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화장실이 규격에 맞게 설치되어 있더라도 막상 화장실 문을 열었을때는 사용하지 못하게 물이 잠겨있거나 사진처럼 청소도구를 보관하는 경우를 허다하게 만날 수 있다. ⓒ김대식

내 여행의 시작은 내 즐거움보다는 일이었다. 어릴 때부터 수십 번도 넘게 올라 발아래로 내려다 보던 고향 풍경을 오늘 나와 함께한 그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다. 몸이 불편했던 그들과 함께 했던 그 여행, 바로 그 여행에서 나는 비로소 여행의 의미를, 그 절실함을 조금이나마 깨닫게 되었다.

여행 전날까지도 설왕설래하며 문학기행에 참가의사를 밝히지 않던 장애인 회원 한 분은 여행 당일 아침에 비로소 참여 의사를 밝혀왔다. 그는 100kg이 넘는 거구에 하지마비를 갖고 있는 복지관 회원으로 문학동아리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1박 2일의 문학기행이 있었지만 그는 누군가에게 짐이 될 거라는 생각으로 여행 참여를 보류하고 있었다. 회원들과 나는 끊임없이 설득하였고 결국 그가 본인의 고집을 꺾기에 이른 것이다.

다수의 지체장애인이 참여했던 그 여행은 지금 생각해보면 다소 무모함이 있었던 여행이었다. 리프트차량이 많이 보급되지 않았던 그 때는 나들이 등 이런 류의 여행프로그램에서는 마땅히 업거나 앉은 채로 차량을 오르내리는 일이 일상적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회원의 경우에는 좀 더 특별했다. 나름 힘을 좀 쓴다는 나(40대인 나는 복지관 새해 시무식에서도 팔씨름 대회 1등이었다)였는데 막상 그를 업었을 때의 아찔함은 실로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도저히 계단을 오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지난 일주일동안 그를 설득하던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지만 지금 와서 포기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결국 버스 입구에 설치된 바를 잡고 기어서 계단 한 칸 한 칸을 올라 어렵게 자리에 앉힐 수 있었다. 1박 2일 동안 그 과정을 수없이 반복했다. 그러나 정작 여행의 모든 과정상 버스에 오르는 일 정도는 시작한 불과하다는 것은 정작 나는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여행 이후에 문학동아리 수업시간에 ‘3년만의 여행’이라는 자신의 여행기를 감격스럽게 읽어 나갔다. 아마도 이 때 난 여행의 가치를 깨닫게 되었고, 나아가 장애인과 여행이라는 두 단어를 조합해보고자 노력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2013년 에이블뉴스 칼럼리스트 발표가 있던 날, 조심스럽게 홈페이지를 열어 선정자 명단에서 내 이름을 찾았다. 합격에 대한 사전 통보가 전혀 없었던 터라 저녁까지 연락이 없어 내심 포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알고보니 공지 하루 전에 이미 발표는 나 있었다. “이렇게 까칠할 수가?” 혼자 웃었다. 그리고 여행작가를 꿈꾸는 나에게 나름의 ‘데뷔’라는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다.

위에서도 언급하였듯이 나는 장애인과의 여행기회가 많았다. 그 여행에서 사진을 찍는 일이 많아졌고, 한 동안 사진촬영에 깊이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기 위한 여행 또한 많아졌다. 그 여행을 기록하는 일도 즐거웠다. 그리고 여행작가로의 데뷔를 준비하는 나에게 지난 13년간 사회복지 현장에서의 여행들은 또 다른 정보전달이라는 의무감을 갖게 하곤 한다.

모든 일상에서 소외받는 그들, 바로 장애인들에게 우선 여행의 기회를 다양하게 제공하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주 5일제가 정착되고, 힐링이다 웰빙이다 하면서 여행에 대한 전국민의 관심은 날로 높아지는 요즘이지만 정작 여행지에서 만나는 장애인들은 그리 많지 않다.

막상 여행지에서 장애인을 만난다 해도 장애인들은 제한적인 동선과 편의시설의 한계에 더 큰 좌절감을 맛보기 일쑤일 것이다. 여행지마다 설치된 경사로며 대여용으로 비치된 휠체어들이 여행에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해답은 지금 당장 가장 가까운 여행지로 나서보면 금방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끊어진 다리처럼 떡하니 가로 막고 있는 턱 앞에서의 절망감, 비치된 휠체어로는 화장실과 매표소만을 오가라는 것인지?

그 불편한 진실에 대한 경종 내지는 장애가 있더라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여행지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2013년 한 해 동안 내가 칼럼을 통해 할 일이 아닌가 싶다. 더불어 올 한 해 동안 장애아동들과 함께하는 여행을 통해 여행지에서 그들의 일상도 스케치 해볼 계획이다. 부족하겠지만 많은 관심과 응원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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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식 칼럼리스트
사회복지를 시작하며 사진으로 기록하고 싶은 순간들이 많아지고, 사진을 찍다보니 돌아다닐 일이 많아 여행이 좋아졌다. 하지만 정작 여행지에선 장애인들을 볼 수 없는 현실이 아쉬웠다. 누구나 함께 걸을 수 있는 여행길을 만들고 싶은 여행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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