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태야! 평평한 바위에 앉거라. 바로 앞이 마산 앞바다다.”

한국산악회 경남지부 최재일 지부장님이 정상에서 바라본 마산시를 맏형처럼 자상하게 설명해주셨다.

“형님! 물 깨끗해요?”

“예전에 비해 많이 좋아졌다.”

깊어가는 늦가을, 한국산악회 경남지부에서는 우리 전북지부를 초청해 의미 있는 합동산행을 가졌다. 60여명의 회원들로 구성된 이번 산행은 마지막 늦가을의 정취를 만끽할 터였다.

지난 1월 발목까지 푹푹 빠지며 지리산 천왕봉을 같이 올랐던 함안의 뚝심 좋은 멋쟁이 사나이 안병철과 중학교에서 교편생활을 하는 정재은 누님이 안부를 건네 왔다.

“갱태 행님! 병철이요, 인간극장 잘 봤어요. 선인장가시를 빼는 장면이 나올 때 저 울었어요. 힘 많이 드셨지요?”

“고마워, 병철이 동생.”

“경태씨! 기념사진 찍게 이리와.”

“예, 재은이 누나.”

지난 2월 안나푸르나에서 만났던 특수교사 정애림 선생도 내손을 꼬오옥 잡아주며 인사를 했다. 내 형제처럼 반갑게 맞아주는 게 꼭 형제 집에 온 것 마냥 포근하고 정겨웠다.

“관장님, 저 애림이에요. 참 대단하세요.”

“애림 선생! 잘있었지?”

모두들 인심 많고 정이 넘쳤다.

우리들은 처음부터 가파른 바위구간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관장님, 50센티미터 쑥요.”

“오케이! 좌우로 절벽인가?”

“왼쪽이 경사졌고 오른쪽은 나무숲이에요.”

“무슨 나무야?”

“참나무 같아요.”

나는 서재호 사무국장의 안내를 받으며 산을 올랐다. 그랜드캐년 울트라 271 킬로를 완주한 후 처음으로 하는 산행이었다.

“경태씨, 힘들면 말해?”

“예, 누나.”

“봄엔 온 산이 진달래꽃으로 붉게 물드는 곳이야. 바로 뒷 쪽이 마산시고.”

정재은 누님도 내 옆에서 어머니마냥 인자하고 평화로운 목소리로 주변 풍광을 설명해주셨다.

“경태씨, 아~해.”

“네.”

재은 누님이 쫄깃쫄깃한 홍삼젤리와 감미로운 쵸코릿을 입에 넣어 준다. 나는 어미새가 물고 온 먹잇감을 받아먹는 새끼새 마냥 냉큼냉큼 받아먹었다.

“갱태야,!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거라.”

“아, 좋다. 형님 감사!”

“갱태야, 손 내밀어 봐라. 따끈따끈한 홍삼차다”

나는 재일이 형님이 건네준 정력에 좋은 홍삼차 한 컵도 단숨에 마셨다.

“관장님! 계속 가파른 바위길이에요. 오른쪽은 절벽이니 조심하시구요.”

“우와! 무학산도 악산이네.”

마산시 뒷편을 병풍처럼 막아선 무학산은 산의 형상이 마치 학이 춤추듯 날개를 펴고 날아가는 자세와 흡사해 무학산이라 불린다 했다. 무학산의 백미는 학의 머리에 해당되는 학봉으로 그 암봉미와 학봉 산역에 피는 진달래 군락이 어우러져 봄에는 절경을 연출한다고 한다.

“경태씨! 좌우로 진달래군락지야. 벌써 꽃망울이 있네.”

“아니, 벌써요? 어디 한 번 만져 볼께요.”

나는 장갑을 벗고 어른 키만큼 자란 진달래나무를 잡고 꽃망울을 만져보았다. 아직 새순이 틀려면 멀어 보였지만 풋새악시의 덜 여문 젖꼭지마냥 조그만 꽃망울이 단단하게 만져졌다.

그때 문봉현 전부산지부장님이 숫처녀 젖가슴마냥 만지면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부드러운 감촉의 홍시감을 내손에 올려주었다.

“송 관장, 홍시감 먹어, 피로회복에 최고야. 하하하.”

문 지부장님이 건네준 홍시감은 아주 달고 맛있었다.

우리는 한발 한발 앞을 향해 나아갔다. 내 옆에선 재일이 형님이 전생에 지리 선생님이라도 되었던 양 아주 자상하고 쉽게 내 오른손을 잡고 일일이 방향과 위치를 가리키며 설명해 주었다.

“갱태야! 마산시가 한눈에 펼쳐진다. 저 산 너머가 진해다.”

“형님, 바다도 보여요?”

“그럼 바로 앞이 남해바다고 바다 저편이 마산시내야.”

한참 오르다보니 갑자기 발밑에서 뽀드득 뽀드득 서릿발 밟히는 소리가 났다.

“서 국장, 눈 쌓였나 봐, 뽀드득 뽀드득 밟히네?”

“네 관장님, 서릿발이에요.”

나는 올 들어 처음으로 뽀드득뽀드득 서릿발 밟은 경쾌한 소리를 들으며 정상으로 향했다. 땀을 훔치며 한발 한발 오르다보니 어느새 정상 부근이었다.

“관장님, 잔디밭에 앉으세요. 여기서 점심식사 한 대요.”

“아니, 벌써 정상에 도착했어?”

“예, 바로 뒷쪽이 정상이에요.”

나는 몸살감기로 끙 끙앓은 아내와 만삭이 된 며느리가 새벽잠까지 물리며 정성들여 장만해준 소고기볶음과 김치볶음 그리고 초란을 회원들과 나눠 먹었다.

“갱태야! 아 해라, 돼지 삶은 것이다.”

재일이 형님이 내 입에 고기 한 점을 넣어주었다.

“우와, 꿀맛이네요.”

“이건 내가 담근 약초김치다. 묵어 봐라.”

“와, 향 좋다. 젬피향 같아요.”

“맞다.”

어제 재일이 형님이 돼지고기와 문어를 손수 삶고 김치를 담았다고 했다. 감칠맛과 단백한 맛 그리고 씹으면 씹을수록 싸한 향이 입안에 가득차고 매콤달콤한 맛과 하모니를 이루어 아이스크림처럼 시원한 맛을 내는 김치와 약초김치 맛 그리고 기름기가 쫙 빠진 쫄깃쫄깃한 돼지수육은 영원히 잊지 못할 진주성찬이었다.

하늘도 우리의 풍성한 인심에 감복했는지 꽃처녀의 허벅속살처럼 허연 우유빛의 눈부신 햇살을 쨍쨍 내리쬐어 주었다. 마산특주인 막걸리와 회원이 가져온 와인에 곁들인 점심은 진시황제도 부럽지 않을 오찬이었다.

식사를 마친 후 우리는 정상비 앞으로 갔다.

“관장님, 정상비에요.”

“정상비에 뭐라고 씌여 있어?”

“예, 전면은 무학산, 후면은 한국산악회 경남지부라고 새겨져 있어요.”

2톤이 넘는 바위에 글자를 새겨 세운 육중한 정상비는 재일이 형님이 한국산악회와 함께 조성한 것이라고 했다. 나는 재일이 형님의 깊은 뜻에 감탄하며 기념촬영을 했다. 그리고 최근에 사용법을 익힌 스마트폰의 카카오스토리에 사진을 올렸다.

하산구간은 최병선 전 지부장이 안내를 맡아 주었다.

“갱태야, 하산길이 험하다. 조심하고 오른쪽은 바다를 끼고 간다.”

최 지부장은 위험한 순간마다 내게 일일이 설명해 주었다.

“경태야, 가파른 바위다. 넘어지면 아파. 조심해.”

“어이, 무서워라. 발이 덜덜 떨려 못 내려가겠다. 헤헤헤.”

나는 그의 친절이 고마워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누군가 내게 커피를 한잔 건네온다.

“자, 따끈한 커피요. 한 잔씩 하고 가세요.”

나는 경남지부에서 준비한 둘이 마시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맛과 향에 잠시 취해 보았다.

짧은 휴식을 끝내고 다시 하산길에 올랐다. 양탄자처럼 푹신한 길이 내 앞에 펼쳐졌다.

“병선아, 길 좋다. 뛰자?”

“좋아.

우리는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사랑하는 여인네의 부드러운 숨결마냥 살랑이는 바다바람을 맞으며 뛰어서 내려갔다.

“갱태야, 다친다.

“괜찮심더, 그랜드캐년도 달렸는데요. 헤헤헤.”

나는 마냥 달리고만 싶었다. 나는 더욱더 신나게 콧노래를 부르며 달려 내려갔다.

“갱태야, 쉬어가자.”

“예.”

선두그룹에서 안내를 맡아주던 재일이 형님이 나를 바위에 앉히고 홍삼차를 건네주셨다.

“자, 홍삼차다. 마셔라.”

“와, 힘이 팍팍 넘쳐요. 정력 넘치면 형님이 책임지슈. 하하하.”

“에라, 갱태도 못 따라오는 산꾼이 무슨 산을 탄다고.”

“왜요? 제가 꼴찌 아니에요?”

“니 뒤로 많다.”

하산코스가 험해지기 시작했다.

“갱태야, 저 앞에 학봉이 있다. 넘어가야 한다.”

“네? 또 올라가야 돼요?”

“그럼.”

“아이구, 죽었구나. 계속 하산 코스인줄 알고 체력을 몽땅 소진시켰는데...아이구 죽었구나.”

고개 하나를 더 넘어야 한다는 재일이 형님의 말에 눈앞이 노래졌다.

그러나 여기서 주저앉을 수는 없지 않은가. 나는 정신을 가다듬어 가파른 바위 구간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다행히 날씨와 회원들의 응원과 안내를 맡은 병선친구의 희생과 배려로 학봉을 무사히 오를 수 있었다.

“갱태야, 여기가 학 머리다.”

“그럼 여기서 바라본 경치는 절경이겠어요.”

“그래, 정상에 서면 가장 먼저 남해바다와 돝섬, 진해의 장복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봄에 오면 붉은색 진달래와 대비되어 펼쳐지는 푸른 남해바다의 정취는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다.”

“내년 봄에 꼭 와봐야겠어요. 하하하.”

학봉에 서서 짧은 담소를 나눈 후 우리는 선두그룹을 만들어 다시 가파른 바위 구간을 조심조심 기어서 내려왔다. 항상 산에 오르면 느끼는 것이지만 낮은 산이라고 해서 얕잡아 보면 큰 오산이다.

실은 무학산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나 히말라야 고봉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다. 단지 높고 낮음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하찮은 일도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돌다리도 두들기며 건너라는 속담이 있듯이 꼼꼼 살피며 가는 삶의 지혜가 필요하다. 그래야 큰 실수 없이 목표를 이루리라.

“경태야, 다 왔다. 수고 많았어.”

“병선아, 정말 고생했다.”

우리는 막판에 무릎까지 쌓인 낙엽을 밟으며 하루의 대미를 갈무리했다.

이어 펼쳐진 횟집에서의 여흥도 깊어가는 늦가을의 추억을 더욱더 아련한 추억 속으로 그리고 영원히 잊지 못할 깊은 서랍장으로 들어가게 했다.

잘 준비되고 잘 설계되어 회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준 산행이었다. 이번 산행은 마치 한편의 드라마를 감상하는 듯 했다.

전주를 향하는 발걸음이 지리산자락에 걸터앉아 오가기 싫어하는 한 무리의 뭉게구름 같아 보였다.

재일이 형님, 경남지부회원님들 그리고 함께한 전북지부 회원님들 님이 계셨기에 참 행복했습니다. 한국산악회원으로서 대한민국 국민임이 참 자랑스러웠습니다.

나보다 너를 그리고 우리 님들을 위해 헌신과 봉사와 배려와 나눔을 몸소 실천해주신 님이시여!

신경세포가 다하는 날까지 영원히 간직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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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태씨는 군복무중이던 22살 때 수류탄 폭발사고로 두 눈을 실명하고 1급 시각장애인이 됐다. 꾸준히 장애인계에서 활동해왔으며 현재 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장이자 전북 시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 4대 극한 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마라토너이자 '삼 일만 눈을 뜰 수 있다면'이라는 시집을 낸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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