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일곱 시 경. 갠지스 강이 있는 바라나시 정션역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화장실부터 해결해야 했다. 여행객이 많아서 그런지 역사 안에 유료 화장실이 있다. 이용료는 5루피. 급하게 화장실을 찾아 들어갔다. 그런데 유료 화장실이라고 해서 들어갔는데 양변기가 아니다. 이를 어째, 난감했다. 일행의 도움으로 어찌어찌 해결했다.

볼일을 마치고 대합실로 왔다. 대합실은 소음과 먼지로 눈을 뜰 수가 없을 정도였다. 먼지 때문에 마스크를 착용해야 했고, 대합실 안 풍경은 다채롭다.

많은 사람들이 맨 바닥에서 잠을 자고 있거나 쪼그리고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그 모습이 흡사 전쟁 중 피난민의 행렬을 연상케 한다.

그리고 대합실 안 사람들 대부분은 현지 남자들이다. 남자들은 터번을 쓴 사람이 많다. 흰 천을 머리에 돌돌 말아 머리띠처럼 쓰고 머리카락을 보이지 않게 한다. 그 색깔은 종교나 취향에 따라 달리하지만 대체로 흰색과 검은 색이다. 대합실을 오가는 사람들 머리엔 흰색이 더 많아 보인다.

그것만이 아니다 현지인 중엔 걸인도 참 많다. 이들은 여행객을 보면 초콜릿과 돈을 달라고 따라다닌다. 그들에게 무심한 표정으로 아무 반응도 하지 않으니 이내 돌아선다.

한 사내는 가느다란 막대를 한 뼘 정도 크기로 잘라 한 움큼 쥐고 있고 막대 하나 껍질을 까서 하얗게 드러난 속살로 양치를 하기 시작한다.

그 모습이 신기했다. 칫솔이 없던 시절엔 칫솔을 대신해 양치를 했을 것이다. 사내를 보는 순간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듯 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선 사라진 가래침 통이 역사 곳곳에 비치돼 있다. 현지인들은 지나갈 때 마다 그 통에다 가래침을 뱉고 간다. 여행객이 보기엔 위생적이진 않지만 아직도 인도엔 과거 많은 나라에서도 행해졌던 습관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일행은 캘커타까지 가는 표를 미리 예약하러 갔다. 여행객이 워낙에 많은 곳이어서 기차표 구하기 쉽지 않다.

인도엔 육십세 이상 노인에겐 할인이 적용된다. 일행 중 고등학교 선생님직을 정년퇴직한 분도 계신다. 그 분은 육십이 넘었다고 외국인인데도 할인 적용해 준다. 하지만 장애가 있는 나에겐 그런 혜택이 없다.

인도엔 장애인이라고 특별히 사회적으로 배려하거나 할인제도 같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노인보다 장애인이 훨씬 더 많다. 거리 곳곳에 눈만 돌리면 장애인, 비장애인 구분 없이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예매를 한 일행이 모두 모였다. 우선 아침식사부터 하기로 했다. 식사라곤 특별하지 않다. 역 밖에 있는 작은 노상 식당에서 밀가루를 넓적하게 펴서 버터에 구운 일종에 호떡 같은 밀가루 떡인 '란'과 '차'(짜이)를 한 잔 하는 것이 아침식사다.

식사를 마치고 릭샤왈라(운전수)와 강가(갠지스 강)까지 가는 요금을 흥정해서 릭샤를 타고 가야 했다. 대중교통 수단인 릭샤는 인도 어디에서나 여행객에겐 많은 요금을 부른다. 특별히 요금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흥정을 하여 최대한 적정 수준의 요금을 협상해서 가야 한다.

요금을 정하고 간다해도 목적지에 도착하면 요금을 더 내라고 실랑이를 할 때가 종종 있다. 릭샤왈라와 실랑이를 하는 것은 단순하다. 릭샤왈라들은 여행객이 길을 모르니 이리저리 같은 자리에서 빙빙 돌다가 한참 후에 목적지에 데려다 주면서 길이 멀어 시간이 많이 걸리고 품이 많이 들었으니 당연히 요금을 더 많이 지불해야 한다고 한다.

인도여행이 처음인 사람은 그들의 수법에 깜빡 속아 넘어가 달라는대로 다 요금을 지불하는 경우가 종종있지만 우리 일행 중에는 인도여행의 고수가 있었다.

이번 여행을 이끈 리더는 인도에서 불가촉천민들을 위해 학교를 지어주고 글도 가르치며 봉사활동도 하고 인도 전역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을 몇 번이나 여행한 여행 고수 중의 고수인 것이다. 그런 고수에게 릭샤왈라의 수작은 통하지 않는 것이다.

릭샤를 타고 가는 동안 주변풍경은 언제나 새롭고 흥미롭다. 그런데 길 한 귀퉁이에 커다란 소가 쓰러져 있다. 쓰러진 소는 발목이 잘린 채로 신음하고 있다. 하지만 누구도 소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은 없이 무심히 지나간다. 심지어 쓰러진 소 주위는 개떼들이 빙 둘러싸고 있다. 그러다 개 한 마리가 소 엉덩이 부분을 물어뜯기 시작한다. 소는 아프다고 소리를 질러대지만 개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떼로 달려들어 소를 물어뜯기 시작한다. 그 모습이 어찌나 험악하던지 눈을 감아버리고 말았다.

인도엔 동물들을 특별히 가두어놓고 사육하지 않는다. 종교가 다양하다보니 각자의 종교를 존중하고 종교에 따라 육식도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힌두교는 소고기를 먹지 않고 이슬람교는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채식을 하는 사람들이 많고 음식점에서는 꼭 손님의 음식 취향을 물어봐서 주문한다.

또한 그들은 서로에게 피해가 가지 않고 종교적으로도 부딪칠 염려가 없는 양고기나 닭고기를 선호한다. 하지만 양고기는 가격이 비싸 어려운 형편에 있는 사람들은 구경하기조차 어렵다고 한다. 가장 손쉽게 먹을 수 있는 닭고기마저 만만치 않은 가격이다 보니 여행객이나 형편이 좀 넉넉한 사람들 그리고 명절 때나 귀한 손님이 올 때 만 먹는 음식인 것이다.

거리엔 개들도 자유롭게 떠돌아다닌다. 특별히 돌봄을 받지 않다보니 각종 피부병과 질병에 노출돼 있다. 질병에 노출된 개를 만지면 사람에게도 병이 옮겨져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그리고 낯엔 개떼의 습격이 별로 없다. 하지만 전기 사정이 나쁜 밤이면 골목 골목에 개떼들이 포진해 있다. 개들에게 포위돼 공격을 당하는 일도 종종 있다고 하니 밤엔 될 수 있으면 외출을 삼가해야 한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갠지스 강에 도착했다. 짐을 가트에 내려놓고 사람도 가트에서 내렸다. 'Ghat'는 '강가에 있는 돌계단'이라는 뜻으로 힌디어 사용 지역에서는 갠지스 강의 층계를 가리키며, 그 중에서도 유명한 성지인 바라나시에 있는 갠지스 강의 층계를 뜻할 경우가 많다.

힌두교도들은 갠지스 강을 ‘성스러운 강’으로 숭배하기 때문에 이 강물에 목욕재계하면 모든 죄를 면할 수 있으며, 죽은 뒤에 이 강물에 뼛가루를 흘려보내면 극락에 갈 수 있다고 믿는다.

갠지스 강 유역에는 연간 100만 명 이상의 순례자가 찾아드는 유명한 바라나시를 비롯하여 하르드와르·알라하바드 등 수많은 힌두교 성지가 있다. 이에 따라 힌두교인 들은 가트로 내려와 아침마다 경건하게 목욕재계를 한다.

날씨가 제법 쌀쌀한데도 강물에서 목욕하는 사람이 많다. 일행 중 한 명은 숙소를 구하러 가고, 나머진 가트에서 갠지스 강을 바라고보 있다. 강가엔 쪽배들이 즐비하게 줄을 서 있고 강 계단은 높이와 넓이가 제법이다.

계단에선 작은 소원 꽃 접시에 촛불을 켜고 강가에 띄워 소원을 비는 사람들과 꽃을 파는 아이들, 목욕하는 사람들로 넘쳐 난다. 아예 강가에 자리를 평상처럼 만들어 그 위에 돗자리를 깔고 파라솔까지 펴놓고 갠지스 강을 향해 가부좌를 틀어 몇 시간동안 꿈쩍도 않고 합장하며 명상에 잠긴 사람도 많다.주위가 시끌벅적해도 아랑곳 하지 않고 오로지 신과의 접선에만 열중하는 사람을 보고 있자니 눈에 보이는 것만 믿으려 하는 문명세계와 단절된 느낌이 든다.

강 건너 모래 언덕엔 사람들이 작은 쪽배를 대고 내리고 있다. 모래밭 한 쪽으로 소떼들이 모래찜질을 하고, 일부는 강물에서 헤엄치며 놀고 있다. 소떼와 함께 사람들도 모래밭에서 즐겁게 놀이를 하고 있다.

갠지스 강의 너비는 한강 너비 정도인 것 같다. 넋놓고 주변을 구경하고 있는데, 어린 아이가 다가와 꽃을 사라고 졸라댄다. 꽃이 필요 없다고 하니 아이는 내가 꽃을 사주면 넌 나로 인해 좋은 일을 해서 극락에 갈 수 있다고 한다. 아이의 꽃을 사는 것은 아이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내가 너에게 착한일 할 기회를 주는 거야. 그러니 넌 나에게 감사하며 꽃을 사야해"라는 아이의 말은 황당하지만 묘하게 설득력이 있다.

사람들은 모두 착한 일을 하고 싶어 한다. 착한 일이라는것이 꼭 어려운 사람에게 돈을 기부하거나 노력봉사하거나 재능을 나눠 주는 것만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에선 종종 장애인들에게 봉사활동 중에 발가벗겨놓고 목욕을 시키는 행위가 종종 있다. 목욕을 시켜주는 것까진 고맙다. 하지만 봉사자 입장에서만 모든 일이 행해진다. 남자건 여자건 상관없이 봉사자의 입장에서 성별을 고려하지 않고 성인 남자임에도 여성 봉사자들이 목욕을 시켜 준다. 그 것도 목욕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자신들의 봉사 행위를 널리 광고한다. 하지만 봉사를 받는 입장에선 자신의 알몸을 많은 사람들에게 여과 없이 내맡겨 지는 것이 수치스러움이 없었을까 잠시 생각해본다.

아이의 말에 꽃을 샀다. 꽃을 살 때의 마음은 아이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그 꽃을 삼으로써 좋은 일을 예약한 것이란 뿌듯함이 앞섰다. 아이는 당당히 꽃을 팔아 생계에 도움이 되고, 난 아이가 원하는 도움을 줌으로 누군가를 도왔다는 우쭐한 마음 없이 당연히 받아들였다.

아이에게 꽃을 사서 꽃 접시에 촛불을 켜고 소원을 빌며 생각해보니 나와 인도까지 동행한 일행이 고마웠다. 하지만 그들에겐 미안하지 않기로 했다. 아이의 한 마디가 내 생각을 바꿔 놨기 때문이다.

일행의 도움으로 여행하면서 고마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늘 교차했었지만 이젠 생각이 달라졌다. 일행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그들도 원하지 않은 마음일 것이다. 모두 자발적으로 모여 함께 한 여행인데 서로에게 미안하지 않고 고마움이 이어가는 여행이었으면 하는 바람일 것이기 때문이다.

고마움은 남이 베풀어 준 호의나 도움에 대하여 마음이 흐뭇하고 즐겁다고 받아들이는 마음이다. 하지만 미안함은 남에게 대하여 마음이 편치 못하고 부끄러움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러니 난 일행에게 미안한 마음보다 고마운 마음으로 이번여행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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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휠체어배낭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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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나시 정션역. ⓒ전윤선

갠지스 강의 파라솔. ⓒ전윤선

갠지스강 축제의 현장. ⓒ전윤선

꽃 파는 사람들. ⓒ전윤선

어머니의 강 갠지스. ⓒ전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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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윤선 칼럼니스트
여행은 자신의 삶을 일시적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천차만별이지만 일상을 벗어나 여행이 주는 해방감은 평등해야 한다. 물리적 환경에 접근성을 높이고 인식의 장벽을 걷어내며 꼼꼼하고 정확한 정보가 제공되어야 한다. 돈 쓰며 차별받지 않는 여행, 소비자로서 존중받는 여행은 끊어진 여행 사슬을 잇는 모두를 위한 관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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