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소주잔 받아!"
별빛이 쏟아지는 덕유산 정상에서 친구들과 비박을 하면서 출출한 속을 달래기 위해 조촐한 소주파티가 벌어졌다.
“자, 어둠의 사자 송경태가 소주 한 잔씩 하사하겠다.”
“어허, 앞도 못 보면서 어떻게 소주를 따른다고 그래? 아서라, 아서.”
“아냐, 나도 소주 한 방울 안 흘리고 잘 따른다니까. 잘 보라고.”
내가 소주잔을 말 그대로 한 방울도 안 흘리고 채우자 다들 신기한 모양이었다.
“어, 정말 소주 한 방울 안 흘리고 잘 따르는데?”
나는 의기양양하게 대답했다.
“이래뵈도 시각장애 짠 밥 30년 차라고.”
그 때 한 친구가 배낭에서 술안주를 꺼내려 했다.
“기석아, 손전등 줘봐라, 배낭에서 술안주 좀 꺼내게.”
“병근아, 무슨 손전등이냐, 내가 꺼낼게.” 라고 말하며 나는 병근이 배낭 속을 더듬어 육포와 양념 김을 꺼내 술판에 늘어놓았다.
“야, 경태 너, 눈 보이는 것 아냐?”
나는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경태야, 소주팩 줘봐라, 한 잔 따라 줄게.”
나는 병근이에게 소주팩을 건네주었다. 그런데 주위가 어두운 탓에 병근이는 술을 따르는 데 애를 먹는 모양이었다.
“야, 난 못 따르겠다. 귀한 소주가 잔에 넘칠 것 같아서 말이야.”
“두 눈 두었다 어디다 쓸래?”
“야, 앞이 보여야 소주를 따르지.”
이번에도 내가 나섰다.
“병근아, 소주팩 줘봐라, 내가 따를게.”
그리고 나는 이번에도 역시 임무를 잘 수행했다.
“경태 너 손에 눈 달렸냐? 소주 한 방울도 안 흘리네.”
“시각 짠 밥 경력 30 년이 괜한 것인 줄 알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소주 한 방울도 안 흘릴 수가 있다냐.”
“잔이나 돌리라구. 그 비법을 전수할 테니, 날 사부님으로 정중히 모시겠지?”
“예, 사부님.”
나는 친구들 앞에서 비법을 전수했다.
“엄지손가락을 소주잔 안의 8부 능선쯤에 넣고 엄지손가락 끝에 소주촉감이 전해올 때까지 소주를 따르는 거야.”
“그렇구나. 근데 소주 맛이 짭짤하겠는걸, 허허.”
“자, 한 잔 따라보게.”
“예, 사부님 여기 대령했사옵니다.”
“음 잘 따르는군. 이제 손전등 필요 없지?”
“야,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더니 새로운 삶의 지혜인걸? 허허허.”
그리고 우리는 쏟아지는 별을 보며 밤새도록 소주잔을 기울이며 인생을 논했다.
“삶은 별거 아니더라. 자신이 처한 환경과 상황에 맡게 인생을 설계하고 적응해 가는 거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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