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럼버스의 달걀 ⓒ이광원

필자는 개인적으로 콜럼버스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가 이룬 업적이란 것들이 지배자 입장에서는 대단한 것들인지는 몰라도 피지배자 입장에서 보면 천벌을 받아 마땅한 극악무도한 만행이었기 때문이다.

신대륙의 부왕(副王) 자리에 오르고 많은 재산을 취하기 위하여 자연을 사랑하며 평화롭게 살고 있던 쿠바나 아이티 등지의 원주민들을, 학대•살육하며 노예로 끌고 갔던 일이나, 남의 나라의 황금을 약탈한 것, 또 식민지의 원주민들에게 공납과 부역을 강제한 일 등은 천벌로도 부족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콜럼버스가 굳이 달걀을 깨트려서 일으켜 세웠던 일화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혹자는, 달걀이 갸름한 모양을 갖게 된 것은, 생명을 이어가려는 진화론적 필연성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새알 중에는 탁구공 모양의 동그란 구형(球形)의 것도 있지만) 둥우리에서 멀리 밀려나지 않아 살아남으려면, 구형보단 잘 굴러가지 않는 타원형이 유리할 것이다.

또 만약 달걀이 깨트리지 않고도 일으켜 세우기 좋도록 한 쪽에 각이 져있는 형태였다면, 닭이 알을 품기가 불편했기에 살아남기 힘들었을 것이다.

따라서 달걀의 갸름한 모양은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유지하려는 생명의 신비란 차원의 가치를 내재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겠는데, 그것을 깨트려서 굳이 일으켜 세웠다는 것은 그가 식민지를 통치하며 자연을 파괴했던 것처럼, 자연의 순리에 역행하는 대표적인 상징적 퍼포먼스였다고 하면 무리한 비약이 될까?

아무튼 콜럼버스와 그의 달걀 퍼포먼스는 영 맘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콜럼버스의 달걀’이 가진 ‘발상의 전환’이란 의미는 너무나 맘에 든다.

필자가 인터넷 사이트의 닉네임을 이노베이션(innovation)이나 레벌루션(revolution)으로 쓰는 경우가 많은 이유도 다 같은 맥락 때문이다.

최근 필자에게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 준 제품이 있었다.

휠체어 유저용 자동차였는데, 기존의 휠체어째로 탈 수 있는 자동차들은 주로 옆으로 타거나 뒤로 타는 것들이었는데, 이 희한한 제품은 앞으로 타는 것이다.

자동차의 특성상 앞에는 당연히 핸들 등의 장치가 와야 하기 때문에 앞으로는 결코 탈 수 없을 것이란 우리들의 편견에서 보면, 그야말로 ‘매우 혁신적인’ 제품이 아닐 수 없다.

이 차는 체코에서 연구 중인 ‘ELBEE’라는 차로, 올 하반기 중 출시 예정이란다.

이런 신선한 아이디어를 접할 때마다 그 아이디어 자체의 가치와는 상관없이 필자의 잠자던 상상력을 다시 일깨워주고, ‘혁신적 사고’에 대한 필자의 연정(戀情)을 다시 불태워주는 ‘콜럼버스의 달걀’로서의 가치는 돈을 주고도 사기 어려울 것이다.

필자가 단편영화 제작의 매력에 한참 빠져들고 있을 무렵인 2005년, ‘패러다임 쉬프트 1.0’이란 단편영화를 만든 적이 있었다.

단편영화는 반전이 주요 포인트이고, 단편영화감독이 자신의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되는 일은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파는 일과 같겠지만, 앞으로 내 영화를 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에 과감히 그 내용을 소개해본다.

‘패러다임 쉬프트 1.0’의 내용은 이렇다.

프롤로그에서는 앞으로 걸어가는 청년과 뒤로 걸어가는 청년, 또 휠체어로 이동하는 청년의 모습 등이 서로 겹쳐지며 지나간다.

타이들이 나오고 나면 남자 주인공이 시장을 보고 와서 조기구이를 반찬으로 식사를 하고 있다. 그런데 다시 한 번 자세히 보니, 남자 주인공의 입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은 ‘조기의 살점’이 아니라 ‘사람의 팔’이다.

남자 주인공이 침대에 눕는다. 그런데 다시 한 번 자세히 보니 침대에 누운 것은 사람이 아니라 조기다. 주방에서 짚에 엮인 조기 한 두름이 좌우로 흔들리고 있다. 그런데 다시 한 번 자세히 보니, 짚에 엮여 있는 것은 조기가 아니라 사람이다.

‘만약 조기가 사람보다 더 고등동물로 진화했다면 조기가 사람을 잡아서 반찬으로 먹을 수도 있지 않을까?’란 ‘발칙한 상상력’, 혹은 ‘발상의 전환’을 통해 관객들의 잠자는 상상력을 깨워주기 위한 의도가 담긴 작품이었다.

때로는 정말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상황인데도, 그 놈의 ‘고정관념’이란 것이 우리의 발목을 놓아주지 않을 때가 많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지름길을 놔두고도 돌아가며, 그로 인해 많은 대가를 치러야할 때도 있다.

단편영화 ‘패러다임 쉬프트 1.0’ 속의 몇 몇 장면들 ⓒ이광원

정말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것들 중의 중요한 하나는, ‘장애인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장애와 장애통합적 개발에 있어서의 ‘동정’에 기반한 접근으로부터 ‘권리’에 기반한 접근으로의 패러다임 전환(a paradigm shift from a charity-based to a rights-based approach to disability and disability-inclusive development)』

이것은 필자가 1999년부터 최근까지 해오던 강연들의 주된 주제 중의 하나였다. UN 장애인권리협약은, 이러한 개념을 바탕으로 탄생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필자가 그런 내용의 강연을 시작한 지가 벌써 13년이 흘렀고, UN 장애인권리협약이 UN 총회를 통과한 지가 6년이 다 되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 주위에는 장애인을 ‘동정의 대상’, ‘보호받아야만할 존재’ 정도로 바라보는 관점들이 너무나도 많이 남아있다.

최근에, 앞으로 타는 자동차가 가져다준 ‘신선한 충격’ 덕분에, 내안에서 잠자던 ‘콜럼버스의 달걀’이 다시 튀어나온 듯한 느낌을 가져봤다.

비록 먹을 수 있는 용적(容積)이 줄어드는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달걀을 깨서 세우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겠다는 자성을 다시 한 번 해본다.

그리고 독자 여러분들!

여러분들, 그리고 주위 분들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달걀들을 꺼내어, 깨고 또 깹시다! ‘동정(charity)’에 기반한, 장애인에 대한 이 사회의 고정관념이, 모두 다 깨질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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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이광원은 장애인 보조기구를 생산·판매하는 사회적기업 (주)이지무브의 경영본부장과 유엔장애인권리협약 NGO보고서연대의 운영위원을 지냈고, 소외계층 지원을 위해 설립된 (재)행복한재단의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우리나라에 자립생활(Independent Living) 패러다임이 소개되기 시작하던 1990년대 말 한국장애인자립생활연구회 회장 등의 활동을 통하여 초창기에 자립생활을 전파했던 1세대 자립생활 리더 중의 한 사람이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국제장애인권리조약 한국추진연대’의 초안위원으로 활동했고, 이후 (사)한국척수장애인협회 사무총장, 국회 정하균 의원 보좌관 등을 역임한 지체장애 1급의 척수장애인 당사자다. 필자는 칼럼을 통해 장애인당사자가 ‘권한을 가진, 장애인복지서비스의 소비자’라는 세계적인 흐름의 관점 아래 우리가 같이 공감하고 토론해야할 얘깃거리를 다뤄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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