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심심할 때면 나는 옛날 사진들을 들춰본다. 잔뜩 겁에 질린 표정에 더벅머리를 한 채로 찍힌 백일 사진에서 대학교 학사모를 쓴 최근까지 사진 속에는 나의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사진을 자세히 살펴보면 5~6살 때까지 나는 집에서는 보행기, 밖에서는 유모차를 타고 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집근처를 나갈 때 나는 유모차를 탔고, 장거리 여행을 갈 때는 늘 아빠나 엄마가 안고 다녔다.

그러다가 아파트로 이사 온 7살이 되던 해, 나는 나의 첫 휠체어를 갖게 된다.

요즘에 보면 어린이용으로 알록달록한 크기도 앙증맞은 휠체어가 많이 있던데, 내가 가진 첫 휠체어는 빨간 틀에 거대한 휠체어였다. 흔히 병원에서 쓰이는 그런 성인용 휠체어.

휠체어에 대한 첫 경험은 무서움이었다고 기억한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팔걸이 없는 의자에는 앉지도 못하는데 내 몸의 크기보다 큰 그래서 공간이 많이 남는 성인용 휠체어는 등받이 없고 팔걸이 없는 의자와 마찬가지여서 휠체어에 앉아마자 대성통곡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 후 나는 휠체어에 앉을 때마다 양쪽 팔걸이와 등받이 사이에 스티로폼을 잘라 만든 쿠션을 끼우고 앉아야 했다.

지금껏 나는 수동휠체어를 3번 바꿨다. 처음 산 빨간 휠체어는 중학교 2학년 때 너무 녹이 슬고 팔걸이의 스펀지가 낡아서 버렸고 두 번째 휠체어는 고3때 버렸다.

세 번째 휠체어는 고등학교 때 썼던 휠체어와 구입시기가 겹치는데 2층에 위치한 교실 때문에 집에서 나와 학교 입구까지 이동할 휠체어와 2층에서 사용할 휠체어 2개가 필요했었다. 1층에서 2층까지 아빠가 안고 올라가서 2층의 휠체어에 옮겨 타는 방식으로 고등학교 생활을 했다.

고등학교 때 산 세 번째 휠체어로 지금까지 잘 쓰고 있는 중이다.

장애인에게 있어서 휠체어는 아주 중요한 보장구이다. 휠체어만 있다면 계단과 문턱이 없는 곳 어디든지 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 휠체어는 이동수단을 넘어서 조금 더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휠체어는 나와 사람을 이어주는 일종의 매개체 역할을 했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 전체에서 유일하게 휠체어를 탔던 나는 입학하자마자 아이들의 호기심의 대상이 되었다.

어떤 아이는 조심스럽게 "나, 휠체어 한 번 밀어보면 안 돼?"라고 물어보기도 하고, 한 번만 타보자고 조르는 아이들도 있었다.

사실 어린 시절에는 휠체어가 너무나 소중하고 내 몸 같아서 쉬는 시간 교실 한 구석에 접어 세워 논 휠체어를 누군가 손만 대도 악을 쓰고 대들고 울고, 난리도 아니었었다.

하지만 학년이 올라가면서 누군가가 휠체어를 타도 내버려두는 아주 관대한 어린이(?)가 되어 있었다.

그런 일들은 학창시절 내내 이어졌는데 확실히 내 휠체어를 밀어주는 사람과 빨리 친해졌다.

누군가가 내 휠체어 손잡이를 잡으면 그 친구 주변에 친한 친구들이 따라오고 그렇게 내 인맥은 확장되었다. 어쩔 때는 휠체어를 미는 친구와 그런 방식으로 친해진 친구들이 한 무리를 이루고 내 주변을 둘러싸고 다녀서 마치 내가 ‘나를 따르라!’를 외치는, 장군과 병사들 같은 재밌는 대형을 이루기도 했다.

대학에 가서는 내가 선배가 되고 첫 후배를 받았을 때 후배들과 빨리 친해지는 방식으로 쓰였다.

첫 학기 복학 후 난생 처음 보는 선배가 동아리 회장이 되었는데, 처음에는 그 선배가 주로 나를 데리고 다녔었다. 그러다가 후배들이 들어오고 어느 정도 동아리가 정리될 쯤 선배는 후배들을 한 명씩 돌아가며 내 휠체어를 밀게 했다.

그게 의도적이었는지 아닌지는 몰라도 내 휠체어를 밀었던 후배들과 빨리 친해지게 되었다. 내 바로 뒤에 서 있으니 대화도 잘 되고 마치 친해지면 손잡고 다니는 것처럼 그런 기분도 들었다.

나는 가끔 상상한다. 내 척수신경이 꼬리뼈 끝에서 뻗어 나와 바로 휠체어와 연결되어 있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누군가가 내 휠체어 손잡이를 잡는 순간 나는 느낀다. 이 사람이 지금 긴장하고 있는지, 아니면 휠체어에 익숙한 사람인지를.

그만큼 휠체어는 나와 너무나 밀접한 존재이고, 내 휠체어를 막 다루는(?) 사람일수록 나와 친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휠체어 팔걸이에 걸쳐 앉게 해준다던지, 휠체어로 장난을 친다던지. 남들이 보면 불쌍한 장애인 괴롭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험하게 다루는 친구들이 있는데, 나는 좋다.

물론 가끔 무섭기도 하지만 그만큼 상대도 나를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는 사람이 아닌 자기와 같은 평범한 사람으로 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너무 과하다 싶을 때, 이를 테면 내 생명에 지장을 주는 게 아닐까 싶을 때는 나 스스로 중재를 시키기 때문에 심각한 일은 벌어진 일이 없다.

아, 이건 어쩌면 나에게만 국한된 특별한 상황일 수도 있다. 혹시 이 칼럼을 보고 다른 휠체어와 장애인도 그러지 않을까 하고 섣불리 행동하지는 마시길.

나와 친해지고 싶다면 내 휠체어 손잡이를 잡아주시길, 그러면 나도 당신에게 내 곁을 내어줄테니.

내 휠체어를 조심스럽게 잡아주는 그대들에게 내가 마음의 문을 닫을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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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한때 시인을 꿈꿨으나 재능이 없다는 것을 깨달음과 더불어 작가는 엉덩이가 무거워야한다는 이야기에 겁먹고 문학인의 길을 포기. 현재 원광디지털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편입하여 예비사회복지사의 길과 자립생활의 길을 모색하고 있는 대한민국 평범한 20대 장애여성. 바퀴 위에 올라 앉아 내려다보고 올려다본 세상이야기를 펼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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