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아는 후배와 오랜만에 연락이 닿았다. 농인 여자친구를 만났던 청인 후배였다. 그 후배는 농인 여자친구를 만난 것을 계기로 진로를 '청능사'로 결정했다면서 궁금한 것들을 물어왔다. 참고로 이 후배는 여자친구와 성격차이로 헤어진 지 오래다.

나는 질문에 답하면서 여러 가지 의미로 많이 놀랐다.

후배가 진로를 청능사로 정했다는 의외의 결정에 놀랐고, 농인 여자친구를 2년 가까이 사귀었으면서 정작 청각장애에 대해 신경을 잘 쓰지 않았었다는 것에 다시 한번 놀랐다.

"보청기를 낀다고 해서 전부 다 말을 하고 들을 줄 아는 것은 아니야."

"어? 그래?? 그럼?"

"보청기를 끼고 소리를 듣게 되면, 음 예를 들어보자. 넌 영어를 들을 때 소리는 들리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잖아?"

"그렇지. 못 알아듣지."

"농인들이 한국어를 들을 때 그런 식이야. 소리는 들리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거야. 전 여친 생각해봐. 가끔 가다 못알아듣는 단어 있었잖아. 그럼 글로 써줬을 거고."

"아~!"

혹은 이런 이야기도 오고갔다.

"수화는 세계공용어야?"

"야, 한국어가 세계공용어니? 수화도 한국어랑 똑같이 나라마다 달라."

"아, 그러네."

그 외에도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 날, 나는 생각에 잠겼다. 농인을 만나는 비장애인 입장에서 성격을 보고 만나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 외에 청각장애의 어떤 부분을 알고 있는 걸까? 그냥 자기가 만나는 농인에게만 맞추고 그 외에는 농인을 만날 일이 없으니 신경을 안쓰는걸까? 나름대로 인터넷으로 청각장애에 대해 알아봤을텐데 어떤 정보를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고 있을까?

커플곰돌이 핸드폰 액세서리. ⓒ소민지

그 날 바로 남자친구에게 물어보았다. 나를 만나면서 청각장애에 대해 알아볼 생각을 안했냐고 했더니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한다. 그저 청각장애가 있어도 서로 돕고 지내면 된다고 생각했고, 사귀면서 청각장애에 대해 알아볼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고, 인터넷 검색은 아예 안해봤단다.

의외였다. 내 남자친구가 후배 못지않게 청각장애에 대해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는 것에.

나를 만나면서 어떤 점이 불편했었는지 질문을 바꾸어 보았다. 그러자 남자친구 왈.

"처음엔 불편했는데 지금은 괜찮아."

옛날에는 전화통화를 못하고 문자로만 연락해야 해서 연락이 안될 때는 많이 답답했지만 지금은 SNS로 실시간 쌍방향 소통이 가능해서 불편하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서 한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영상통화 쓰면 되잖아. 그 땐 왜 영상 안했어?"

"요금이 비싸."

연애와 현실은 어느정도 타협을 해야 하나보다.

그 외에 불편한 점은 없는지 물어봤더니 함께 길을 걸어갈 때 차가 지나가는데 경적을 울려도 잘 모르니 신경을 좀 더 쓴다는 것 외에는 없다고 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내가 가진 청각장애는 나의 일부이기 때문에 '전화를 못하는데 어떻게 하지? 대화가 잘 안되면 어떻게 하지?'등의 고민은 누구를 만나든 항상 똑같을 수밖에 없다. 나는 그럴 바엔 정말 좋은 남자친구를 만나서 연애 과정에서 내가 가진 청각장애로 인해 생기는 일은 남자친구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는 마음가짐을 갖고 있다.

가끔 이런 마음가짐을 가지는 게 못된 심보가 아닐까 생각할 때도 있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다. 누구를 만나든 나중에 내가 남자친구네 집안에 인사를 드리러 갈 때 "저는 청각장애가 있어요~"하는 과정에서 생길지 모르는 여러 가지 일들은 남자친구가 전적으로 풀어나가야 할 숙제지 내가 풀어야 할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후배와의 일을 계기로 나는 주변 사람들이 청각장애에 대해 좀 더 깊이 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조금 바꿔보기로 했다. 만약에 대화하다가 소통이 안되는 부분이 있을 때 수화나 필담 등 여러가지 방법으로 보완하는 실천력을 갖고 있다면 청각장애에 대해 깊이 몰라도 된다는 생각으로.

청각장애에 대해 하나도 모르면서 나와 대화를 하기 위해서 온갖 필담과 핸드폰 문자, 수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했던 남자친구의 노력이 지금의 우리를 있게 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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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민지 칼럼리스트
양천구수화통역센터 청각장애인통역사로 근무하고 있다. 대학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벗어나 사회에 첫 발을 내딛은 지 채 1년도 되지 않은 새내기 사회인이다. 청각장애인으로 세상을 살아가면서 청각장애인 특유의 문화 및 사회, 그리고 수화에 대해 풀어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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