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만 해도 장애인이 대중교통인 지하철을 이용하기란 쉽지 않았다. 벼르고 별러서 큰 맘 먹고 목숨을 담보로 이용해야 했다던 시절. 썩은동아줄 같은 수동휠체어용 리프트를 이용해야 하고, 승강장에 도착하면 승강장과 전동차 단차 때문에 휠체어 앞바퀴가 단차중간에 빠져 목숨이 위태로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주변의 도움으로 전동차에 올라탔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전동차에 올라타면서 일제히 쏠리는 타인의 호기심 어린 시선과 미간을 찌푸리며 신경질적인 시선, 혀를 차며 성치 않은 몸으로 왜 힘들게 돌아다녀 등 동정어리는 시선까지.

지하철에서 무수히 많은 시선들과 마주하고 그 시선들을 때론 피하고 싶었고, 때론 오기로 나를 향해 응시하는 시선에 정면으로 승부해야 했다

출발역이나 목적지 역에서 리프트를 이용하다 고장이라도 나면 중간에 꼼짝없이 얼음처럼 굳어버릴때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출발도 하기 전에 리프트 고장인 역사에선 역무원들에게 휠체어를 들어 올리라고 했던 기억 적지 않았다.

그럴 때 마다 난감해 하는 역무원 표정을 보면서 “거봐, 왜 엘리베이터를 안 만들어서 그 고생을 하는 거야” 하고 속으로 고소해 했던적도 있었다.

지금도 난 매일 리프트를 이용한다. 자주 이용하는 6호선 삼각지역은 엘리베이터가 없기 때문에 하루에 두 번씩 왕복 2번은 꼭 리프트를 이용한다. 하지만 몇 년 전과 비교하자면 지하철 외부환경은 많이 달라졌다.

웬만한 역엔 엘리베이터가 설치 되 있고 단차가 높은 역은 안전발판 서비스를 시행하기도 한다. 또한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는 역도 많다.

오래전 이웃나라 일본 지하철에서 시행하는 원스톱 서비스를 이용할 때 놀라움을 넘어 부러우기까지 했었다. 그러나 이젠 우리나라에서도 몇 년 전부터 안전발판 서비스와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2012년과 2011년 두해 동안 지하철 사당역에서 사진전시회를 열었다. 장애인 당사자들이 찍은 사진을 역대합실을 이용하는 시민들에게 선보이며 장애인식개선을 꽤하고 있었다.

전시회 기간 동안 서울 메트로에서 명예역장 체험 제안이 왔다. 메트로 직원의 말로는 명예역장 체험은 사회적으로 저명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명성을 높이기 위해 메트로측에 먼저 제안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은 메트로 쪽에서 먼저 제안을 했다고 한다.

늘 지하철을 이용하는 나로서는 해볼 만한 체험이라고 생각해서 제안을 수락했다. 최근 2인 1조로 3개 역사에서 두 시간 가량 명예역장 활동을 수행했다.

먼저 명예역장이라는 노란 띠를 두르고 위촉장까지 받았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활동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첫번째로 역무실에 설치된 모니터 화면부터 살펴봤다. 역무실 안엔 수많은 모니터가 설치돼 역사 곳곳의 안전을 살피고 있다. 승강장을 볼 수 있는 모니터부터 대합실을 볼 수 있는 모니터 등 첩보영화 요원들이 브리핑 할 때처럼 역사 구석구석을 볼 수 있었다.

또한 역사 내 비상벨이 울리면 화면은 비상벨이 울리는 쪽에 자동으로 큰 화면으로 변환되어 역무원들이 상황을 쉽게 알 수 있고, 빠르게 비상 상황을 대처할 수 있게 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휠체어나 유모차 등이 출입 할 수 있는 게이트에 벨이 울리면 비상게이트를 비치고 있던 화면 역시 모니터 가득 큰 화면으로 변환되어 역사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을 손금 보듯 훤히 볼 수 있다.

다음은 대합실에 설치된 각종 기계들을 살펴봤다. 1회용 지하철 카드와 무인승차 할 수 있는 무임승차권, 자동 교통카드 충전기 등 각종 자동화 기계는 인력을 줄이고 역무원들이 지하철을 이용하는 승객의 안전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게 한다.

이어 승강장을 살펴봤다. 승강장에 설치된 비상전화 사용방법을 사당역장이 꼼꼼히 일러준다.

매번 지하철을 이용하면서 무심히 지났을 뿐 비상전화가 있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비상전화가 울리면 상황실은 비상상태에 돌입하고 모든 역무원은 벨이 울린 곳으로 빠르게 움직여 비상사태를 해결한다.

이러한 비상벨은 대구 지하철 방화사건 이후 생겨난 것이라고 한다.

얼마 전 서울 지하철 6호선 합정역에서 연신내역 구간을 운행하던 열차에 폭발물을 설치했다는 협박 전화로 6호선 전 차량이 운행을 멈춘 적이 있다. 도시철도공사와 경찰은 전 차량을 세우고 수색작업에 나섰지만 폭발물이 발견되지 않아 11시25분에 열차 운행을 재개했다.

당시 나도 6호선을 이용하려 승강장에 있었는데 순간 아찔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안전에 가장 취약한 사람이 장애인라는 것은 너무도 자명했기 때문이다.

이번 명예역장 체험은 늘 지하철을 이용하는 승객 입장에서 지하철이 어떻게 운행되고 역무실은 승객의 안전을 위해 어떤 업무와 역할로 안전한 지하철 문화를 만들어 가는지 알게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시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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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윤선 칼럼니스트
여행은 자신의 삶을 일시적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천차만별이지만 일상을 벗어나 여행이 주는 해방감은 평등해야 한다. 물리적 환경에 접근성을 높이고 인식의 장벽을 걷어내며 꼼꼼하고 정확한 정보가 제공되어야 한다. 돈 쓰며 차별받지 않는 여행, 소비자로서 존중받는 여행은 끊어진 여행 사슬을 잇는 모두를 위한 관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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