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생머리였다. 얼굴은 계란형에 약간 통통한 입술, 키는 그리 크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의 웃음소리는 천상에서 내려온 어느 천사의 목소리보다도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어릴 적에 소아마비에 걸린 나는 집에서만 생활했다. 가정형편상 학교에 갈 수 없었던 나에게 이성 친구, 아니 타인을 만난다는 것은 그 자체가 부러움이었다.
그렇게 17살까지 집에만 있었다.
나보다 7살 많았던 누나가 대학을 가고 누나의 친구들이 집에 놀러오면 누나 방에서 누나친구를 구경하는 게 좋았다. 그런 누나가 성당엘 가는 모습을 보고 내가 성당에 끌렸던 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17세가 되던 때 난 수동휠체어에 의지해서 처음 세상을 접하게 된다.
성당의 장애인 모임을 나가면서 나보다 육체적 장애가 심한 사람을 만났을 때의 심리적 충격은 몇 십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지금 내가 장애인 쪽 일을 하는 것도 어쩌면 그 때 자기도 힘든 장애를 가지고 있으면서 자기보다 힘든 장애인에게 식사를 먹여 주는 모습이 한 장의 사진으로 내 머릿속에 남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녀, J는 성당에서 교리수업을 받고 미사가 끝난 후 청소년 모임을 들어갔을 때 만난 나의 첫 번째 사랑(?)이자 짝사랑이었던 소녀다.
모임은 주로 토요일 저녁미사 전후에 있었다.
저녁 어둠이 익숙해지려고 할 때, 흔들리는 형광등에 따라 움직이는 그림자가 처음 그 자리에 참석한 나의 마음을 불안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그 때 웃음소리와 함께 친구들과 등장한 그녀는 긴 생머리를 뒤로 제치면서 내 바로 앞에 등을 보이면서 앉았다. 목욕을 끝내고 나온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은은한 비누 냄새를 모임이 끝날 때까지 맞으면서 난 그때 이성에게서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소녀가 다가와 손을 내밀며 “나 J야. 우리 친구하자!” 라고 했다.
순간 나는 세상에 그렇게 아름답고 그렇게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집에만 있던 나에게는…….
그렇게 난 이성을 만났고 첫 번째 사랑(?), 짝사랑을 만났고, 세상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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