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페이스북을 통해 만들어진 어느 지역공동체 모임을 참여하고 있다.

한 번은 지역의 문화 예술에 대해 논의하기 위한 소모임이 만들어져서 나가게 되었다. 회원의 자격은 현직 예술인이거나 예술관련 단체 조사자이거나 비예술인으로서 지역문화에 관심 있는 일반인이었는데 나는 세 번째 조건에 해당했다.

지역민으로서 또 한 사람의 장애인으로서 평소 장애인의 예술참여 혹은 예술 창조에 관심이 있던 나는 이 모임을 통해서 어떻게 하면 장애인들이 예술로 소통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장애인들이 문화 예술 활동에 참여하고 향유할 수 있는지에 고민하며 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첫 모임에서의 자기소개를 했다.

그때 그 모임에 나와 있던 한 회원이 나에게 장애의 유형이 다양한데 내가 장애인을 대표하는 것이냐고 물어왔다.

순간, 당황했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얕은 지식들을 동원해서 ‘물론 내가 우리 지역의 장애인을 대표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 정도로 많은 장애인들의 장애를 이해하고 있지 않고 그들이 어떤 불편함을 안고 사는지 잘 모른다. 설령 안다고 해도 그들 내면 깊숙이까지 이해한다고 쉽게 이야기할 수도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장애인으로서 살아오면서 겪어온 심리적, 물리적 장벽이 다른 장애인들도 마찬가지이지 않겠는가’ 하고 둘러대던 기억이 난다.

사실 어디 가서 내가 장애인이기 때문에 장애인을 대표해서 나왔다고는 말을 못하겠다. 너무나 오래 나는 비장애인의 세계에서 살아왔고 그래서 내가 장애인이기 때문에 겪어온 무언의 차별들에 대해 억울해 죽겠다고 속으로 삭히는 게 전부였다.

성인이 되어서야 아직도 많은 장애인들이 교육과 사회, 경제면에서 차별을 받으며 힘들게 살아간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았을 뿐이다. 저 모임에서 무슨 뻔뻔함으로 저런 말을 내뱉었는지 지금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얼마 전에 아는 분으로부터 작은 부탁을 하나 받았다. 여성장애인 문제에 대해 조사 중인 학생에게 인터뷰를 좀 해줄 수 없겠냐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망설였다가 그 학생이 구한 조사자의 분포가 너무 좁아서 안 되겠다고 하시기에 부탁을 수락했다.

인터뷰 당일이 되기 전까지 많이 고민을 했다. 내가 여성장애인으로서 차별과 억압의 삶을 살아왔던가?

인터뷰 당일, 학생이 던진 질문에 나는 예라는 대답보다 아니오를 더 많이 대답했다. 가족들, 친구들, 사회에서 그 어느 곳에서도 내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은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람은 타고난 생물학적 유형보다 살아온 환경이 그의 성격을 형성하는데 더 많은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성별이 여자라서 여자가 되는 것이 아니고 성별이 남자라서 남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를 둘러싼 환경이 여성성이 강한지 남성성이 강한지에 따라 여성 혹은 남성으로 자란다는 것이다.

생물학적 성이 여성이라도 남자형제가 많거나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자라면 남성적인 경향을 갖게 되고, 남성으로 태어났어도 여자형제가 많거나 남성다움을 강요하지 않는 환경에서 자랐다면 여성적인 경향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장애인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한다. 비교적 괜찮은 환경에서 장애에 대해 편견 없는 환경에서 자란 사람을 과연 장애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적어도 나는 내가 어디 가서 장애인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멀었다고 생각한다. 마음 한 구석에서 부끄러움이 고개를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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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한때 시인을 꿈꿨으나 재능이 없다는 것을 깨달음과 더불어 작가는 엉덩이가 무거워야한다는 이야기에 겁먹고 문학인의 길을 포기. 현재 원광디지털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편입하여 예비사회복지사의 길과 자립생활의 길을 모색하고 있는 대한민국 평범한 20대 장애여성. 바퀴 위에 올라 앉아 내려다보고 올려다본 세상이야기를 펼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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