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천안 소재의 대학교를 다니면서 잦은 조별모임과 한가득 쌓인 과제로 인해 매일 밤 12시를 넘겨 새벽 2~3시나 되어 잠자리에 들기 일쑤였다. 그렇지만 일찍 일어나는 것은 같은 방을 쓰는 청인 룸메이트들이 늘 깨워줬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일주일에 두 번 서울 지역의 복지관에 사회복지관련 실습을 다니게 됐다. 실습을 위해 천안에서 서울까지 9시 전에 도착하려면 적어도 새벽 5시에는 일어나야 했다. 나 자신을 위해 청인 룸메이트에게 새벽 5시에 깨워달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새벽 5시에 일어나기 위해서 내가 쓴 방법은 세 가지였다.

첫 번째로 시도한 방법은 핸드폰 알람이다.

핸드폰을 베게 밑에 놔두고 자는 방법을 시도해보았지만 폰의 진동이 너무 약하고 1분 후에는 진동이 멈추어버리는 탓에 내가 지정한 시간에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무엇보다 나는 몸에 좋지 않은 전자파를 발생시키는 핸드폰을 잠잘 때만큼은 멀리하고 싶었다.

진동알람시계와 손목알람시계. ⓒ소민지

두 번째 방법은 손목진동알람시계로 손목에 차고 잠드는 것이다.

아쉬운 점은 진동을 느끼지 못하고 그대로 자면 1분 뒤 바로 알람 타임오버. 즉 1분동안 진동을 내다가 반응이 없으면 그대로 정지되는 것이다. 알람은 절대로 다시 울리지 않는다.

며칠 정도는 효과가 있었지만 너무 피곤할 때는 진동이 울려도 일어나지 못했다. 손목에 차는 게 거추장스러워서 잠잘 때 신경이 쓰였고 무엇보다 시계 디자인이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 결정적인 단점으로 작용했다.

마지막으로 쓴 방법은 거대한 형태를 자랑하는 진동알람시계.

시계 본체에 알람 시간을 설정해 놓고 동그란 원형의 진동체를 베게 밑에 두고 자는 간단한 방법으로, 알람은 두 개까지 설정할 수 있다.

무엇보다 알람이 울리면 머리가 전체적으로 흔들릴 정도의 강한 진동으로 바로 눈이 번쩍 떠지고 잠이 싹 달아나니 좋았다.

어느날 알람 시간을 바꾸다가 진동 크기를 최대로 설정해놓은 상태로 잠에 들었다. 새벽녘에 진동체가 엄청난 진동과 소음을 일으키며 개구리처럼 팔짝팔짝 위아래로 뛰는 바람에 같은 방 룸메이트들까지 다 깨웠다. 이 정도로도 효과는 가히 짐작할만 할 것이다.

알람시계와 함께 한 사회복지 실습은 알람시계 덕분에 지각 한 번 없이 잘 마칠 수 있었다.

위에서 말한 핸드폰, 손목진동시계, 진동시계 외에 아침에 일어날 수 있는 방법은 또 있다.

한국장애인도우미견협회 청각장애도우미견 럭키. ⓒ소민지

그 것은 바로 한국장애인도우미견협회에서 양성하는 청각장애인 도우미견이다.

잠이 많은 한 친구는 알람시계마저 소용이 없는데다 일상 생활에서 듣지 못함으로 인한 불편함이 있어서 평택에 위치한 한국장애인도우미견협회에서 청각장애도우미견을 분양받았다.

알람이 울리면 도우미견이 그 소리를 대신 듣고 주인에게 알린다. 간단히 말해서 자고 있는 주인과 소리가 나는 방향을 왕복하며 주인이 일어날 때까지 계속 보채는 식이다. 얼핏 보기에는 너무나도 간단한 방법이지만 도우미견에게는 실상 1년 이상의 훈련을 필요로 하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친구네 집에 직접 가서 도우미견을 간접체험해 본 입장에서 4kg의 개가 온 힘을 다해서 주인을 깨운다는 것은 마치 엄마가 일어나라며 내 몸을 흔들어 깨우는 것만큼이나 강력하다. 진동알람시계보다 더 더욱.

그렇다고 도우미견이 아침에 깨워주는 역할만 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일상생활에서 전반적으로 내가 듣지 못하는 소리를 도우미견이 빠짐없이 알려준다. '세상의 소리'와 '농인' 사이에서 매개체 역할을 하는 것이다.

분양 조건에 모두 맞아서 분양받을까 생각해봤지만 이내 마음을 접었다. 도우미견은 도우미견이기 전에 하나의 고귀한 생명이며, 나는 그 생명을 책임지고 사랑으로 감싸줄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TV 자동 켬/끔 예약 설정을 활용하여 일어나는 방법을 쓰는 농인들이 의외로 꽤 있다.

새벽 5시에 일어나야 한다면 TV 자동 켬 시간을 새벽 5시로 맞추고 그 시각에 자동으로 켜지는 TV 화면의 빛에 눈부셔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정말인가 싶어서 집에서 바로 해보았지만 잠자리에 든 나는 켜진 TV 화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잘 자서 실패.

그날 쨍쨍한 햇빛을 바라보면서 이 방법으로 일어나는 농인들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음은 물론이다.

물을 많이 마셔서 새벽에 화장실에 가게끔 일어나는 방법이 있고 일어나야 할 시간을 반복해서 외우고 자면 일어나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제 때 눈뜨게 된다는 방법 등등. 이 모든 것이 농인이기에 생각해낼 수 있는 방법이다.

여담이지만 알람시계를 장만한 나는 새벽녘에 진동알람시계의 버튼을 누르고 기지개를 피면서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나도 드디어 알람시계 버튼을 누를 수 있게 됐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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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민지 칼럼리스트
양천구수화통역센터 청각장애인통역사로 근무하고 있다. 대학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벗어나 사회에 첫 발을 내딛은 지 채 1년도 되지 않은 새내기 사회인이다. 청각장애인으로 세상을 살아가면서 청각장애인 특유의 문화 및 사회, 그리고 수화에 대해 풀어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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