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내가 들리는 어느 인터넷 카페에서 장애인의 성 문제에 대해 토론이 벌어졌다. 그 글 밑에는 수 백 개의 찬반 댓글들이 치열하게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처음 토론 주제를 던진 글쓴이는 <섹스 볼란티어>라는 영화를 보고서 궁금증이 생겨서 토론방을 열었다고 했다.

섹스 볼란티어. 말 그대로 성에 대한 자원봉사다. 거동이 불편해서, 또는 지적장애로 인해 이성을 만날 수 없거나 스스로 성적욕구를 풀지 못하는 장애인들에게 하는 일종의 자원봉사라는 거다.

식욕, 수면욕과 더불어 성욕을 인간의 3대욕구라고 한다. 몸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것이 성욕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장애인도 예외가 아닌데, 문제는 욕구의 문제가 우리 사회에서 예민한 성문제여서 접근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근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상하기도 하다. 성욕이 대체 뭐란 말인가? 식욕은 배고프면 먹고 배부르면 안 먹으면 되고 수면욕은 졸리면 자고 안 졸리면 안 자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성욕은 어렵다. 정말 어렵다. 식욕이나 수면욕은 개인의 문제다. 그런데 성욕은 어떤 대상이 있어야 한다. 감정의 문제이기도 하다. 서로 아무 감정 없이 성행위만 하다 끝날 수 있나?

하긴, 성매매를 하는 사람들끼리 사랑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으니 사랑 없는 성행위, 사랑 없는 성욕해소는 있을 수도 있겠다. 자위라는 것도 성욕해소의 한 방편이라고 하지 않던가.

자꾸 장애인의 성만 부각하는 방법은 옳지 않은 것 같다. 대부분의 장애인은 집밖으로 나갈 수 없어서 또는 자신의 신체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에 이성과의 교류가 쉽지 않다.

더 정확히 말해서는 이성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과의 교류가 쉽지 않다. 언제나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영화 <섹스 볼란티어>에서도 “배는 안 고파요. 사람이 고파요”라는 대사가 나온다고 하지 않나.

비장애인들도 연애를 하면 사랑하는 상대와 스킨십을 하고 싶어 한다. 손을 잡고, 안아주고, 쓰다듬어주고 키스해주고. 물론 그 스킨십 안에는 성행위도 포함되는 것이다.

장애인의 성도 그런 점에서 접근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성만 부각시키는 것이 아니라 감정의 교류로서의 성으로 말이다.

단순히 성욕해소의 목적이라면 왜 사람들이 사랑을 하겠는가.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감정교류인 "사랑"이라는 정의 안에 "성"을 포함시켜서 장애인의 성문제를 해결해야하지 않을까.

육체의 성만으로는 정서적인 감정의 허전함을 채울 수는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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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한때 시인을 꿈꿨으나 재능이 없다는 것을 깨달음과 더불어 작가는 엉덩이가 무거워야한다는 이야기에 겁먹고 문학인의 길을 포기. 현재 원광디지털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편입하여 예비사회복지사의 길과 자립생활의 길을 모색하고 있는 대한민국 평범한 20대 장애여성. 바퀴 위에 올라 앉아 내려다보고 올려다본 세상이야기를 펼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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