들도 멋진 공연을 펼칩니다. 장애인과 다문화가정 학생들의 만남은 서로에 대한 배려와 이해를 통해 나눔과 동행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마련됐습니다.’

기사 내용은 이러하였다.

장애와 문화 차이 넘은 한마당 축제 보도와 관련하여 시각장애인을 ‘눈이 좋지 않은 장애인’이라 표현하고 비장애인을 ‘일반인’이라 표현하였다.

비장애인이 일반인이면 시각장애인은 일반적이지 않은 비정상적 인간인가? 중복장애인을 ‘시각과 지적 장애를 한꺼번에 겪고 있는 장애인’이라고 표현하였다. ‘장애를 가진’도 아니고 ‘장애를 겪고 있는’ 것이면 장애는 겪는 것인가? 이 기자는 결혼을 하면 여자를 겪고 있는 것이고, 처가에 가면 장인도 한꺼번에 겪고 있는 사람인가 보다.

장애와 문화 차이를 넘는다는 표현은 초월했다는 말인지, 극복했다는 말인지 모르겠으나 재활이니, 극복이니 하는 표현은 언론이 가장 주의해야 하는 말이다.

장애인이 소풍만 가도 언론에서는 ‘장애를 극복하고 소풍을 갔다’는 제목으로 기사를 쓰는데 그냥 소풍을 간 것이지, 극복이나 장애를 이기는 것과는 무관하다.

장애는 이기는 것도 극복하는 것도 아니다. 장애와 함께 평생을 사는 것은 못 이겨서인가? ‘모두가 하나’라는 표현도 이제 지겹다. 배려라는 표현도 그렇다. 장애인은 시혜의 대상이 아니므로 고려가 맞다.

불쌍한 사람들을 모아서 잔치하는 모습은 조선시대의 소설 심청전의 잔치모습에서 하나도 발전하지 못하였고, 언론의 용어사용은 기자의 자격을 의심하기에 충분하다.

최소한 YTN 정도라면 이런 수준은 아니어야 한다. 기자가 신참이어서 잘 몰랐다고 하더라도 피디가 있고, 카메라맨이 있고, 본부장이 있는데 아무도 이런 것을 걸러내지 못하는 시스템이라면 한국 언론계가 한심한 것이다.

장애인은 사회참여의 시혜나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자로서 통합된 사회에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존재이다.

행사 주최측이 어려운 사람들을 모두 모아 한번에 함께 하는 행사를 한 의도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하나’로 묶는 것도 별로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부정적 인식이 겹쳐지는 효과가 있으며, 주최 측은 만족도가 극대화되지만, 참여자의 기분은 대상화의 백화점식 나열품이 된 기분을 느끼기 때문이다. 동물원 옆에 지적장애인 시설을 짓는 것이 동물원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하더라도 방문자들이나 시설 이용자들은 동물과 장애인을 겹쳐서 무의식 속에 담아 두게 된다는 것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 광고나 언론에서의 공공연한 차별을 금하도록 하였고, 그 많은 장애인단체들이 수년간 언론보도를 질타하고 계몽, 홍보하고 있음에도 귀를 막고 고정된 보도태도를 보이는 것은 가히 언론이 입만 있지 귀는 없는 개혁의 대상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장애인 주간과 5월 가정의 달에서의 장애인 관련 행사보도의 태도는 다른 언론들도 별로 다르지 않았으며, 일반인과 장애인을 분리하는 용어는 대부분 아무런 생각 없이 사용하고 있어 장애인 인식은 언론이 그 역할을 맡아도 시원찮을 마당에 오히려 인식개선을 역행하는 데에 언론이 자리하고 있음에 이를 비탄해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사회와 시대를 앞서가며 이끌어야 할 언론이 새로운 패러다임에 전혀 민감성이 없으며, 오히려 과거로 회귀하고 안주하면서 장애인을 위한다면서 오히려 인식을 망치고 있다. 언론은 진정한 나눔과 동행이 무엇인지 단 한번이라도 생각 좀 하기 바란다.

YTN의 이 정도의 보도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의 공공연한 차별에 해당할 수 있으며,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전 국민을 상대로 내어 놓고 장애인인식개선을 망쳐버린 부끄러운 일을 한 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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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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