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과 관련한 국제 회의 등에서 가장 흔하게 들을 수 있는 단어가 역량강화 (Capacity building)와 접근권 혹은 접근성이라는 의미의 'Accessibility'이다.

더 많은 주제에 관해 다루기도 하지만 이들은 모두 유사한 세부항목으로 나누어지는데 막상 들어가 보면 장애인의 고용이나 교육, 자립생활 혹은 보조공학에 관한 것들이다.

시각장애인을 포함한 장애영역에 따라 구분해 본다면 장애인의 이동권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물론 역량강화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세부계획은 무수히 많이 있고 접근권이나 접근성을 다루는 분야도 많이 존재하지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장애인의 이동권에 대한 논의에서 역량강화나 접근성의 문제가 출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역량강화와 접근성의 시작이 이동권이라는 필자의 의견에 이견이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이동권의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교육이나 고용 기회의 보장이 가능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 그리고 접근성의 시작이 건축물에 대한 편의시설에서 출발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동권이 역량강화나 접근성의 시초라는 견해를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의 이동권은 여전히 남아 있는 숙제이며 해결되지 못한 문제이다.

역량강화와 접근성은 나름의 독자적인 영역으로 발전했으며 이동권은 접근성의 일부와 보편적 설계 (Universal Design)으로 분화되고 있다. 그러나 시각장애인의 경우 이동권은 건축물의 보편적 설계나 편의시설의 보장만으로 충족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

유럽시각장애인연합회를 포함한 많은 시각장애인 관련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동권을 접근성의 일부로 간주하고, 보편적 설계와는 별개로 분리하여 주장한다.

시각장애인의 이동권에 포함되는 여러 가지 사항들 중, 대중교통수단에의 접근성은 대표적인 접근권의 하나이며, 이는 흔히 이동권으로 표현된다.

시각장애인의 이동권을 논할 때, 가장 최신의 뉴스는 두 가지로 정리되는데 첫째가 바로 하이브리드 차량의 보편화와 함께 대두되고 있는 차량의 저소음문제이고, 둘째가 바로 시각장애인이 운전할 수 있는 차량에 관한 내용이다.

이들 가운데 오늘은 하이브리드 차량의 저소음과 관련한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해 보기로 한다.

차량의 소음은 지금까지 공해의 일종으로 여겨왔다. 그래서 많은 자동차 생산업체들이 되도록 조용히 달리는 자동차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해 왔고 고연비와 함께 저공해는 자동차 개발의 두 가지 화두였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와서 이러한 기준이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는데 그 시작은 미국이었다.

미국시각장애인연맹 (NFB)는 하이브리드 차량과 같이 저속으로 주행할 때, 전기엔진을 사용하여 소음이 거의 유발되지 않는 차량이 시각장애인이나 노인, 어린이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이러한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몇 가지 실험도 진행했다. 결국 보지 않고 차량의 움직임이나 근접 사실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하이브리드 차량의 경우 현저히 일반 휘발유 차량보다 떨어진다는 사실을 밝혀 냈다.

그리고 약 10여년간 국내법 제정을 위해 노력했고 최근 그 결실을 맺었다. 그 동안 이미 매릴랜드주를 포함한 몇몇 지방의회에서 관련 조례를 제정하기도 했지만 미국 전역에서 관련 규정을 적용할 수 있게 된 것.

이제 자동차 회사들은 일정 정도 소리를 내는 차량을 개발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즉, 기본적으로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엔진이 변화되면서 사라진 소음을 이번 미국 고속도로 안전관리국의 조치로 인해 소음을 유발시키는 장치를 추가로 부착해야 할 형편인 것이다.

이 뿐만 아니다. 유럽의회 역시 얼마전 미국 고속도로 안전관리국과 같은 내용의 규정을 통과시켰다.

시각장애인, 노인, 어린이 등의 보행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일정 수준 이하의 소음을 유발하는 차량에 소음유발장치를 부착하도록 의무화한 것. 이제 소리 안나는 차량을 만들던 기업들이 소리 안나는 차량에 소리내는 장치를 부착하는 일이 현실화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자동차 생산업체는 반가워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국내 언론사들도 이러한 외국의 모습을 그리 반가워하지 않는 것으로 사료된다.

파이넨셜 뉴스는 최근 기사에서 차량의 소음장치 부착이 그렇지 않아도 고가인 하이브리드 차량의 가격을 인상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나 유럽에서 시각장애인 등의 안전을 위해 이러한 조치를 의무화하고 있는 것은 그 만큼 사회가 장애인 등을 배려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가고 있다는 의미라고 해석된다.

미국에서 총기사고가 빈번하고 무고한 생명이 무분별한 총기사용으로 인해 희생되자 미국 오바마 행정부는 총기소유 및 사용에 대한 강력한 조치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많은 언론들이 이러한 오바마 행정부의 의지가 막대한 로비력을 가진 미국총기산업협회의 힘을 뛰어넘을 수 있을지 의문을 품었다.

그런 의문때문이었을까? 잊을만 하면 미국에서 총기사고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결국 언론이 총기사용을 규제하는 방향으로 갈 수 밖에 없는 여론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수 천 킬로미터 떨어진 미국에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지만 당장 보도되는 내용만 봐서는 오바마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을 조성해 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윤리적이고 모든 국민의 안전과 직결된 사안에 대해서는 경제권력이 국가권력을 이기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조용한 차에 대한 미국이나 유럽의 모습도 이와 유사하다. 결국 국민이 선출하는 지도자들이 믿을 곳은 경제권력이 아니라 국민인 샘이다.

우리나라 시각장애인들은 다른 어떤 나라에 비해 흰지팡이를 활용하는 독립보행능력이 뛰어나다. 우리나라의 이러한 환경은 그 어느 국가보다 조용한 차에 대한 규제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아직 하이브리드 차량이 많이 보급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로 계속 외면만 할 것이 아니라 향후 대량으로 보급될 때를 생각해서 미리 대책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유비무한이라는 말이 다시금 생각나는 오늘이다.

세계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시각장애인의 보행환경개선을 위해 하이브리드 차량에 소음기 부착을 논하고 있고 또 다른 지역 어느 곳에서는 흰지팡이가 보급되지 못해 독립보행을 꿈꾸기만 하는 지역도 있다.

이처럼 다양한 지구촌의 모습에서 우리는 앞을 향해 달리면서 뒤쳐진 동료들을 돌아보아야 한다.

오늘 우리의 투쟁이 내일 뒤쳐져 있는 동료들의 그것이 되고 우리는 또 그들에게 새로운 목표와 과제를 제시하기 위해 다시 우리 앞에 달려가는 동료들을 바라 본다.

이것이 세계 속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 장애인 당사자의 오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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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준 럼리스트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사무국장이자 아시아태평양 세계시각장애인연합회 부회장이다. 제3차 아태장애인 10년을 위한 전략 수립을 위한 기초자료 수집을 목적으로 유엔 에스캅에서도 근무한 경험이 있다. 세계 장애인계의 동향, 뉴스를 소개하며 시사점을 살펴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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