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단체들이 자신의 고유사업을 개발하고 나서 다른 단체에서 후발로 그 사업에 뛰어드는 것에 대하여 여러 가지 반응들이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처음 개발자가 작은 단체이면 개발한 선구자적 아이디어 제공으로 만족하면서 양보를 해야 하는 경우가 있고, 자신의 지분을 요구할 수도 있고, 더 나아가 자신의 고유성을 강조하면서 주장을 굽히지 않고 버틸 수도 있다. 심지어 상도의를 내세우면서 상대를 비난할 수도 있다.

80년대 말 지·농·맹 각 단체에 정부가 숙원 사업들을 하나씩 정리하여 추진한 바 있는데, 시각장애인들은 심부름센터를, 농아인협회는 수화통역을, 지체장애인은 편의시설을 주장하였다.

시각장애인협회에서 이동수단을 주장하여 전국에 특별운송수단을 설치하였는데, 지체장애인들의 이동 서비스가 나중에 요구되면서 교통약자법에 의한 이동수단은 콜택시가 자리를 잡고, 심부름센터는 교통약자 편의증진법이 아닌 복지부 프로그램이 되었다.

정부에서는 하나의 사업을 두고 공모를 통하여 단체 간 경쟁을 시키기도 하지만, 정책방향을 장애인단체들이 미리 준비하는 과정에서 서로 경쟁하기도 한다.

국어연구원에서 특수문자(점자와 수화)를 위한 장애인연구지원사업을 시행하고 있는데, 이는 지원규정에 과거 시행한 경험이나 실적이 있는 자로 못 박아 다른 단체의 진입을 원천적으로 막고 있다.

방통위의 방송접근권 관련 사업은 시각과 농이 공존하면서 다른 단체의 진입은 사실상 어려운 모습으로 진행되고 있다.

RI와 DPI는 서로 국제적 입지를 놓고 경쟁을 하여 왔는데, ‘아·태 장애인 10년’이라는 사업의 확장여부에 따라 단체의 발전이나 가치가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모니터링연대는 한국 DPI가 제안하여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합회, 한국장애인인권포럼, 한국지체장애인협회, 한국여성장애인연합,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국척수장애인협회 등이 함께 활동하는 연대체이다.

이 연대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제정에 기여하였고, 국내 비준을 촉구하였고, 비준을 먼저 할 것인가, 완전한 비준이 아니면 보류해야 할 것인가, 상충되는 법 정비가 먼저인가, 비준이 먼저인가 등 많은 정책방향을 놓고 난상토론을 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었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의해 비준 2년 내에 각국 정부는 당사국의 권리협약 이행 상황에 대하여 국가보고서를 유엔 권리협약 인권위원회에 제출하도록 되어 있고, 민간단체들은 국가보고서에 대한 민간 보고서를 제출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위원회는 매년 봄과 가을로 2주일 정도 심의기간을 정하여 제출된 문건들을 심사하고 각국에 추가자료를 요청하기도 하고, 권리협약 이행을 위한 권고안을 채택하기도 한다.

이에 권리협약 모니터링연대는 2년 전부터 정부가 마련한 국가보고서를 토대로 민간보고서를 준비하여 왔으며, 1차 보고서는 초안 수준이었고, 최근 나온 보고서는 보다 형식을 잘 갖춘 보고서가 되었다. 그러나 아직 영문으로 번역하거나 유엔에 제출한 문서형식으로의 변환은 과제로 남은 상태이다.

민간보고서는 여러 단체들이 각각 제출할 수도 있지만, 하나로 통합하면 그만큼 유엔에 강력한 자료로 다루어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장애인계의 국제통으로 통하는 국제적 경험이 있는 사람인 김미주씨가 유엔 활동과 여성협약 민간보고서 경험이 있는 신혜수 교수와 결합을 하여 코큰(유엔인권정책센터)이 탄생되면서 모니터링연대 단독 관심사였던 민간보고서는 그 양상은 복잡해졌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은 장애인의 대표단체로서 먼저 연대를 재안한 적은 많으나, 회원 단체도 아닌 다른 단체의 제안에 후발로 참여한 경험이 없어 연대체에 합류하기가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점과 참여한다면 동등한 위치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므로 새로운 틀 안에 연대체를 포함하는 것이 보다 좋은 모양새라고 판단한 듯하다.

이에 따라 장총과 장총련, 코큰은 권리협약 모니터링 연대를 지속적으로 설득하여 새로운 연대체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지난 2월 22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4개단체(장총과 장총련, 코큰과 모니터링연대) 대표들이 워킹그룹을 구성하고 회의를 하였는데, 새로운 연대체로 유엔장애인권리협약NGO보고서연대를 출범하기로 하고, 4개 단체가 공동제안하여 많은 단체들에게 참여를 권하기로 결정했다.

이 자리에서 국제장애인 권리협약 민간보고서 작성 소그룹을 9개로 나누었다. ①일반 원칙 ②비차별 ③장애여성 ④장애아동 ⑤접근성 ⑥자유권 ⑦자립생활 ⑧사회권 ⑨국가의무가 그것이다.

권리협약 33조까지의 26가지 권리를 9개 분류 소그룹에서 이행 정도를 정리하여 보고서가 준비되면, 2014년 가을이나 2015년 봄 제네바에서 국가보고서와 함께 심의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정부가 마련한 국가보고서를 보면, 차별금지에서 ‘국가는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여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라고 보고를 하는 것에 대하여 민간보고서는 조목조목 미이행 부분을 지적할 것으로 보인다.

먼저 준비하여 온 많은 노력이 기득권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을 포기하고 화합의 길을 선택해 준 모니터링연대의 태도도 중요하지만, 보다 체계적이고 국가 정책의 발전을 앞당기고 바르게 잡고자 하는 장애인계의 공동 노력에도 큰 기대가 간다.

많은 단체들이 새로운 연대체에 동참을 요청하고 있는 바, 다시 장애인단체들의 힘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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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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