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심장박동이 나의 온 몸으로 전해질 때 아빠는 참 행복했단다. 가슴 깊숙이 스며오는 따스한 온기들……. 뭔가 형언할 수 없는 벅찬 환희들…….

너를 안은 순간 나는 마음부자가 되어 온 세상 끝까지 가고 싶었단다.

세상살이 바쁘다는 핑계로 손 한 번 제대로 잡아보지 못한 채 살아온 26년. 뭐가 그리 바쁘다고 남 대하드 하며 살아왔는지 후회되는구나.

생각나니? 15년 전 네 형과 함께 지리산 노고단야영장에 갔을 때 폭우가 쏟아져 텐트 안에서 코펠에 빗물을 받아 라면을 끓여 먹던 일을. 그때 이후로 우리는 가깝게 잠자리한 추억이 별로 없구나.

아빠는 네가 ROTC에 합격했을 때 너무 기뻐 너를 꼭 안아주고 싶었었단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지. 우리 사이에는 늘상 “밥 먹었냐?", ”힘 안들어?", “운전 조심해라." 등의 의례적인 대화 이외는 할 말이 별로 없었지.

속이 깊은 너도 아빠에게 하는 말이라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학교 다녀왔습니다.”가 고작이었지.

너와 나 사이에 드리워진 무감각한 한랭전선에 해빙의 무드가 온 것은 지난 봄 칠레 아타카마사막 마라톤 250km를 뛰고 나서부터였어.

첫날 너는 42킬로미터 중 3 분의 1 도 채 되지 않은 13 킬로미터 지점에서 너무 힘들어 이렇게 말했지.

“아빠 보따리 싸서 집에 가자.”

하지만 나는 너의 소원을 들어줄 수 없었지.

“조금만 참으면 편한 코스야, 조금만 참자.”

나의 말에 네가 아무 대꾸도 없이 묵묵히 걸어갈 때 아빠 마음은 바삭바삭 타들어 갔단다. 포기냐 강행이냐의 갈등 속에서 아빠는 강행을 택했지. 하지만 너의 힘들어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아빠의 마음은 새까맣게 타들어 갔단다.

고열과 갈증과 모래폭풍과 통증을 이겨내고 마침내 골인지점에 도착해 수많은 선수가 우리 부자를 열렬히 환호했을 때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얼싸안고 환희의 눈물을 흘렸지.

레이스가 계속될수록 너와 나의 자연스런 포옹은 계속되었단다. 어색하고 서먹서먹하기만 했던 포옹은 봄볕에 얼음 녹듯 녹아내렸지.

“아빠! 힘들지? 아! 해봐. 자, 이거 먹어.”, “아빠 배낭 속에 있는 것부터 먹자.”, “아냐 내 배낭은 가벼워. 너 배낭에 있는 것부터 먹자.”, “아냐. 아빠 배낭 것부터 먹자.”, “난 괜찮아. 니 배낭 것부터 먹자.” 서로 양보하다 못 먹고 간 일이 몇 번이었던지.

수직으로 펼쳐진 모래언덕을 내려올 때는 서로 손을 꼭 잡고 신나게 뛰어 내려오다 넘어져 서로 부둥켜안고 굴렀는데 아프지 않았지.

아빠를 편한 길로 안내하고 너는 울퉁불퉁한 길로 간 탓에 롱 데이날, 달의 계곡서 왼쪽무릎에 탈이 생겨 절룩거릴 때 아빠는 포기할 마음을 굳혔었단다.

하지만 너는 이렇게 말했지. “아빠! 참을만해요. 아빠는 어디 아픈데 없지?” 모래가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쓴 고글 속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고 가끔씩 고글을 살짝 들면 눈물덩어리가 신발 위로 ‘툭’하고 떨어졌단다.

그때 나는 마음으로 머리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단다.

그리고 마침내 완주메달을 목에 건 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부둥켜안고 엉엉 소리내어 울었지. 창피한 줄도 모르고 말이야.

이제야, 울음의 진정한 의미를 알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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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태씨는 군복무중이던 22살 때 수류탄 폭발사고로 두 눈을 실명하고 1급 시각장애인이 됐다. 꾸준히 장애인계에서 활동해왔으며 현재 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장이자 전북 시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 4대 극한 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마라토너이자 '삼 일만 눈을 뜰 수 있다면'이라는 시집을 낸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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