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두 가지 이유로 추측되는데 하나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이 이 곳 저 곳 데리고 다니면서 구경시켜준 것이 몸에 배어서, 또 하나는 자유롭지 못한 내 상황에 대한 보상심리라고 생각된다.

어떤 이유에서건 간에 여행은 참 좋다. 어렸을 때는 텐트치고 야영도 하고 펜션에서 놀고 그랬었는데 커서는 부모님도 불편해 하시고 해서 숙박하는 여행은 거의 가지 못했다. 그래도 당일치기 여행이나 근처 교외로 떠나는 드라이브는 자주 가는 편이다.

어렸을 때에 비해서는 그래도 장애인 편의시설이 좀 나아진 편이라 예전에 비해 돌아다니기는 많이 좋아진 편이라고 할 수 있다.(여전히 불완전하지만)

장애인 화장실이 갖춰진 곳도 비교적 많아졌고 바닷가나 호수가 유명한 지역에서는 나무로 경사로를 깔아놓아서 꽤 가까이 물가로 구경 가기도 편해졌다. (요새 나무경사로 깔기가 유행인지 의외로 많은 유원지와 국립공원에 있다)

하지만 여전히 휠체어가 다니기에 우리나라 여행지는 장벽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해변은 모래에 바퀴가 빠져서 들어갈 수가 없고 이름난 여행지들은 거의가 산이라 울퉁불퉁한 산책로로 산언저리만 맴돌다 와야 한다.

그렇게 다니다보면 엉덩이가 배기기 일쑤이고. 옛 유적지나 사찰과 같은 건축물들의 경우 경사로가 없는 경우가 많아 대문만 쳐다보다 오는 경우도 많다. 반쪽짜리 여행이 되는 셈이다.

그래도 내가 여행을 다니는 것은, 다닐 수 있는 것은 그곳에서 만나는 소중한 인연들 때문이다. 한 번 스쳐가는 인연일지라도, 이름 하나, 얼굴 하나 기억 못 하는 인연일 지라도 소중하고 고마운 인연들인 것은 마찬가지이다.

산 길이라던가 계단이 있는 곳에 가면 부모님과 동생이 3인 1조가 되어 들어 올리고는 한다. 그

런데 가족의 힘으로도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경우도 생긴다. 계단이 적어도 20개 이상일 경우라던가. 보통은 그냥 포기하고 되돌아간다. 열에 여덟 혹은 아홉이 그런 경우다.

열에 한 둘은 지나가던 관광객들이 도와준다. 먼저 부탁하지 않아도 다가와서는 도와주겠다고 내 휠체어를 들어다준다.

지난 봄, 우리 가족은 통영을 다녀왔다. 통영 시내를 열심히 돌아다니다가 바닷가 마을이니 남해바다 제대로 구경해 볼 마음으로 작은 유람선을 탔다. 유람선은 여객선 터미널을 떠나 이순신 장군의 유적지가 있는 섬에 머문 후 다시 돌아오는 코스였다.

배를 타고 섬에 도착하는 것 까지는 좋았다. (사실 배를 타는 과정이 쉬운 건 아니었다) 작은 섬에 잘 꾸며진 산책로를 따라 올라가보니 이순신 장군의 유적지가 나타났다.

그런데 그곳까지 올라가는데 계단이 적어도 50개는 넘어보였다. 높고도 가파른 계단, 그 유적지 빼고는 딱히 볼 것도 없는 섬까지 어렵게 배타고 왔는데 왠지 안 올라가면 억울할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올라가기에는 무리여서 그냥 돌아가려고 했다.

그 때, 같은 배를 타고 온 관광객들이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처음에는 정중히 사양했지만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가는 건 섭섭하지 않겠냐며 흔쾌히 휠체어를 들어다 주셨다. 덕분에 나는 멋진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세상은 여전히 장애인에게 불편하고 불친절하다. 그래도 어딘가에는 좋은 인연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여행을 사랑하고, 또 기대한다. 멋진 풍경을 그리고 소중한 인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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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한때 시인을 꿈꿨으나 재능이 없다는 것을 깨달음과 더불어 작가는 엉덩이가 무거워야한다는 이야기에 겁먹고 문학인의 길을 포기. 현재 원광디지털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편입하여 예비사회복지사의 길과 자립생활의 길을 모색하고 있는 대한민국 평범한 20대 장애여성. 바퀴 위에 올라 앉아 내려다보고 올려다본 세상이야기를 펼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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