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가 있는 사람이 해변에서 텐트를 치고 캠핑을 할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을 갖고 기사문해변으로 향했다.

말복과 입추를 지나면서 더위는 한풀 꺾였다고는 하지만 아직 팔월의 기온은 도심을 무더위 속에 몰아넣고 있었다. 장애특성상 더위를 타지 않는 체질이어서 그동안의 여름은 그냥 참을만 했지만 올핸 재난에 가까울 정도로 힘겨운 여름을 보내야만 했다.

더위 탈출의 방법으로 곰두리 봉사대에서 개최하는 여름 해변캠프에 참여하기로 했다. 휠체어를 이용하다보니 바닷가에서 캠핑을 한다는 것은 좀처럼 믿기지 않았지만 그런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올 여름만큼은 속는셈 치고 참여하기로 했다.

늦장마가 한창인 지난 일요일 떠났다. 양양으로 가는 동안 빗줄기는 더욱 세차게 퍼붓는다. 빗속을 뚫고 드디어 삼팔선 휴게소 뒤쪽 기사문 해변에 도착했다.

도착한 해변엔 텐트동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모래밭엔 휠체어가 보행할 수 있는 길이 만들어져 있고, 캠프운영진 본부서 예약 현황을 확인한 후 2박3일 동안 숙박할 텐트 동을 배정받았다. 전동휠체어 이용 장애인은 보행과 접근이 더욱 편리한 1호동을 배정해준다.

짐을 풀고 바로 바다로 나갔다. 바닷가 가까이 휠체어 통행로가 마련돼 있어 일미터도 안되는 가까운 거리에서 바다를 만날 수 있었다. 그동안 많은 해수욕장을 가봤지만 이렇게 바다와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곳은 장애인 여름캠프가 운영되는 이 곳이 처음이다.

장애인 해변캠프가 열리는 기사문 해변. ⓒ전윤선

이렇게 바다와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다니, 감게 무량해 바닷가에 풍덩 뛰어들고 싶다는 충동이 일어났다. 하지만 휠체어 앉아 있는 나로서는 타인의 도움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아니 도움을 준다해도 두렵기는 마찬가지다.

"그래. 이렇게 바다 가까이에서 볼 수 있은 것만으로 만족하자, 이게 어디야 바다를 1미터 전방에서 볼 수 있데……." 그렇게 위안하며 텐트로 돌아왔다. 막사는 평상 위에 설치돼 있고 휠체어 동선에 맞는 높이다.

텐트에서 잠을 잘 수 있다는 것이 얼마만인가. 인도여행 당시 사막 횡단때 텐트에서 자고 나중엔 텐트도 없이 그냥 모래위에서 잤던 기억이 난다. 그 때는 사막이다 보니 온통 모래뿐이어서 휠체어가 굴러갈 수도 없고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전적으로 타인의 도움을 받아서 배변을 해결하고 낙타에도 올라탈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 해변캠프는 모레 위 텐트에서 자도 끄떡없다. 평상위에 텐트동이 설치되 있기 때문이다. 평상은 휠체어 높이만큼 동선이 마련 돼 있어 정말 편리하게 평상과 휠체어를 오 갈 수 있다.

저녁때가 되어 식사를 준비했다. 근처 마트에서 삼겹살을 사가지고 와서 숯불로 불을 지피고 그 위에 삼겹살을 올렸다. 고기 익는 냄새가 비구름을 타고 흩어진다. 캠프본부에서 간이 테이블과 파라솔까지 빌리고, 테이블에 삼겹살과 김치, 상추, 고추 등 야채가 올라온다. 정신없이 저녁을 먹고 잠자리 들 준비를 했다.

이브자리와 베개는 인원수대로 캠프 본부에서 나눠준다. 그 날 밤 파도는 비를 타고 거세게 해변을 오가며 빗줄기는 그칠 줄 모르고 천막 위로 우두둑 소리를 내며 떨어지니, 그 소리가 정겹다.

평상과 텐트 동. ⓒ전윤선

새벽이 되어도 비는 그칠 줄 모르더니 아홉시쯤 잠시 비가 그쳤다. 그 틈에 바다에서 해수욕을 하기로 했다. 캠프 본부에서 구명조끼와 튜브까지 무료로 대여해주고 수상휠체어까지 대여해 준다고 한다.

캠프 관계자는 휠체어를 이용하는 일행에게 수상휠체어로 옮겨 타서 바닷물 속에 들어가 보라고 권한다. 하지만 난 캠프에 오기 전 해변에 들어갈 생각을 하지 못해 준비해간 여벌의 옷이 없어 참기로 했다.

일행들이 바닷물 속에서 즐거운 시간을 갖는 동안 나도 해변 바로 앞에서 그들을 바라보며 즐거워했다. 한참을 물속에서 물놀이 하고 있는데 비가 오기 시작해 다시 텐트 동으로 돌아왔다. 그 후부터는 하루 종일 빗줄기가 그치질 않았다.

계속해서 비가 오니 해변으로 나갈 수도 없고, 그저 비오는 바다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캠프 관계자와 인사를 나누며 이런저런 이야기 꽃을 피운다.

파마머리 본부장의 초콜릿 복근 상체에 저절로 눈길이 간다. 햇볕에 그을린 구릿빛 얼굴의 사내는, 해변캠프 초기부터 자원봉사 일을 도맡아 했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처음 장애인 해변캠프가 시작된 해수욕장은 1994년 7월 강원도 망상해수욕장이라고 한다.

수상 휠체어. ⓒ전윤선

그 후로 낙산해수욕장, 설악해수욕장, 고성군 보수대 해수욕장, 명파리 해수욕장을 비롯해 작년과 올해는 양양의 기사문 해수욕장까지 19년을 안전사고 없이 운행해 왔다고 한다.

해마다 개최되는 해변캠프의 가장 큰 어려움은 수심이 낮고 이동과 접근이 용이한 곳을 찾아야 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한 안전한 해수욕장을 찾았다고 해도 지역 주민들의 동의가 있어야 캠프를 운영할 수 있다고 한다.

해마다 연 초가 되면 해변캠프 개최지를 섭외하러 동해의 해수욕장을 찾아 상당한 지역을 돌아다닌다고 한다. 그 지역 주민들과 만나 해변캠프의 취지를 설명하고 지역주민들에게는 지역발전기금을 마련하는 기회가 된다고 설명한다고 한다.

해변캠프 장소 섭외 중에는 중요한 몇 가지가 조건이 있다고 한다. 우선은 수심이 낮아야 하고, 대중교통 이용이 편리해야 하며, 일반 부대시설이 어느 정도 갖춰져 있는지를 고려해야 한다.

고속버스 등 대중교통이 없는 곳은 이동이 어려워 찾아오는 장애인들이 힘겨워하고, 횟집, 슈퍼 등과 같이 접근이 가능한 곳을 두루 두루 갖춰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여건들이 갖춰진 곳을 찾기란 쉽지만은 않은 일이라고 한다. 대중교통이 편리한 강원도의 유명 해수욕장에서 장애인 해변캠프를 개최한다고 해도 지역 주민들이 결사반대하는 곳이 대부분이 이라고 한다.

해변캠프가 개최되는 기사문 해변 바로 옆에도 유명한 하조대 해수욕장이 있다. 그곳에 장애인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연수원을 건설하는 문제도 지역주민들이 반대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악조건에서도 장애인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해변캠프를 개최한다는 것은 장애를 가진 당사자와 장애에 대한 편견이 없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행사인 것이다.

연간 해변캠프를 찾는 인원은 만 오천 명에서 만 팔천 명 정도라고 한다. 해를 거듭할수록 더 많은 장애인들이 찾아오곤 하는데, 처음 해변캠프 개최 당시는 협회 임원진들이 십시일반으로 자비를 털어 캠프를 개최 했고, 해를 거듭할수록 뜻을 모아주는 분들이 모이면서 몇 년 전부터 서울시에서 지원하여 운영이 한결 매끄러워 졌다.

또한, 해변캠프 기간 내 안전을 함께 책임질 수상 안전요원 선발은 적십자 등에서 인증된 사람을 모집 교육해 캠프 기간 동안 안전을 책임진다고 한다. 이용객이 많은 날은 본부장도 함께 바다에 들어가 안전에 만전을 기울이며, 그로 인해 지금까지 한 번의 안전사고 없이 진행돼 왔다고 한다.

해변캠프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캠프 개최 두 달 전부터 행사장에 내려와 샤워장, 화장실, 취사장, 텐트동 설치 작업을 한다. 그렇게 철저한 준비를 거치고 칠월 중순 개장식 후 한 달간 운영된다.

해변 캠프 편의 시설. ⓒ전윤선

해마다 해변캠프를 운영하는 동안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이 있다. 쓰레기 문제로 지역 주민들과 마찰이 일까 우려해 청결에 더욱 신경을 쓰고 있고, 몇 년 전 고성 명파 해수욕장에서는 단체에서 온 지적장애인을 잃어버린 적도 있다고 한다.

겉으로 보기엔 장애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지적장애인은 도로에 나가 히치하이킹으로 캠프장을 벗어나고 있었다고 한다. 곧바로 지역 경찰과 해양경찰, 군인까지 동원돼 극적으로 그를 찾았고 그 후 지적장애인들이 캠프를 찾을 때는 한결 더 신경 쓴다고 한다.

저녁 때가 돼서야 비는 그치기 시작했다. 비가 그치니 해변 무대에 조명이 켜진다. 다음날 있을 노래자랑 리허설이 있다. 리어설이지만 해변을 찾은 장애인들에게 노래를 신청 받아 진행한다.

우리 일행도 빠질 수 없어 첫 번째로 노래를 불렀다. 우뢰와 같은 박수와 함께 다음 순서 장애인분들이 하나둘씩 무대 위로 올라선다. 음정, 박자, 가사 모두 틀리고 서툴러도 진행자도 반주자도 관객도 모두 기다려 주고 지지해주며 함께 춤까지 추며 관객과 함께 하나가 된다.

그렇게 기사문해수욕장에서 장애인 해변 캠프의 밤은 깊어 간다.

휠체어 통행로. ⓒ전윤선

• 해변캠프 준비물

-모기장,

-전자모기향

-각자 먹을 식량

-장애인 해변 캠프는 매년 7월~8월 한 달간 진행된다.

-http://www.komduri.or.kr 사단법인 곰두리 봉사협회 문의

• 여행문의

-휠체어 배낭여행

-http://cafe.daum.net/travelwheelch

준비물. ⓒ전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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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윤선 칼럼니스트
여행은 자신의 삶을 일시적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천차만별이지만 일상을 벗어나 여행이 주는 해방감은 평등해야 한다. 물리적 환경에 접근성을 높이고 인식의 장벽을 걷어내며 꼼꼼하고 정확한 정보가 제공되어야 한다. 돈 쓰며 차별받지 않는 여행, 소비자로서 존중받는 여행은 끊어진 여행 사슬을 잇는 모두를 위한 관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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