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잠원동에 사는 M씨는 복합통증증후군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극심한 통증으로 인하여 일상생활을 할 수 없어도 장애로 인정되지 않는다. 그런데 M씨는 통증과 더불어 뼈가 으스러지는 정형외과적 이상으로 몸을 제대로 지탱할 수가 없고, 몸에 힘을 줄 수가 없다. 그래서 이 것만 인정하여 겨우 장애인으로 판정받을 수가 있었다.

동사무소에서는 장애인 복지카드를 발급하면서 신한카드 겸용으로 하여야 한다고 말하였다. M씨는 그런 신용카드 외에 복지카드 기능만 있는 것으로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동사무소 담당자는 과거에는 그런 카드도 발급했는데, 최근에는 신용카드 겸용밖에 발급하지 않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했다. M씨는 신한카드 겸용 장애인 복지카드를 발급받게 되었다. 그리고 지하철을 무임으로 탈 수 있는 교통카드 겸용으로 발급을 받았다.

M씨는 운전을 할 수 없다. 몸에 힘을 줄 수가 없어 핸들을 잡을 수도 없고, 페달을 밟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출을 하면 전철을 타고 다녔다.

M씨는 요즘 수입이 없고 생활이 어려워 장애인카드와 겸용으로 된 신한카드를 이용하여 생필품을 구입하게 되었으나, 카드대금 결제를 하지 못하고 10일이 지났다. 당장 카드를 사용할 일도 없고 해서 곧 돈이 생기면 카드를 막아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M씨는 볼일이 생겨 전철을 타러 갔다. 그런데 개찰구에서 장애인복지카드를 검표대에 대자 “삐빅”소리를 내며 에러 표시가 떴다. ‘장애인 무임승차인데, 왜 에러가 나지?’ M씨는 재차 복지카드를 갖다 대었다. 역시 통과되지 않았다. 그래도 다시 한 번 더 대어 보았다. 그러자 뒤에서 줄을 서 있던 사람들이 화를 내면서 이상하게 쳐다보더니 “지금 사람들이 바쁘니 옆으로 비키라”고 하였다. 할 수 없이 옆으로 나와서 지하철 역사의 직원을 찾았다.

장애인 복지카드인데 왜 에라가 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직원은 개찰구 중 에러 확인이 가능한 기능이 있는 곳으로 M씨를 데리고 가서 복지카드를 달라고 하여 대어 보았다. 그러더니 직원이 큰 소리로 짜증스럽게 말했다.

“아저씨. 카드 연체자니까 전철을 못 타죠.”

전철을 타기 위해 줄을 서 있던 모든 사람들이 M씨를 주목하였다. M씨는 10일 연체된 카드가 생각났다. 시선이 집중되자 M씨는 얼굴이 몹시 화끈거림을 느꼈다. 온몸의 피가 모두 머리를 향해 달렸다. 이런 때 쥐구멍이 필요한 것 같았다. 잠시 충격이 지나자 화가 났다. 신한카드의 결제일을 넘겨 카드가 정지된 것과 장애인으로 무임승차를 하는 서비스를 주지 않는 것과 무슨 상관인가 싶었다.

보건복지부에 전화를 하여 장애인등록 담당자에게 물어 보았다. 그랬더니 복지카드는 신한은행 카드 겸용도 있지만, 장애인 복지카드 기능만 있는 것도 발급한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왜 동사무소 공무원은 카드겸용밖에 없다고 했을까? 신한카드에서 고객을 확보하기 위하여 거의 강제로 카드 회원이 되도록 공무원에게 청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복지카드만 발급하면 플라스틱 카드비용을 정부가 부담해야 하지만, 신한카드 겸용으로 만들면 카드제작 비용을 카드사가 부담하기 때문에 그 돈을 절약하려고 거짓말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마침 단순히 복지카드 기능만 있는 카드의 재료가 떨어졌을지도 모른다는 긍정적 생각도 해 보았지만, 그렇다고 동사무소 공무원이 거짓말을 한 것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신한카드사에서 연체로 인하여 카드 사용을 정지하면 되었지, 장애인 서비스를 막을 권리가 있는가 싶었다. 카드 대금을 독촉하는 한 방법으로 고의적으로 프로그램을 그렇게 만들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지하철 무임은 요금이 발생하지 않으므로 장애인 확인만 하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카드가 정지되면 카드의 모든 기능이 정지되어 장애인도 정지된다. 카드 기능이 정지된 동안에는 장애인도 아닌 것이다.

카드사가 무슨 권리로 장애인 자격을 정지시키는가. 무슨 특혜로 장애인이 카드가입을 해야 장애인 복지카드가 발급되고, 신상정보 공개 동의서는 말이 동의이지 동의하지 않으면 장애인 복지카드조차 발급되지 않도록 강제화시키고 있는가. 어떻게 국가의 장애인 수급권이 카드사에 의하여 정지될 수가 있는가.

장애인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워 장애인연금이나 기초생활보장 수급비를 정부에서 지급하는 것을 누군가가 압류하여 결국은 정부가 부채를 대신 갚아주는 꼴이 되고, 장애인은 그나마 당장 먹어야 하는 쥐꼬리 생활비가 무자비하게 압류될 수가 있다. 그 돈이 없으면 생활을 할 수가 없어 생리적 욕구마저 포기하고 죽어야 하므로 국가에서는 압류가 되지 않는 통장을 만들어 준다고 하는 마당에 카드 대금을 조금 연체하였다고, 신용불량자도 아닌데 즉시 장애인 자격을 일개 카드사가 정지시키고, 이 것을 이용하여 빨리 돈을 갚도록 압박하는가 싶었고, 너무나 졸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약자들의 약점을 쥐고 악랄하게 해야 돈을 버는 것이 기업인가 싶었다.

그리고 지하철 직원이 대중 앞에서 ‘당신은 카드 연체자’라는 것을 그렇게 방송을 해야 했는가 싶었다. 그렇게 망신을 받을 만큼 M씨가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닌데, 장애인이며, 카드 연체자라는 것을 공개적으로 밝히며 욕보다 심한 모멸감과 수치심을 당하게 된 것이 억울했다.

정말 그 때는 눈앞이 캄캄하고 지구가 빙글빙글 돌았다. 내 자신이든, 남이든, 물건이든 무엇인가 하나는 망가뜨려버려야 한다는 극단적인 파괴적 생각이 들면서 온몸에 피가 들끓었다.

학교에서는 영어를 많이 가르친다. 고학력일수록 영어를 잘 할 것이다. 가방끈이 짧으면 짧을수록 영어가 약하다. 그래서 차별받고 못 배운 장애인과 같은 사람들은 영문을 모른다고 한다.

정말 M씨는 어리둥절하고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교통카드와 복지카드 겸용으로 발급하여 장애인에게 카드 두 장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도록 제도를 개선했다고 복지부는 보도자료를 내고 홍보를 하였는데, 바로 카드사의 이런 꼼수에 정부도 당한 것인가. 아니면 공모자인가.

정부는 본인이 원할 경우 겸용으로 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으므로 본인의 선택이지 정부의 책임은 없단다.

백화점에서 여러 가지 물건을 팔고 있는데 그 중 하나를 샀더니 하자가 있어 백화점에 항의를 했더니 선택은 당신이 한 것이다. 다른 물건도 있지 않았느냐고 오히려 짜증을 내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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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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