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친구라는 말이 싫었다. 그런데 우린 처음부터 친구였다. 아니 친구일 수밖에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게끔 학습되어 졌다.

그녀를 보면 손을 잡고 싶고, 안고 싶었고, 가까이 있고 싶었다. 그런데 그게 안 되다. 그녀가 오지 말라고 한 것도 아니고 날 싫다고 한 것도 아닌데, 난 그녀만 보면 위축이 되었다. 나 스스로가 나를 위축 시켰다.

귀엽고,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만큼 인기있었던 그녀에 비해 난 학교는 가보지도 못했고, 몸은 한쪽으로 휘어진 상태로 휠체어에 앉아서 무슨 말만 하면 분위기 조용해지는 느낌은 아무리 눈치가 없더라도 알 수 있었다.

사랑한다는 말은 차마 생각 할 수도 없었다. 그 말을 하면 떠나갈 것 같았다. 그래서 그녀를, 나 자신을 속였다. 우린 친구라고 …….

내 친구가 그녀의 친구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친구들 사이에서 그녀를 좋아하는 놈들이 나타났다. 이놈들은 그녀에게 잘 좀 말해 달라고 찾아오기도 했다. 너무 좋다고 여케 할 수 없냐고……. 지랄(?) 같았다.

난 그 때 놈들이 부러웠다. 어느 초겨울 그녀가 우리 집에 놀러왔다가 목도리를 두고 갔다. 난 일주일 동안 목도리에 얼굴을 묻고 잠을 잤다. 그녀의 냄새가 좋아서 …….

그녀는 빵을 좋아했고, 영화를 좋아했고, 이문세를 좋아했다. 지금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한 번 웃으면 크게 웃어서 목젖이 보일만큼 크게 웃었던 그녀…….

왜 그렇게 난 나의 장애가 싫었는지 …….

집안에 혼자 있을 땐 잘 몰랐는데 세상을 접하고 비교의 대상이 생기니깐 난 더없이 초라해지고 위축되었다. 누가 날 놀리고 구박해서 그런 게 아니다. 나 스스로 그렇게 만들었다.

동등하지 않은 관계에서 오는 소외감. 이런 느낌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지금까지도 있다.

그 땐 장애를 가지고 있는 내가 아름답고 인기 있는 그녀를 사랑(?)한다는 것이, 마음속에 그리워하는 것이 죄를 짓는 것 같았다. 감히 내 주제에 하면서……. 지금도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사람은 학습하는 사회적 동물이다. 나도 학습되어진 건 아닐까……. 사회로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탄공장 옆이 집이었던 그녀는 전문대를 갔다. 대학 입학을 하고 한참 지난 후에 길에서 만난 그녀는 생머리를 자르고 미스코리아들이 하는 퍼마를 한 모습으로 내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렇게 나의 첫사랑(?), 짝사랑은 나에게서 멀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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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40중반을 살아오면서 참 많은 사랑을 했다. 인생의 반 이상을 사랑하면서, 사랑이라고 착각하면서, 가끔은 사랑 받고 그렇게 삶의 반 이상을 살아왔다. 그리고 지금은 혼자다. 이제 그 사랑이야기를 할까한다. 왜냐면 다시 사랑을 하고 싶으니까. 장애인으로 혼자는 외로우니까. 그리고 지나온 사랑이 새로운 사랑의 출발점이란 걸 알기에... 장애인으로 여기저기를 기웃 기웃 거리다. 지금은 인천에서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일을 하고 있다. 나와 내주변의 지나온 다양한 이야기를 할 것이다. 그것이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기에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나와 여러분에게 그리고 난 지금 혼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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